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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 비무장지대를 가다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3. 10. 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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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삼각지 안 비무장지대를 가다
“통일되면 金化郡 제 이름 찾게 될 것”
 
 


지금은 이름이 사라진 고을 김화군(金化郡)! 그 김화군이 제 이름을 되찾는 날이 바로 민족의 비원이 풀리는 날이리라. 그런데 그 날이 언제쯤 올 것인가? 고유(固有)의 이름조차 사라져버린 고을의 한 마을에서 우리는 그 땅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 줄의 글과 몇 장의 사진으로만 전해지는 그 땅의 '아름다웠지만 한없이 슬프고 비통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민족 전체의 이야기 이기도 했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마을. 43번 국도변에 있는  이 마을은 북쪽엔 성재산과 계웅산, 남쪽은 화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길지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북진했고 병자호란때 는 청나라군이 남진한 전략과 교통의 요지 이기도 하다. 민통선 안쪽인 이 마을은 1970년대 정부가 주민들에게  토지를 제공하여 자원자들을 정착시켜 생성됐다. 거기에 있는 아담한 단층 양옥 건물의 현판엔 필기체로 ‘사라진 마을 김화이야기관’이라고 씌어 있었다. 또 그 현판 위엔 영자 대문자와 한글 고딕체 모형글자로 ‘HAPPY LlFE 김화’라고 큼직하게 세워져 있었다. 휴전 후 남쪽 민통선 이남에 남은 김화군은 전체 면적의 약 25%밖에 안 되는 데다 인구도 너무 적어 군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인접한 철원군에 편입됐다. 여러 가지 색깔의 글자들은 아름답고 다양했던 김화군의 옛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아랫쪽 붉은 곡선은 휴전선, 가운데의 붉은 사선은 금강산 가는 철로.


온 종일 흐리고 소나기와 가랑비가 흩뿌렸던 2023년 9월 30일.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 연휴 사흘째였다. 꿈 많고 패기 충만했던 학창시절 같은 서클에 함께 몸담고 어울렸던 선후배 7명이 강원도 김화와 철원의 비무장지대 여행에 나섰다. 그 동아리(한국문제연구회) 창립60주년을 기념한 통일기행 세 번째 모임이었다. 78세의 두 선배를 포함해 모두가 7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초로들이지만 옛 시절 품었던 통일을 향한 꿈과 이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김화이야기관에서 전쟁의 참상 실감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오전7시20분 서울지하철 교대역 근처에서 만나 북쪽으로 달렸다. 강북강변도로와 구리시를 지나 김화읍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는 한산했다. 미리 탐방예약을 한 우리는 두 시간도 안 돼 김화읍 생창리에 있는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흐린데다 비까지 예보됐었지만 비는 안 내렸다. 우리는 옆 건물인 ‘김화이야기관’에 들려 소형 모형으로 재현된 옛날 김화읍 시가지를 비롯해 각종 지도와 사진, 관련 글들을 보며 역사의 비정함을 절감했다.
 


벽에 걸린 김화군 지도는 약간 납작하게 그린 별 그림을 45도쯤 비스듬히 오른쪽이 높게 세운 모습이었다. 그 별의 아래쪽 3분의 1쯤에서 구불구불한 휴전선이 거의 수평으로 지나고 있었다. 해방직전 인구가 12,000명에 가까웠던 옛 김화읍은 휴전선과 민통선 사이에 있지만 전쟁 중 심한 폭격으로 대부분 사라져 지금은 옛 길을 통해 겨우 흔적만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철원역을 출발해 금강산 내금강까지 운행됐던 전기철도는 김화군 지도의 가운데를 45도 각도로 지나고 있었다.
 


