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런 택시 기사 보셨나요?

수필생활

by 솔 뫼 2021. 5. 5. 11:00

본문

이런 택시 기사 보셨나요?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하고 물건까지 전달받았다면 그 인연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인연 때문에 처음만난 후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는 부부가 있다.

 

56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큰 딸아이가 회사에서 부서모임을 마치고 자정쯤 집에 왔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갔던 아이가 사색이 되어 거실로 나왔다. 택시에다 지갑을 떨어뜨린 것 같단다. 아파트 앞에서 택시 삯을 지불하고 지갑을 핸드백에 넣었다고 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지갑을 택시바닥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지갑 속에는 몇 푼의 현금과 신분증, 사원증과 각종 카드까지 들어있었다. 정말 난감했지만 택시번호조차 모르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카드 분실신고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각종 증명서는 시간을 두고 재발급 받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6시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태에서는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그 시간에 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딸이 전화기를 외투 주머니에 넣어 두었기에 그나마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간밤에 늦게 잠든 딸이 전화를 받자 굵은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밤 손님을 모셨던 택시 운전사입니다. 밤새 일하느라 몰랐는데 지금 일마치고 보니 차에 지갑이 떨어져 있더군요. 제가 좀 쉰 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출근시간 무렵 아파트로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찾아와 지갑을 전해주었다. 남편이 잠자기 때문에 자기가 가져왔다는 말만 남기고 갔다. 차 한 잔마저 굳이 사양하고 가는 그녀에게 우리식구들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녀가 가고 난 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경황 중에 연락처를 받아두지 않았다. 참으로 후회스러웠다.

 

그러다가 딸의 전화기에 아침에 온 전화번호가 남아있을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출근한 딸에게 전화해 그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야근한 사람의 아침잠을 깨울까봐 걱정을 하면서 오전11시쯤 전화를 했다. 다행히 상대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나의 설명을 들은 택시기사는 뭘 그런 일로 전화를 하느냐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오히려 겸손하게 말했다.

 

택시기사들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대체로 부정적인 요즘 이런 기사도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졌다. 전화를 끊으려는 그를 어렵게 설득해 그의 주소를 알아냈다. 나는 집사람과 상의해 택시 운전석에 까는 모직깔개 하나를 사서 택배로 보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두 부부는 지금까지 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귄다. 그런 가운데 일부는 특별히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들 은 아주 특이한 돌연변이 같은 관계라고 해야겠다. 그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돌연변이는 변하지 않고 대를 이어 유전되는 것이기에 더 좋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한 것 같다.

'수필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가 물고 간다’  (0) 2021.05.16
이틀간의 행복  (0) 2021.05.13
발칙한 며느리  (0) 2021.04.30
코로나 소동  (0) 2021.04.20
아버지와 고무신  (0) 2021.04.1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