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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錦繡山속의 즐거움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2. 7. 3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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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처럼 계곡물에 홀랑 벗고 목욕


그날 새벽을 알리는 수탉들의 울음소리에 새벽잠을 깼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숲속의 공기는 아직 서늘했다. 아침 뉴스에서는 폭염주의보로 전국이 온통 난리였단다. 그렇지만 그 산속 호반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숙소에서 파란 솔잎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청풍호의 물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호수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엷은 구름이 낀 하늘과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전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던 그해 730일부터 23일 동안 나는 더위를 모르고 지냈다. 크지도 넓지도 않은 우리나라인데 이렇게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큰 딸이 휴가를 얻었다기에 집사람과 셋이 충북 제천시의 금수산 자락에 있는 리조트로 갔다. 이곳은 청풍면과 수산면 일대여서 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곳이다. 사람들은 이 일대의 호수를 청풍호(淸風湖)’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물 맑고 바람 시원한 호수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엔 해발 1,094m의 월악산과 1,016m의 금수산 등 1,000m급 준령들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 그 산들에 있는 송계계곡, 능강계곡 등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시원한 물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유혹한다. 내륙의 바다라고도 불리는 충주호의 상류인 이곳은 숲이 울창한 산들과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마저 풍긴다. 교통도 편리해 서울에서 서너 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금상첨화다.

서울서 떠나던 날 오전 중부고속도로는 동서울 톨게이트부터 차량 정체가 심했다. 그래서 서이천 톨게이트에서 국도로 나갔다. 요즘은 국도도 고속도로 못지않게 넓고 곧게 벋어있어 좋다. 국도를 달리다 제천시 봉양읍 부근의 음식점에서 이 지방 별미인 묵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메밀묵과 따뜻한 밥, 잘게 썬 김치와 고소한 양념장이 빚어내는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냉방이 잘 된 음식점에서 나오니 복중의 후끈한 열기가 숨을 턱턱 막는다. 폭염에 달구어진 승용차안도 한증막 같다. 자동차 창문을 열어놓고 시골길을 달렸다. 충주호반을 끼고 이어진 산복도로를 달리니 벌써 서늘한 느낌이 든다. 예약해 둔 리조트 객실에 들어가니 장장하일의 해가 아직 중천에서 이글거린다. 냉방장치를 켜지 않았는데도 방안은 시원했다.


객실 앞으로는 잎이 무성한 소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파란 충주호가 내려다 보였다. 마침 유람선 한 척이 한가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먼 길을 달려온 탓에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한 시간여의 낮잠을 즐긴 후 숲길을 산책하고 언덕에 올라 붉게 피는 낙조도 즐겼다. 해가 완전히 서산으로 넘어간 후에도 노을은 오랫동안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땅거미기 짙어질 무렵 객실로 돌아와 한 잔의 와인으로 휴가 첫 날의 일정을 마감했다.

다음 날 닭들의 울음소리로 이른 아침에 잠을 깼다. 호수의 물안개와 하늘의 옅은 구름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우리들은 숙소 부근의 능강계곡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20분쯤 산길을 오르니 계곡엔 아무도 없었다. 좀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물이 맑고 깨끗한데다 차기가 얼음물이다. 물속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집사람과 딸은 널찍한 바위가 있는 물가 그늘에 돗자리를 폈다. 그들은 “오늘은 이 계곡에서 종일 버티겠다.”며 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간식 및 점심식사용으로 과자, 음료수, 찐 감자 등을 준비해 갔다.


나는 그들을 남겨둔 채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금수산에서 흘러내리는 이 능강계곡은 길고 깊은데다 흐르는 물도 많다. 게다가 숲도 울창해 한없이 시원하다. 이 계곡엔 9개의 굽이와 자그마한 소들이 있어 능강구곡으로도 불린다. 나는 금수산의 명물 얼음골까지만 다녀올 생각이었다. 정상 가까운 곳에 있는 얼음골은 바위틈에서 아주 찬바람이 나오는데 나는 아직 그 곳에 가보지 못했다. 오르는 길은 잘 정비 된데다 경사도 비교적 완만해 걷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제천시에서는 이 곳을 포함해 주변의 호반을 따라 둘레 길을 조성해 자드락길이라 했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역시 산길이라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나는 계곡물로 세수하고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약 두시간만에 얼음골에 도착했다. 바위들로 움푹하게 쉼터를 만들어 놓은 곳에 앉으니 더위가 싹 사라진다.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바위틈새에 언다는 얼음이 올 여름엔 얼지 않아 서운했다. 먼저 올라온 등산객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고 바위틈 옹달샘의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다. 샘터 옆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금수산 주능선의 망덕봉까지 0.5km.

