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리산 '잣향기 푸른숲'은 눈과 코가 즐거운 곳이다. 그 숲속으로 난 길들은 평범한 산길이 아니라 피로 회복과 치유의 길이다. 새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울창한 잣나무 숲은 자연이 베푸는 거대한 안식과 치유의 장소다. 보이는 것은 하늘을 가린 잣숲의 짙은 녹색과 그 사이 사이로 펼쳐지는 신록의 연두빛 반짝임들 뿐이다. 마지막 아름다움을 자랑하려는 듯 분홍빛 철쭉들이 산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도 한다.



발밑의 부드러운 흙길에선 명산의 힘찬 기운이 다리를 타고 전해지는 듯 했다. 간간이 나타나는 급경사 구간에서 호흡이 가팔라지면 코 속으로 파고 드는 송진 냄새 품은 잣 향기가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그 위에 각종 봄꽃들의 향기를 담은 선선한 바람까지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서리산 잣향기 푸룬숲'이었다.



구름 한점 없이 청명했던 지난 5월9일 아침6시쯤 나는 가벼운 산행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내가 나가는 남포교회(잠실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소재) 산악회원 44명과 만나 버스로 가평군 서리산의 산철쭉을 보러갔다. 경기도 가평군과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서리산(해발832m)은 잘 알려진 축령산(해발 887m)과 완만한 능선길로 3km쯤 떨어져 있다. 서리산은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조금 불편한 데다 축령산에 가려 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해발 450m-600m 지대에 수령 90년이 넘은 잣나무로 이루어진 국내 최대의 울창한 숲이 있다. 또 정상에서부터 펼쳐지는 북사면의 넓은 산철쭉 군락지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철쭉이 만개하면 그 모습이 한반도 비슷하게 산비탈에 그려진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갔을 때는 대부분의 꽃들이 지고 연두빛의 잎들이 햇살을 받고 있었다.



7시빈쯤 서울을 출발해 약 한시간만에 '잣향기 푸른숲' 주차장에 도착했다. 널리 알려진 '아침고요수목원' 입구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3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간 곳이었다. 산속에 내리니 하늘 높이 솟은 잣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매표소에서 입장수속(경로우대자는 면제) 후 산행로 입구에서 9시쯤 기념촬영 후 우리 일행은 밀림처럼 무성한 잣나무 숲속으로 나있는 무장애 데크로드를 따라 꼬불꼬불 완만하게 걸었다. 15분쯤 걸으니 잘 관리된 평탄한 길이 나왔다. 길옆의 관리센터 사무실 화단에는 분홍과 백색 철쭉꽃이 예쁘게 피어 우리들을 반겼다. 하늘 높이 자란 잣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운 산길은 완만한 경사여서 걷기에 편했다.




그 길을 따라 10여분을 걸어 우리는 60년~70년대 초까지 6가구의 화전민들이 살았었다는 너와집과 귀틀집에 도착했다. 물론 산촌체험을 위해 옛 모습대로 복원한 집이지만 전시된 농기구 등 생활도구들을 통해 화전민들의 생활양식과 삶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너와집은 소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은 집이고 귀틀집은 통나무들을 井자 모양의 사각형으로 귀를 맞춰 쌓아 올려 흙으로 벽체의 틈새를 막아 지은 집이란다. 기념 촬영후 다시 산길로 나섰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있어 이정표를 잘 확인하며 능선의 헬기장 쪽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한 두번 헤매고 되돌아 나오기도 했었다.




20여분만에 우리는 물이 그득하게 담긴 자그마한 산중 호수에 도착했다. 주변의 경관을 파란 수면에 거꾸로 담겨 비치는 등 경치가 정말 멋진 이 호수는 산불진화용 물을 긷거나 기타 재해방지를 위한 사방용 댐이다. 호수 옆 그늘에서 일행은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한 후 물가의 철쭉 꽃을 벗삼아 다시 걸었다. 햇살은 따가왔지만 우거진 숲속 길을 걸었기에 햇살은 거의 우리 몸에 와 닿지가 않았다. 길은 대부분 부식된 낙엽이 살짝 깔린 흙길이서서 부드럽게 느껴졌다. 여러 종류의 꽃향가들이 섞여 있는 향기로운 산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도중의 갈림터에서 우리는 산 능선의 헬기장으로 가는 길로 걸었다. 숲길들엔 대부분 이름이 있었는데 헬기장 가는 길은 새소리 길이란다. 다만 새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오전10시쯤 밖에 안 된 이른 시간이어서 새들이 울지 않았을까?




