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을정취 가득한 서울 주택가

카테고리 없음

by 솔 뫼 2021. 9. 24. 12:21

본문

빨간 고추, 썰은 가지와 애호박에 향수



참 정겨운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추석 이틀 후 동네의 주택가 골목을 걷다가 만났다. 약간 언덕의 오래된 주택가여서 5층짜리 연립주택들이 즐비한 동네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한낮. 따가운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어 한적했다.


그 골목 한 곳에 철제 빨래건조용 받침대를 세우고 넙쩍하게 썰은 가지, 새빨간 고추, 동그랗게 썰은 애호박을 담은 그릇이 얹혀 있었다. 어릴때 가을이면 흔하게 보았던 풍경들이다. 어머니나 누나들은 서리가 내리기 전에 빨간 고추도 말리고 가지, 호박, 고구마 잎줄기, 들깻잎, 고춧잎들을 용도에 알맞게 손질해 가을 빛에 말리거나 소금물에 절여서 겨우살이 준비를 했다. 배춧잎이나 무 청도 그렇게 말렸다가 겨우내 밑반찬 재료로 사용했다. 영양가 따지기에 앞서 너무나 정겨운 음식들 아닌가? 다만 그때는 빨래건조대 위가 아니고 마당에 널찍한 멍석이나 자리를 깔아서 그 위에 펼쳐서 말렸다.


조금 더 가니 길쪽으로 난 어느 단층집 유리 창문앞엔 닭벼슬을 닮은 맨드라미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고향집 마당 한쪽 장독대옆 좁은 화단에 해마다 피던 꽃이라 정말 반가왔다.


그리고 근처의 또 다른 집엔 내 주먹만큼 굵어진 감들이 아직까지는 푸른 잎에 쌓인 채 노랗게 물들며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 고향집에도 대봉감, 단감 등 세 종류의 감나무 10그루가 있어 가을이면 감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어 하늘을 물들였었다.


그 밖에도 좁은 골목길 가의 풀밭에서는 보라색 나팔꽃이나 이름 모를 가을꽃들도 피어 있었다. 이들을 보노라니 이제는 아련한 추억 저너머에 가라앉은 향수가 물밀듯 엄습했다. 이 생각에 이어 가을 햇살에 웃음짓는 과일과 꽃들, 그리고 새파란 하늘에서 또 한 해가 살같이 지나가리라는 안타까움도 뒤따른다. 그래서 가을은 서글픈 계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