얼음골 찬바람으로 한 숨 돌린지라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졌다. 나는 배낭을 여미고 산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길이 지금까지 온 길과는 비교가 안 된다. 경사가 심해 코가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나무를 잡고 발밑을 조심하며 한 발, 한 발 올랐다. 땀이 흘러 바지까지 물에서 나온 것처럼 젖었고 숨도 무척 찼다. 기다릴 집사람이 걱정돼 전화를 하니 통화불능 지역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내친 김에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숨이 턱에 닿아 30여분을 오르니 능선이 나왔다. 능선에 오른 순간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이 맛에 힘들여 산을 오른다. 마침 능선에서 점심식사중인 사람들에게 정상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망덕봉과는 반대쪽으로 1.5km쯤 되며 30-40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전화통화도 능선에서는 됐다. 계곡의 식구들에게 정상으로 간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걸었다.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길이 정상 500m정도 앞에서부터 태도를 바꾸었다. 가파르기가 수직에 가까운 바위길이라 위험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아주 어려운 곳엔 철제 사다리가 설치돼 있어 올라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오르고 내려가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 끝에 마침내 1,016m 금수산 정상 표지석 앞에 섰다. 사방이 발아래에 펼쳐진다. 꾸불꾸불 펼쳐지는 충주호도 저 아래에 보인다. 줄줄이 벋어나간 파란 산줄기들도 장관이다. 옅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그 순간엔 뜨겁지가 않았다. 서울 등 전국 주요도시엔 폭염주의보가 내렸다는데 산꼭대기선 오히려 한기를 느낄 정도다.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금수산 정상이었다. 내가 이 리조트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도 넘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오르고 싶던 곳을 이번 여름휴가에 드디어 올랐다. 특별히 준비하지 않고는 오기 힘든 산을 휴가지에서 아주 자연스레 올랐으니 이보다 더 알찬 휴가는 없으리라. 같은 시각에 정상에 선 부부 등산객에게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나도 그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물론 계곡에 남은 식구들에게도 문자 메시지로 정상등정을 알렸다.


위험한 바위구간을 내려와 가져간 찐 감자 세 알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감자와 물뿐이었지만 한 상 잘 차린 음식 못지않게 맛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쉬웠다. 불어오는 산바람도 한결 더 시원했다. 얼음골에 다시 들려 몸을 식히고 차가운 샘물도 한 통 담았다. 한참을 더 내려와 맑은 물이 웅덩이를 이룬 계곡에서 알몸으로 미역을 감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의 냉기가 뼛속으로 파고들어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하도 차가워서 남자들의 상징인 음랑이 줄어들다 못 해 사타구니에서 안 보일만큼 바짝 달라붙어 버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못 참고 일어섰을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산의 주인이었다. 그렇게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물놀이를 즐기다 나와 예비로 남겨 둔 감자 한 알을 마저 먹으며 한기를 달랬다.

찬 계곡물로 씻은 티셔츠를 입고 하산 길을 재촉했다. 해발 높이가 낮아질수록 더워지고 또 다시 땀도 났다. 그 때마다 계곡에서 세수하고 땀에 젖은 등산수건도 씻었다. 물놀이에 지친 식구들은 리조트 숙소로 들어간다고 전해왔다. 한참을 내려온 나는 식구들이 놀다간 계곡에서 마지막으로 세수를 했다. 땀도 좀 흘렸지만 오늘처럼 즐겁고 시원하게 지낸 적은 없는 것 같다. 리조트 객실에 들어와서 찬물로 다시 샤워 후 마시는 맥주한잔으로 휴가 이틀째 놀이를 마감했다.

마지막 날 오전엔 숙소에서 체크아웃한 후 충주호의 절경 옥순봉 일대의 경치를 구경했다. 그리고 어제 놀았던 그 자리로 또 갔다. 그처럼 시원한 물가를 그냥 떠나기가 아쉬웠다.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을 발 담그고 더 놀다 서울로 향했다. 정체를 걱정했지만 뜻밖에 길은 막히지 않았다. 도중에 제천시 외곽의 맛있는 한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서울에 도착하니 430. 즐거웠던 23일의 휴가를 끝냈다.

< 이 글은 2016년7월30일-8월1일 다녀온 휴가이야기를 중앙일보 사우회 카페에 게재했던 글 입니다. 그런데 오늘(2022년7월30일) 다른 자료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해 여기로 옮겼습니다. 꼭 6년전 오늘 이야기 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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