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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주막 酌婦와 섣달 그믐밤

단상

by 솔 뫼 2022. 1. 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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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무릅쓴 멋진 쾌거 주막 작부가 발설

陰歷 辛丑年 마지막 해가 안개속에 붉게 떠올랐습니다.


설이 다가 오면 떠오르는 옛 추억들이 정말 많지요? 저는 엉뚱한 객기 때문에 곤욕을 치렀지만 재미있었던 젊은 날의 이야기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 일은 대학교 2학년 겨울 섣달 그믐밤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50년도 훨씬 지난 옛날의 일이 되었네요. 그날 밤은 정말 춥고 마을골목은 깜깜했습니다. 그즈음 시골에도 전기는 들어왔지만 가로등이 띠엄띠멈 했고 그나마 일부는 꺼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집집마다 설날 준비로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었지요.

부잣집 祭需음식 서리하기로 모의

내 고향마을에는 '부잣집'으로 불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대궐 같은 기와집에다 묵직한 대문, 넓은 앞뒤마당이 있었지요. 그리고 집 뒤안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과 감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요.

그 집 주인영감(할아버지)은 구두쇠인데다 성질까지 고약해 툭 하면 동네아이들을 혼내거나 훈계 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자라서도 그 영감에 대한 응어리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할일 없는 친구들 넷이 모여 이 집을 골려주기로 했습니다. 그 집에 잘 장만해 두었을 맛있는 설날 제수음식들을 서리(사실은 도둑질)하기로 했습니다.

은 개 짖게하고 둘은 찬광 털어

그 집엔 무서운 개가 2마리나 대문(동쪽)과 다른 한곳(남쪽)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집 찬광은 사랑채 끝에 있는데 뒤안 대나무 숲 쪽이어서 개 있는 곳과는 먼 곳입니다. 시간은 자정쯤이었을 것 같습니다. 2명은 개가 계속 짖도록 개집부근에서 돌멩이를 던지거나 인기척 소리를 냈습니다. 사람들이 개 짓는 쪽에만 신경 쓰는 사이 나머지 둘은 뒷쪽 대나무 숲을 통해 찬광에 들어갔지요.

찬광에 있던 커다란 냄비에 전리품들을 잽싸게 주어 담았습니다. 잘 손질한 닭 2마리, 양념해서 재어 둔 넙적한 너비아니 바구니 등 맛있고 푸짐한 것들이었지요. 우리들은 그 전리품을 친구네 집 으슥한 곳에 숨겨두고 설을 쇠었습니다.

한 해 마지막 아침해가 엷은 구름에 걸려 있습니다.


주막집 젊은 작부와 신나게 먹고 마셔

이틀 후 정월 초이튿날 밤에 그것을 몰래 꺼내 우리 마을과 이웃마을 중간쯤에 있는 외딴 주막으로 갔습니다. 겨울 날씨라 음식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인적 끊긴 밤중에 그 주막집에서 젊은 작부까지 가세해 굽고 볶아 밤늦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참 재미있게, 속이 시원하게 감쪽같이 해치웠다며 속이 시원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경찰서 형사가 찾아오더군요. 도둑맞은 집에서 수소문 끝에 이 작부를 통해 모든 걸 알아냈던 것입니다. 4명 모두 경찰서에 불려가 된통 야단맞고 훈방되었지요. 그 부잣집의 큰 아들(당시 성주면장)을 비롯한 마을 어른분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던 덕분이었지요. 그 대신 아버지한테는 정말 야단 호되게 맞았습니다. 이제는 젊은 날의 빗나간 객기가 빚은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추신> 그 주막의 작부는 상당히 예뻤습니다.
따라서 평소 나이어린 우리들에게는 '접근불가-촉수엄금'의 여인이었지요.
그런데 그날 어른들이 없는 틈새를 우리가 몰래 파고들었지요.
그때만 해도 시골동네엔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지는 몰라도 오래 된 풍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은 동네에서 한 해의 평온을 빌며 ‘정성을 드리는 날’이어서 어른들의 가무음곡이 금지된 날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주막엔 손님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심심했던 작부가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 넘어 간 탓도 있었겠지요. 지금 생각해도 한없이 재미있었던 장난 같습니다.


--- 이 글은 2009년1월 중앙매스컴사우회 카페에 실었던 글을 다시 潤文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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