1931년 완공된 총길이 116.8km의 이 철도는 당시 국내 유일의 전기철도로 ‘김화군 창도면에서 생산되는 유화철광석 반출 등 각종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부설했다’는 설명문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중엔 연간 15만 여명에 이른 금강산 관광객들 수송이 주가 된 인기노선 이었다고 한다. 하루 8회 철원~내금강역을 운행했는데 편도 요금이 쌀 한 가마니 값인 7원54전이었다. 또 동해의 생선, 건어물 등 풍부했던 수산물, 내륙지방의 목탄 등 임산물을 강원도 내륙지방 곳곳으로 수송하는 중요한 역할도 했다. 그러나 이 철도는 해방이후 남북분단과 6.25전쟁, 휴전 후 설정된 비무장지대 가운데 있어 운행이 중단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밖에도 이야기관엔 많은 김화군 유적에 관한 설명들이 전시돼 있었다.
 
DMZ 평화생태공원 2023년5월 완공, 일반에 개방


우리는 다시 안내센터로 가서 방문자들이 꼭 받아야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 지역의 답사 코스는 대부분 비무장지대(DMZ)와 아주 가깝거나 안쪽이어서 주의사항과 영상자료를 통한 안내교육을 받고 안내자를 따라가야 한다. 이 DMZ생태평화공원은 전쟁, 평화, 건강한 자연생태가 공존하는 비무장지대의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환경부와 이 지역 주둔 육군 제3 보병사단, 그리고 철원군이 공동으로 2016년 5월22일 착공, 올해 5월25일 완공해 일반에 공개했다. 공원은 두 개의 탐방로를 따라 조성됐는데 제1코스인 십자탑 탐방로는 13.1km, 제2코스인 용양보 코스는 9.1km이다. 그러나 이 중 휴전 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DMZ안쪽 구간은 제1코스 6.5km, 제2코스 2.1km다. 우리는 이날 제2코스를 탐방했다.
 


생태평화공원에 따르면 제1코스는 육군3사단이 북녘 지역을 내려다보는 성재산 위에 설치한 십자탑을 전망시설로 활용해 맑은 날이면 남북한의 철책과 진지, DMZ안의 자연환경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2코스는 6.25전쟁의 격전지 가운데 있어 늪지대의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존된 곳이다. 그렇지만 인기 있었던 금강산전철 철도는 부지와 암정교 등에서 약간의 흔적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농업용으로 조성된 용양보는 DMZ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잘 보존 된 '보기 드문 아름다운 호수형 습지'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폐선된 금강산철도 교각을 이용하여 건설해 근대문화유적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호수 가운데는 휴전 후 DMZ 경계근무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있는데 지금은 낡고 부서져 지지했던 굵은 철사 줄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곳은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며 가마우지, 고니 등 30여종의 조류 100만여 마리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세계적 보고로 탈바꿈했다.
 


교육을 마치고 나오니 텅 비었던 안내센터 널찍한 마당이 탐방객들의 차량들로 꽉 찼다.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탐방객들은 차를 타고 수색중대란 표시가 있는 군부대 앞 좁은 도로를 통해 비무장지대 남쪽철책선 통문앞 주차장으로 갔다. 제2코스 용양보 탐방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탐방로 안내표지판 앞에서 인솔자의 설명을 들은 후 그를 따라 통문으로 들어갔다. 문에는 ‘북진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2개 차선폭의 시멘트 포장도로 옆에 널찍한 나무 데크 로드도 설치돼 있었지만 오가는 차량이 없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탐방로 오른쪽엔 맑은 화강(花江)이 흐르고 강가엔 나무와 풀들이 멋진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탐방로 왼쪽엔 경사가 아주 가파른 계웅산이 길가의 철조망에 바짝 붙어 있었다. 북진문을 지나 3-4분쯤 들어가니 오른쪽에 ‘지뢰숲(계획지뢰지대)’이란 안내판이 있었다. 그 바로 옆에 동굴처럼 생긴 시멘트 구조물이 무성한 풀숲에 덮여있었다. 구조물 안에 지뢰들이 묻혀있는지는 모르겠다. DMZ일원엔 남쪽에 약130만발, 북쪽에 약200만발의 지뢰가 묻혀있어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지뢰지대란 설명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남방한계선 밖 민통선 안쪽에도 미확인 지뢰지대가 121㎢나 있어 이를 제거하려면 약500년쯤 걸린다고 했다. 탐방로 옆에는 눈에 익숙한 붉은 역삼각형 지뢰 표시가 계속 있어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장임이 실감났다.
 


