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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맞이 黔丹山行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2. 2. 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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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친구와 함께 즐긴 참 멋진 산행


입춘의 따사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산길이었다. 아침기온은 영하7도로 동장군의 위세가 아직 시퍼랬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봄볕처럼 따뜻했다. 겨울속의 봄 같았던 입춘날 고향친구와 둘이 하남시 검단산에 올라 성큼 다가온 봄기운을 앞당겨 즐겼다. 산 아랫쪽엔 봄날처럼 포근했지만 정상 가까운 산가슭에는 며칠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겨울을 실감케 했다. 저멀리 산아래 팔당호와 양수리엔 얼어붙은 한강물에 눈이덮여 굵은 백색선이 굽이치고 있었다. 멀고 가까이 보이는 산들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부르는 봄노래가 은은히 들리는 듯 했다.


설날 연휴가 계속되던 이날 오전10시 45분 서울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역에서 우리는 산행을 시작했다. 안산시에 사는 친구는 무려 2시간을 달려왔다. 산이 좋고 친구가 좋아 먼 길을 가까운 듯이 달려왔단다. 특히 친구는 30년쯤 전에 검단산과 가까운 동네에서 오래 살아 이 산에서는 향수같은 것을 느낀다고 했다. 70대 중반을 맞은 우리는 고향의 추억까지 버무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상을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10분쯤 큰 길을 따라가면 바로 유길준선생 묘소앞으로 통하는 등산로 들머리에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길은 완만하게 숲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교적 평탄한 흙길에서 벌써 봄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추위가 심할 것에 대비한 차림이라 20분도 채 안 걸었는데도 벌써 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낙엽송과 활엽수들이 무성한 산길이지만 잎이 없는 가지들 사이로 겨울햇살이 파고든다. 마침 바람도 거의 없어 더 포근한 숲속의 한낮이었다.


우리는 길가 벤치에서 물도 마시고 옷도 한겹을 벗었다. 그리고 길의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해 스틱도 짚으며 산행을 계속했다. 검단산은 정상이 657m여서 그다지 높진 않지만 주능선까지 경사가 상당히 심하다. 어떤 곳은 코가 거의 길에 닿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구간이 등산객 안전을 위해  설치된 나무계단(데크 로드)이나 돌계단 길이어서 무릎이 약한 사람들은 오히려 힘들어 한다. 그렇지만 고향의 산길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들에겐 더 편하게 느껴지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가팔랐지만 친구가 쏟아내는 진심어린 이야기들이 가파른 길의 고달픔을 잊게 해주었다. 2남1녀를 출가시킨 친구는 근년들어 다소 불편했던 일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잘 극복하고 70대 초로의 건강한 삶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사심없이 들려주었다. 조용하고 내성적 성격이기에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좋고 산이 좋단다. 나 역시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과 많은 추억들과 흉허물 없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날 그 산길은 우리들의 멋진 대화방이자 상담소역활도 했으며 추억을 불러낸 아름다운 여행길이기도 했다.


산행시작 한 시간여만에 우리들은 주능선에 올라섰다. 검단산은 주능선이 완만하고 길게 이어진다. 주능선에 서면 동쪽엔 팔당호와 양수리, 북동쪽엔 운길산과 예봉산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 주능선 북쪽 끝은 천길 낭떨어지! 그 아래로 한강이 흘러간다. 팔당댐을 빠져나온 한강은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를 통해 미사리를 지나 하남시를 왼쪽으로 감싸고 서울로 흐른다. 댐 위에서는 하얗던 강이 미사리에서는 새파란 하늘색으로 변했다. 물이 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단산 최고의 전망대일 것 같은 절벽에 서서 온갖 포즈 다 취해 기념촬영을 했다.


거기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300m-400m쯤 되지만 가파른 계단길도 두 곳이 버틴다. 그렇지만 왼쪽에 펼쳐지는 팔당호와 양수리 일대의 탁 트인 조망이 내게는 천하일경 수준이다. 내가 검단산을 자주 찾는 이유는 이 구간의 조망이 정말 좋아서다. 그 길엔 녹지않고 있는 눈이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어울려 아직 겨울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이날 산행에서 처음으로 추위를 느낀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없었던 팔각정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역시 '다이내믹 코리안'의 기질이 발현된 것 같아 웃었다. 마침 조망이 좋은 전망대앞이어서 기념촬영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산행시작 약 두 시간 만이었다. 사진솜씨 좋은 다른 산꾼이 정상표지석앞에서 우리들의 기념사진을 멋지게 찍어주었다.


정상 바로 아래 양지바른 터를 잡아서 준비해간 음식을 펼쳐 막걸리 반주해 점심을 먹었다. 하늘엔 언제 생겼는지 모를 구름 몇 조각이 떠있다. 우리들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와 비둘기 몇 마리들이 함께 먹자고 소리를 질러댔다. 마음착한 친구가 음식을 조금 집어 던져주자 가까이 있던 비둘기가 잽싸게 물고갔다. 느긋하게 겨울 햇살을 받으며 산상오찬을 즐긴 후 유명한 곱돌약수터쪽 길로 하산했다. 그 길은 급전직하의 급경사였고 나무 데크와 돌계단 길이다. 눈얼음도 여러 군데 묻어있어 발밑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곱돌약수터는 사냥나왔던 이성계가 마시고 시원해서 감탄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이날은 얼어 붙은데다 '식수부적합' 푯말까지 붙어 있었다. 약수터를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높고 울창하게 자란 전나무 숲길이다. 짧은 겨울해는 벌써 서산머리쪽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초로의 할아버지답게 쉬엄쉬엄 걸은 탓에 지하철약엔 4시에 도착했다. 정말 멋진 입춘맞이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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