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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릉 때죽나무길

사진 소묘

by 솔 뫼 2025. 5. 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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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릉 때죽나무 길에서 옛 추억 더듬고

세 陵에선 역사의 아픔과 무상함을 절감

 
 


서울 선정릉의 5월은 활짝핀 때죽나무꽃과 쪽동백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조그만 종을 닮은 하얀 꽃인 데 향기가 강하다. 이 꽃들 때문에 나는  서울 강남의 조용한 산책 명소를 하나 꼽으라면 선정릉을 꼽고 싶다. 그곳은 강남구 한가운데 있는 데다 주변에 테헤란로 등 교통량이 많은 대로 옆이지만 산속처럼 고요하다. 아주 넓지는 않지만 릉의 안쪽은 숲이 울창하고 나뭇잎의 그물맥처럼 이어지는 숲속 산책길들에선 고요한 아름다움과 안락한 느낌을 주는 꽃들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꽃들 중 나는 가지를 따라 길게 줄줄이 피는 작고 하얀 때죽나무꽃이 좋다. 이 꽃들은 모두 땅을 향하고 있어 아래에서 쳐다보면 더 예쁘다. 다소곳하고 얌전한 모습 때문인지 꽃말도 사랑, 평화, 순수함 등이란다. 종을 닮은데다 하얗기에 영어 이름도 'snow bell'이다. 이 꽃엔 달콤하게 느껴지는 상당히 강한 향기가 있다. 그래서 문인들은 때죽나무를 ‘순백의 꽃과 은은한 향기로 고요함을 통해 봄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나무’라고 노래했나보다.
 

땅을 향해 핀 때죽나무꽃들이 잠시 드러난 파란 하늘 아래 더 하얗게 느껴진다.


지난 주말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 비가 그친 다음 날인 일요일(5월11일) 한낮에 집사람과 함께 선정릉을 찾았다. 비는 안 내렸지만 잔뜩 흐린 한낮이었다. 젊은 시절 10여 년 넘게 서울 강남에서 살았던 나는 이곳을 잘 안다. 지금은 40대 중반을 넘긴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닐 땐 소풍도 자주 갔던 곳이다. 그러나 20여 년 전 강남을 떠난 이후엔 한두 차례만 들렸을 뿐 거의 찾지 않았다. 물론 그 옆을 지나다닌 일은 부지기수다.
 

입구 안내소에서 받은 선정릉 안내도


오전 일찍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오다 문득 그 작지만 예쁜 하얀 꽃들이 생각났다. 나는 몰랐지만 친구들과 자주 이곳에 들린 아내는 선정릉 숲길의 때죽나무가 아주 예쁘다고 했다. 마침 요즘이 때죽나무를 비롯해 쪽동백, 아카시아 등이 꽃피는 때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날 그 나무 아래를 지나면 달콤한 향기가 상당히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갔다. 하늘에 매달린 하얗고 작은 종들에서 들려오는 ‘하얗고 향기로운 소리(?)’를 즐기고 싶었다.
 


출입구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잘 가꾸어진 숲길로 이어진다. 노인들이라 입장료가 무료란다. 선릉(宣陵)은 조선의 제9대 성종과 그의 세 번째 계비 정현왕후가 서쪽과 그보다 좀 동쪽 언덕에 각각 모셔진 묘역이다. 그리고 정릉(靖陵)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중종의 묘역이다. 중종은 정현왕후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데 그의 세 왕비는 각각 다른 곳에 묻혀있다. 성종과 중종은 나라를 잘 다스린 성군으로 꼽힌다.
 


선정릉에 들어서면 가운데의 숲이 무성한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도는 길이 있고 중간에도 가로질러서 넘어가는 길이 몇 개 더 있다. 언덕의 서편엔 성종, 그 보다 조금 동쪽인 릉의 북쪽 끝에 정현왕후 무덤이 있다. 중종의 묘는 매표소에서 가까운 언덕 동쪽에 떨어져 있다. 그 길들 말고도 작은 길들이 몇 개 더 있고 경사도 심하지 않거나 평지여서 마음껏 여유를 즐기며 걸어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선정릉 안에는 소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때죽나무와 쪽동백을 비롯해 꽃이 피는 다른 나무들도 많다.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여러 곳에 설치돼 있어 금상첨화다. 릉 안에는 아직 조금 덜 핀 때죽나무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종류에 속하는 쪽동백도 있다. 쪽동백은 이미 만개해 벌써 많은 꽃이 떨어져 있었다. 근처엔 향기가 아주 강한 아카시아도 만개해 짙은 향가를 사방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때죽나무 열매와 잎엔 마취성분을 가진 에고사포닌이 들어있어 찧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떠오른다고 한다. 또 에고사포닌은  물에 풀면 기름때를 없애주므로 열매를 찧어 푼 물로 세탁도 했다고 한다.
 

만개한 쪽동백꽃(위)과 땅에 하얗게 떨어져 있는 꽃.
향기가 무척 강한 아카시아꽃도 하얗게 피어있었다


선릉과 정릉은 임진왜란때 왜군들에 의해 릉이 파헤쳐지고 관까지 불태워진 수난을 겪었다. 게다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비만오면 침수가 잦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종의 세 번째 왐비 문정왕후는 남편 옆에 묻히기 위해 서오능에 있던 남편 중종의 정릉을 이곳으로 이장시켰지만 사후에 합장되지는 못했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 주차장 엘리베이터 안에 커다란 침수경고용 알람이 있어 이곳이 상습침수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성 당시에는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이었을 이곳의 경천동지할 만한 변모속에 역사의 아픔과 세월의 무상함이 스며있었다.
 

 

<  2025년5월13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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