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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아침에---

단상

by 솔 뫼 2022. 1. 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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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해를 품었을까?

모든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새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밝아오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맞이 행사는 취소됐다. 그러나 그 장소엔 여전히 몰려든 인파로 붐볐다. 새해를 밝혀줄 해는 아직 산 너머에서 동쪽 하늘만 물들일 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영하10도의 매서운 겨울 아침이 사람들의 열기에 누그러지고 있었다. 발아래엔 천리를 흘러 온 한강이 굽이치고 강 건너 남쪽엔 하늘 높이 솟은 남서울의 빌딩들이 붉은 아침노을빛에 비쳐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새해 첫날의 일출이라고 해서 어제와 다를 리는 없다. 그렇지만 여기 몰린 이 사람들의 눈에 비치고 마음속에 뜨는 해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아니 다르게 보고 느끼고 싶을 것이다. 똑 같은 해지만 불과 몇 시간을 사이에 두고 묵은해와 새해로 구분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힘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처럼 추운아침 이른 시간에 이 산봉우리까지 올라오게 했을까? 그들 모두는 무슨 생각과 소망을 품고 왔을까?

이 많은 사람들은 솟아 오를 해를 향해 무었을 기원하려 모였을까요?


서울 한강변 금호산 매봉에서 본 동쪽하늘은 석류꽃만큼이나 붉었다. 그 동녘하늘이 곧 불덩이 같은 새해를 불끈 밀어 올릴 기세다. 그러나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 새해의 일출순간이 주는 감동과 장엄한 아름다움을 몰려든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발길을 옮겼다.


해뜨기 직전인데다 바람도 불지 않는 산길은 별로 춥지 않았다. 함께 나온 동생과 산길을 걸어 서쪽에 보이는 남산N타워를 향했다. 일부 터만 남은 한양성곽구간과 국립극장을 지나 팔각정으로 가는 계단 길로 올랐다. 완급을 달리하던 비탈진 계단길이 끝나는 곳에서 제대로 남아있는 한양성곽을 만났다. 눈앞엔 하늘을 찌르며 높이 솟은 N타워가 새해아침의 햇살에 빛나고 있다. 하늘로 치솟는 민족의 기상이 담긴 탑이다. 바로 그 앞에 남산의 옛 이름인 목멱산 봉수대가 있다.


경사가 심한 길을 조금 더 걸어 봉수대에 올랐다. 새해 아침햇살을 받은 서울 시가지가 북한산과 인왕산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나라 안 방방곡곡의 모든 소식들은 여기로 모였단다. 비록 봉화불은 타오르지 않지만 옛 모습으로 복원된 봉화대는 지금도 새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다. 그 긴 세월 얼마나 많은 소식들이 오갔을까? 멀리 북악산 아래에 소식을 받았던 경복궁이 보인다. 준비해 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새해를 시작했다.


집에 들어와 1년 전 오늘의 일기를 읽어보니 만감이 교차된다. 듣도 보도 못한 고약한 전염병 코로나19의 횡포에 정신 없이 한 해를 보냈던 일과 새해다짐들이 적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기대했던 전염병은 모습을 바꾸어 가며 지금까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생각을 가다듬어가며 꼭꼭 눌러 썼던 다짐들은 태반이 글자로만 남은 상태로 또 해가 바뀌었다. 새해 첫날의 이 다짐들은 일기장 첫 페이지의 기록용으로만 전락한 게 어디 올해만의 일이었던가? 다시 읽어볼수록 씁쓰레한 뒷맛만 느껴져 서글퍼진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골라내 일기장 첫 장에 기록해 두었다. 매년 단골 메뉴인 건강관리와 자기계발, 그 외 좋은 남편이나 아빠, 할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염원들이 적힌다. 비록 다 지키지 못하고 이루지 못 할지언정 ‘생각조차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위안을 앞세웠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로 열심히 이 다짐들을 이루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한 번 더 다짐도 했다. 물론 매년 똑 같은 ‘다짐 실행 다짐’을 했지만.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싼 연봉들. 좌측부터 보현봉 백운대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아침에 떠올랐던 해는 벌써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겨울하늘의 한가운데서 빛나고 있다. 붉은 빛을 사방에 뿌리며 솟아 올라 마중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비춰주었던 그 해다. 지금은 붉은 빛을 잃었지만 분명히 같은 해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의 해를 가슴에 품었을까? 어떤 색깔의 해를 마음속에 담았을까? 그리고 어떤 소망을 빌었고 어떤 다짐들을 하며 산을 내려왔을까? 비록 나는 해가 떠오르기 전의 붉은 노을빛만 보며 지나왔지만 그 사람들의 새해 소망이나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모습들이 궁금해진다.

온 나라를 달구고 있는 새대통령 선거에 대한 염원들도 담겼을 것이다. 또 새해에는 정의와 공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세상이 되게 빌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게는 가족들의 건강이나 행복을 바라는 기도를 했으리라.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며 걸었으니까.

이 모든 소망을 듣고 담았을 해는 내일도 변함없이 붉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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