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冬과 混濁한 세상 지나 봄도 와
대통령 자리를 향해 온 나라를 뜨겁고 시끄럽게 했던 정치싸움이 끝났습니다. 좀체 그칠 것 같지 않던 지난 겨울의 맹추위도 이젠 꼬리를 감춘 듯 합니다. 그뿐일까요? 반도의 등줄기를 맹렬한 불길로 태우던 울진의 산불도 아흐레만에 꺼지려나 봅니다. 이래서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이나 어려움도 가릴 것 없이 '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아울러 새 대통령이 결정됨에 따라 지난 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저질렀던 현정권에 대한 불만들도 사라질 것 같네요. 아무쪼록 다음 정권에는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정치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날은 맑고 무척 따뜻했습니다. 오히려 가벼운 더위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투표 후 아내와 함께 한강 둔치로 나가 양지쪽 산책로를 걸었지요. 그 길에서 우리부부는 아주 반가운 봄손님을 만났습니다. 그 손님은 귀엽고 예쁜데다 부끄럼을 타는 듯 겨우 고개를 반쯤 들고서 우리를 맞았습니다. 겨울에도 잎이 시들거나 지지않는 이름 모를 풀잎 사이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샛노란 민들레 였습니다.
민들레를 본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국어책 앞쪽에 실려있었던 동시가 생각났습니다.
''길가의 민들레도 노랑저고리.
첫돐 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저고리.
길가의 민들레야 웃어 보아라. 아가야 방실방실 웃어보아라.''
열살 무렵에 배운 것이라 정확히 맞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60년 가까운 세월의 거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오늘 아침 동네의 산길에서도 또 다른 반가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났습니다. 길가 풀밭 가에서 다소곳이 솟아난 파란 새싹들 이었지요.
20여개가 무리지어 있는 싹들은 튤립의 새순 같았고 좀 떨어진 곳에선 내가 잘 모르는 풀속에 냉이 한 포기가 날개처럼 손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봄이 왔음을 어떻게 알고 이 여린 생명들이 이렇게 땅을 뚫고 솟아나왔을까요? 알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연약한 풀들이 지닌 생명의 강인함과 경이로움에 감탄했습니다. 넋놓고 그들을 지켜보다 집에 오다보니 아파트단지 양지바른 건물벽앞 화단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콫들이 피어나게 하는 힘을 지녔나 봅니다.
집에 들어오니 베란다에 둔 화분에서 샛노란 수선화가 활짝 피어 웃으며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 화분에서 씩씩하게 자란 튤립도 붉은 꽃망울을 힘차게 밀어 올리고 있었지요.
이들을 보는 순간 춥고 어두웠던 엄동을 웅크리고 지내온 보람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즐거움이나 행복이란 것이 꼭 특별해야만 할까요? 이런 것들에서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게 바로 행복이고 즐거움 아닐까요? 열어 제친 창으로 들어 온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잔잔한 수선화 향기가 코를 찌르는 아침입니다. 이게 바로 소확행(小確幸)이겠지요? < 2022년3월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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