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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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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 뫼 2021. 8. 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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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初老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


울창한 수목돌을 누를 듯 제치고 굵고 울퉁불퉁한 붉은빛 줄기들이 하늘로 높이 솟았다. 기품이 수려한 소나무들의 위용이다. 그 늠름한 자태에서 쉽게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 소나무들이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터널을 이룬 길이 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로 오르는 산책로가 그렇다. 포장이 깨끗이 된데다 길옆엔 보행자들을 위한 폭신한 야자나뭇잎 매트까지 깔려있다.


산성관리를 위한 업무용과 공사용 차량들이 다닐 순 있지만 거의 다니는 차가 없어 매우 한적한 길이다. 경사도 매우 완만해 가까운 벗님끼리 손잡고 데이트 하기에도 안성맞춤.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었던 29일 그 길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걸었다. 볼 일도 볼겸 1년여 만에 들린 교회에서 대면 예배 드린 후 찾아간 길이다. 교회 예배당은 거리두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뭄에 콩나 듯 한산했었다. 그렇지만 산성길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코로나 광풍때문에 별로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어 모두가 이곳 산속으로 몰려나왔나 보다.


자주 찾았던 길이지만 이날은 길머리를 잘 못 들어 본의 아니게 풀이 무성한 좁은 등산로를 지나서야 포장된 산책로에 진입할 수가 있었다. 무릎이 신통찮은 아내와 보조를 맞추며 쉬엄쉬엄 오르는 길은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옛 추억도 더듬었고 길옆 벤치에서 초가을 바람도 희롱하며 올라갔다.


청나라 침략군을 피해 임금과 조정대신이 모두 이곳으로 피난왔다 결국 나가 항복하는 것을 지켜 본 산성. 그날의 아픔과 치욕을 수어장대와 남한산성은 알고 있으리라. 그 수어장대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고 소나무가 더 울창한 다른 길로 내려왔다. 수어장대 옆에 있는 곧고 굵게 자란 나무앞에 선 돌비석이 눈길을 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민족상잔 6.25를 겪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식수 기념비였다. 비석엔 '리대통령각하행차기념 식수'라고 음각돼 있었다. 그 비석 옆면에 새겨진 건립일이 정말 의미심장했다. 단기4288년9월. 날짜는 안타깝게도 지금 기억이 안 난다. 국가존망의 위기를 몇달전에 겨우 넘긴 노대통령의 구국염원과 수호의지가 담긴 비석이었다. 비석이 그 뜻을 얼마나 알아 들을까? 나도 정 없는 돌비석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산을 내려왔다.


산성의 중심가 광장 근처엔 수많은 식당들이 있다. 그들 중 맛집으로 알려진 어느 순두부집에서 30여분을 줄서서 기다렸다 순두부전골에 막걸리 반주해 늦은 점심을 즐겼다. 철없던 젊은 날 만나서 40여년의 고락을 함께 한 아내와의 데이트. 비록 몸은 70을 벌써 넘긴 초로이지만 마음만은 아직 옛적의 청춘기에 있음을 새삼 확인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