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날을 연상시키는 한가로운 봄날 아침.
산들산들 불어 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조용한 꽃길을 걷습니다.
바람이 건듯건듯 불때마다 연분홍 꽃잎들이 비처럼 쏟이집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꽃비 방울들이 길섶 풀위나 포장도로에 꽃을 엷게 뿌려놓은 돗자리처럼 쌓이네요.
낙화도 꽃처럼 아름다운 줄을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아침 새삼 아름다움을 실감합니다. 고운 연분홍 꽃잎들이 떨어져 누운 그 길을 지납니다.
행여나 그 분홍빛 님들을 밟을까 조심조심 발돋움 하며 걷습니다. 바람이 계속 살랑거리며 나무를 간질이고 꽃비는 계속 내립니다.
선조대부터 광해군, 인조, 효종대까지 문명을 날렸던 성리학자 선우협(1588~1653)의 가사 한 수를 읊어 봅니다.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도화(滿庭桃花) 다 지겄다.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구나.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 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