쌀쌀해 지니 菊花꽃은 더 노랗고
잎속에 숨은 감들은 꽃처럼 예뻐
철 모르는 장미, 금계국도 돋보여
날씨가 쌀쌀해지니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 중의 어떤 것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하고요. 비교적 늦게까지 따뜻하던 날씨가 몇 차례의 비가 지나가고 나니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네요. 그래도 한낮의 가을 햇살은 따갑게 느껴졌지요. 그랬던 날씨가 그저께는 아침기온이 영상5~6도까지 급격히 내려가 한기를 몰고 왔습니다. 오늘 아침엔 조금 기온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꽤 쌀쌀 합니다.
쌀쌀함을 넘어 춥게까지 느껴지는 이 아침에 몸을 움츠리며 산책 겸 아침 운동을 했습니다. 그 길에서 나는 정말로 가을의 한 가운데를 내가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길옆 경사가 심한 길섶에 몇일 전부터 피어있던 들국화 작은 꽃송이들이 오늘은 일제히 샛노란 모습으로 아침 인사 하듯 반겨줍니다. 평소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탓인지 거의 의식을 못 했던 탓에 한없이 노랗고 반갑게 느껴졌지요.
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는 또 다른 예쁜 꽃도 있었습니다. 늦여름부터 잡초와 어우러져 자라며 아침마다 10여 송이씩 피던 나팔꽃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꽃송이 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최근엔 그들을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 아침 샛노란 국화꽃들 가운데와 그 옆에 자줏빛 또는 분홍빛 나팔꽃이 선명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국화의 노랑색과 대조된 탓에 눈에 확 띄었겠지요. 또 국화꽃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 잎들이 꽃처럼 예쁘게 보입니다. 그리고 제철 다 지나간 지금 가파른 축대위에서 위태롭게 홀로 피어난 금계국 한 송이도 돋보입니다.
그들과 헤어져 한참 더 가면 상당히 넓은 장미원이 있습니다. 이 장미원은 온갖 색깔의 장미들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초여름이면 일시에 피어나는 장미꽃들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웁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띠엄띠엄 몇송이씩만 필 뿐입니다. 그런데 기온이 뚝 떨어져 곧 서리가 내릴 것 같은 요즘 느닷없이 만발한 장미들이 눈길을 끕니다. 그야말로 철 모르는 장미꽃들의 잔치가 벌어졌나 봅니다. 오늘이 바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기도 합니다.
그 장미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린이집의 야트막한 울타리 안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무인데다 키는 그다지 커지 않지만 해마다 봄철이면 노란 감꽃이 무척 많이 맺혔습니다. 올해 봄에도 그랬었고 풋감(땡감)들도 무척 많이 달렸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감나무에 열리는 땡감들의 대부분은 장마철이 오기까지는 나무에서 잘 굵어지다가 장마가 끝날때 쯤이면 절반 이상이 떨어지고 맙니다. 나머지 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붉게 익어 잎들이 먼저 떨어져버린 감나무에 늦가을까지 달려 있어 예쁜 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내가 산책길에 거의 매일 만나는 이 감나무는 그렇게 늦가을까지 감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이 나무의 감들도 초가을까지는 탐스럽게 붉은 빛을 띄우며 익어갑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노란 감들의 수효가 급속도로 줄어듭니다. 잘 익은 감들부터 자고나면 사라지다가 10월 중하순쯤 되면 꼭대기 부근에 겨우 몇 개만 달려 있지요. 감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들이 먼저 낙엽지기 때문에 늦가을 서리 내릴 때가 되면 잎들은 다 떨어지고 감들만 주황색 꽃처럼 달려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 이 나무는 잎들이 아직 파란데도 감들은 거의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요? 그건 사람들이 채 익지도 않은 감들을 성급히 따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따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인지 어린이집 관계자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침이면 감나무 아래 수북히 떨어져 쌓여 있는 푸른 감잎들이 누군가가 일부러 감을 따느라 그랬음을 말해줄 뿐이지요. 그 때문에 오늘은 잘 익은 감 서너개만 보이네요. 이것도 쌀쌀해진 날씨 탓에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 2023년10월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