탐방로 오른쪽을 흐르는 화강 상류에 속하는 DMZ남방한계선 부근 습지는 생물 서식환경이 매우 좋아 멸종위기의 수달이나 야생동식물도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0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우리를 포함한 탐방객들은 주변의 경관에 감탄하며 걸었다. 병사 두 사람도 맨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며 함께 걸었다. 남북을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의 철책 담장이 옆에 있지만 주변 경관에선 삼엄한 현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맑은 화강물에 투영되는 수목과 산의 모습은 자연이 그린 멋진 채색 동양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30여분쯤 걸으며 강가에 설치된 두 개의 전망대에서 탐방객들은 저마다 멋진 절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공원조성으로 남방한계선 750m 북진한 셈
전망대 바로 근처 상류쪽에 강을 가로 지른 거대한 수문이 있었고 수문 양단엔 경계초소도 있었다. 또 촘촘히 쳐진 튼튼한 철조망 앞엔 ‘작전지역이며 미확인 지뢰지대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불허한다’는 관할 3사단장의 경고판도 서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DMZ 안이었던 이 수문과 주변 길옆의 철조망이 이제는 사실상 휴전선의 남방한계선이 됐다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종전의 남방한계선은 우리가 들어 온 북진문이 있는 철책이었는데 평화생태공원과 탐방코스가 조성되면서 약750m 떨어진 수문까지 남방한계선이 북진한 셈이 됐다고 했다. 수문방향으로 촬영은 지금도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이 전망대에서 수문 뒤로 보이는 높지 않은 산등성이 너머가 저격능선(Battle of Sniper ridge)이란다.
 


이 능선은 철의 삼각지 가운데에 있는 오성산을 두고 국군 제2사단과 중공군 제15군이 6주일 동안이나 혈전을 벌인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해발 590m의 이름도 없던 이 길쭉한 능선에 배치된 중공군이 538m까지 접근해 온 미군을 저격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미군들에 의해 저격능선(狙擊稜線)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당시 국군은 중공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1개 연대병력의 사상자를 내면서도 중공군 2개 연대를 격퇴하고 오성산을 지켜냈다. 이 덕분에 군사분계선 설정 때 현재의 철원과 김화군의 남쪽 일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오성산을 둘러싼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전쟁의 2대 격전으로 불린다. 전망대에서 보이진 않았지만 저격능선을 진동시켰던 그날의 포성, 총성과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김화 DMZ 용양호 늪지 전망대에서


10여 분의 휴식과 기념촬영 후 우리는 수문 바로 앞길로 갔다. 길가에는 지뢰표시 경고판이 계속 있었다. 길은 강을 건너 초소 부근에서 직각으로 우회전 했다. 그런데 거기에 금강산 가는 철도를 복원한 철길이 있었다. 생태공원을 하면서 그에 맞춰 약 1km의 철로를 함깨 복원해 지난 5월 25일 민간에 개방한 길이다. 당초 금강산선 철로는 표준궤였지만 복원된 철로는 광폭 이었다. 이는 운행 목적이 아닌 상징적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복원된 철길이 시작되는 곳에 하늘 높이 솟은 회색 철제 전봇대가 하나 서 있었다. 전기기관차에 전력을 공급하던 전주였지만 지금 전선은 없었다. 화강과 용양호 습지를 끼고 길게 뻗어 간 철길을 걸으며 우리들은 좌우에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고 기념촬영도 했다.
 