그런데 일행 중 산길을 잘 걷는 데다 서리산 일대 지리를 꿰뜷고 있는 7명은 산악회장이자 산행대장에게 알리지도 않고 대열을 벗어났다. 그들은 능선의 절골쪽으로 바로 올라가 이날의 행선지 서리산 정상과 반대쪽에 있는 축령산 정상으로 향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되지만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축령산 정상에 올랐다가 곧 바로 우리 일행을 뒤따라 오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했고 걷기 좋은 흙길이었다. 다만 두 어 곳은 경사가 좀 심했고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도 있었지만 길지는 않았다.




능선에 올라서니 새파란 하늘 아래 신록으로 단장한 주변 산들의 멋진 푸른 춤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일년 중 초여름에 펼쳐지는 신록의 물결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같은 잎새들이지만 초여름 신록으로 물든 잎들에는 새로 돋아나는 젊음의 활력까지 깃들어 있어 그럴 것 같다. 그저 좋다는 감탄들만 연발하며 걷고 걸었다. 도중에 헬기장 사거리 공터에서 쉬며 숨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안내판 기준으로 1.7km를 더 걸어서 서리산 정상표지석 앞에 도착했다. 산행 시직한지 2시간15분 만이다. 그런데 거기엔 시장을 방불게 할만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단체이든 개인이든 모두가 등정(登頂)의 순간을 기념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순 없는 법. 먼저 올라왔든 뒤늦게 따라왔든 기념 촬영을 하고 다시 일행이 함께 모여 찍기도 했다.




그리고 정상에서 철쭉전망대까지 산의 북쪽 사면에 펼쳐진 널따란 철쭉동산 길을 걸으며 남아있는 꽃들을 즐겼다. 거의 끝무렵이라 대부분의 꽃들은 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왔다. 전망대 데크에서도 많은 기념 사진을 찍은 후 하산을 시작했다. 약30분쯤 평탄하게 내려가든 길은 쉼터를 지나면서 경사가 아주 심한 길로 변했다, 길 이름은 풀향기길.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니 경사가 더 심한 잣향기 길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상을 오를 때는 사용 안 한 등산 스틱을 꺼내 짚으며 내려오기를 참 잘 한 것 같았다. 일부 구간은 급전직하의 급경사였기 때문이다. 발밑이 흙길이라 미끄럼 사고에도 주의하며 우리들은 오후1시쯤 무사히 하산을 마쳤다. 등산로 마지막의 울창한 잣나무숲을 벗어나니 밝은 햇살을 받고 있던 분홍색 철쭉꽃들이 화사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이날 우리들이 걸은 거리는 약8km였다.




함께 버스에 올라 10여분을 달려 큰길가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즐겼다. <또 먹세 순두부>라는 음식점 이름이 우리들의 식욕을 더 돋우어 주는 것 같았다.여러 가지 나물에다 강된장을 얹어 비빈 보리밥과 양푼에다 담아주는 푸짐한 순두부와 입맛을 돋우는 열무 김치는 천하일미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했다. 주인의 인심도 참 너그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친 후 귀경길에 올랐다. 경춘국도로 20여 분쯤 달려온 길가의 어느 음식점 마당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들은 격에 맞지 않게 배달된 커피와 차를 마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도 가까운 산중의 전망 좋은 카페에 미리 주문을 하고 갔지만 좁은 산길이어서 버스가 찻집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찻집 종업원들이 승용차로 컵에 담은 차를 갖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래서 추억일지 해프닝일지 모를 얘기거리 하나를 더 남긴 셈이 됐다. "추억은 아름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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