서북청년단 투혼 기려 제3사단 이름을 백골부대로


탐방로는 이 복원된 철로가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굽어 부교를 건너 다시 교각들만 남은 금강산선 철교에 설치된 데크를 지나 출구가 있는 전망대에서 끝이 났다. 중간 중간 안내판을 세워 사라진 김화역이나 금강산철도의 건설과 이용 상황, 두루미쉼터 이야기 등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그들 중 이 지역 관할 제3보병사단인 백골부대의 유래에 관한 것이 가슴에 깊이 닿았다. 1948년 공산당의 압제와 만행을 피해 월남한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서북청년단원들은 제18 연대에 자원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들은 ‘백골이 되어서라도 조국을 지킨다’는 뜻으로 철모 좌우에 백골표시를 한 채 참전, 백전백승의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 정신을 이어받아 1965년 사단 이름을 백골부대로 했단다. 공산군들도 백골이 표시된 철모만 봐도 싸움을 피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이 코스를 걸으며 우리는 휴전 후 DMZ 경계근무 병사들이 건너다녔던 출렁다리의 부서진 잔해가 호수에 떠있는 모습도 보았고 용양호수 물에 비치는 북한쪽 산들, 그리고 망원경을 통해 북한의 초소를 바라보며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새겼다. 출구를 나와 방문자센터로 되돌아가는 길에 대열에서 떨어져 근처에 있는 충렬사에 잠시 들렸다.


사당의 문이 잠겨 있어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병자호란 때 전사한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의 사당이다.그는 평양을 지나 서울로 남진한 청나라 군사를 추격, 김화에서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유림장군은 근처의 잣나무 밭을 배경으로 진을 쳐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공은 150여 년 후에 인정받는 수모를 당했다. 위험에 처한 홍명구에게 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었다고 한다.
 


충렬사를 나와 우리는 김화읍 와수리 시장으로 달렸다. 미리 연락해 둔 맛집 평남면옥에서 별미 꿩 냉면과 찹쌀순대에 철원 특산 오대쌀로 빚은 막걸리로 맛있게 식사했다. 그리고 제2 땅굴과 평화전망대 관람을 위해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DMZ평화관광 접수처로 달려갔지만 추석연휴 휴무였다. 케이블카로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지역이 잘 보이는 곳이지만 아쉬움을 안고 폭격에 폐허가 된 노동당 당사가 있는 철원읍 사요리로 갔다. 도중에 간간이 내리던 가랑비가 노동당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억센 소나기로 변했다.


근처의 소이산 전망대관광도 모노레일 탑승권이 매진된 데다 비까지 내려 포기했다. 주차장 부근에 관광용으로 조성된 철원역, 우편국, 철원극장, 소방서 전망대 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철원제일교회 유적지를 둘러봤다. 신사참배 거부 등 일제에 항거하다 순교한 강종근목사가 시무했던 곳이다. 교인이 600명 정도였던 큰 교회였으며 세계적 건축가 윌리엄 보리스가 설계해 1937년 완공된 건물은 당시 한강 이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공산당이 건물을 사무실로 쓰기 위해 교인들을 괴롭혔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인들이 고통 받고 심지어 처형까지 당했던 사실 또한 이념에 의한 분단민족의 비극이었다. 건물은 결국 전쟁 중 폭격으로 많이 부서졌다. 미국은 가능하면 교회나 사찰 등 종교시설에 대한 폭격은 자제했지만 이를 악용해 점거하고 저항하는 공산군 소탕을 위한 폭격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 유적은 2020년5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오후 4시쯤 철원제일교회를 떠나 흩뿌리는 빗길을 달려 귀경을 서둘렀다. 약해진 비가 그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억세게 퍼붓기 시작했다. 귀로에 포천시 관인면에 주둔하는 제6사단 정문에서 57년전 이 부대에 근무한 선배는 잠시 내려 근무 중인 초병들과 환담하고 격려도 해주고 왔다. 비 때문인지 도로는 차량으로 정체가 무척 심했다. 그렇게 힘들게 두 시간쯤 걸려서 포천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비도 안 오고 비 내린 흔적조차 없었다. 차량도 드물었다. 창밖은 어둠에 싸여 가로등 불빛만 쏜살같이 지나갔다. 저녁 7시쯤 교대역 근처 음식점에서 푸짐한 식사에 술 한 잔 반주하며 일정을 마무리 했다. 앞을 가로막던 완강한 철조망과 그 너머의 북녘 땅을 떠 올리며 귀가길 지하철에 올랐다.
 


 DMZ 생태평화공원을 탐방하려면 이틀전까지 방문자센터( 전화 : 033-458-3633 )에 출입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 두 차례 (오전10시, 오후2시)탐방을 실시하는데 1회 40명까지 허용된다. 탐방객은 출발 40분전까지 도착해야 하며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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