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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산행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4. 9. 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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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경보 불구 달마산 능선 5km 걷다
함께 간 12명 중 70대 중반 넷이 완주

그 외는 도솔암에서 하산 후 미황사로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 말대로 나도 오랫동안 꾸어왔던 꿈 하나를 이루었다. 그 꿈을 이룬 날 하늘은 맑았지만 한낮 기온은 섭씨 33.8도의 폭염이 기승을 부렸었다. 계속된 늦더위와 높은 기온으로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가운데 나는 전라남도 해남 달마산 능선의 바위들을 타고 넘으며 미황사(美黃寺)까지 약5km를 걸었다. 물론 나와 세 사람이 함께 걸었기에 가능한 산행이었다.
 


9월19일 나는 대학 시절의 서클 선후배들과 그들의 부인 등 12명과 함께 해남 등지로 1박2일 여정의 남도 여행길에 올랐다. 아침7시에 서울을 떠난 일행은 천리길을 쏜살같이 달려 해남읍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1시쯤 달마산 도솔암(兜率庵) 주차장에 도착했다. 달마산 능선을 넘는 달마고도 산행로 입구이다. 청명한 하늘에서 쨍쨍 쏟아지는 초가을 햇살이 따갑게 몸으로 파고드는 듯한 날씨였다. 좌우로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과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달마산 연봉들의 장엄함이 범상치 않았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바위들 사이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0.8km 거리의 도솔암으로 향했다. 이 구간은 좌우 조망이 탁 트인 데다 경사도 완만하고 산길 주변 연봉들이 천하절경으로 꼽히는 명소다. 멋진 바위들과 어우러진 경치 때문에 달마고도 능선은 남도의 금강산, 비현실적 비경, 한국의 산티아고길 등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저 멀리엔 무수한 섬들이 떠있는 다도해와 구불구불 육지로 파고들어 온 해안선과 바다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80을 넘긴 몇 분들이 조금 힘겨워 했지만 도솔암까지는 모두가 함께 천혜의 절경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며 무난히 걸었다.
 


도솔암은 달마산에 있었던 12개 암자의 하나였으며 임진왜란때 명량해전에서 패해 숨어들었던 왜병들에 의해 소실됐다가 복원된 유일한 암자라고 한다. 주춧돌만 남은 터에 2002년6월8일 월정사 법조스님이 법당을 중건했고 2006년에 삼성각도 지었다. 도솔암 역시 수려한 주변 풍광때문에 추노, 각시탈 등 드리마가 촬영됐고 각종 CF촬영지로도 인기 있다. 천인단애를 방불케 하는 높게 쌓은 돌축대 위에 세운 작은 절집과 좁다란 앞마당의 돌담, 그 아래의 깊은 골짜기 너머에서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기암괴석 능선들은 천하일경이다.
 


구경과 기념 촬영을 하며 충분한 휴식을 한 후 일행은 주차장으로 하산했다. 이 과정에서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은 달마고도 능선을 걸어 미황사에서 일행과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달마산 능선의 평균 해발고도는 489m다. 먼 곳에서 보면 바위가 많은 능선이 비교적 수평으로 이어져 산행이 수월한 산으로 생각했다. 오후1시30분쯤 일행과 헤어져 미황사를 향해 넷은 걷기 시작했다. 도솔암에서 미황사까지 거리는 약4km쯤 된다.


산행로는 비교적 뚜렷했지만 산행객들이 많지 않아 키높이를 넘게 자란 풀밭과 우거진 숲속으로 걷는 곳이 많았다. 또 평평한 구간보다는 바위를 타고 넘거나 높은 봉우리들 넘거나 돌아서 가는 곳이 많았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뜨거웠다. 다행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그 열기를 조금 식혀줘서 우리는 산행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도솔암을 출발한 지 약1시간만에 너무 덥고 힘들어 점시 쉬었다. 그 때 기온은 산꼭대기임에도 불구하고 섭씨33.8도였고 해남지역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모두가 초행이어서 코스를 잘 몰랐던 탓에 쉬울 것으로 생각했던 산행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온몸은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으로 목욕을 한 것처럼 젖었다. 게다가 넷 중 셋이 70대 중반의 노인들이라 체력의 한계상태에서 지칠 대로 지쳤다. 특히 두 사람은 평소 산행경험이 좀 적었기에 정말 힘들어 했다. 준비해 간 물을 연신 마시며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해 달아오른 몸을 식히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1시간40분 넘게 사력을 다해 걸었지만 이정표를 보니 떡봉이다. 미황사까지는 아직도 2.5km나 남았단다. 도솔암에서 겨우 1.5km밖에 못 온 곳이다. 앞쪽 능선을 보니 하얀 기암괴석들이 층층이 쌓인 봉우리들 여러 개가 솟아 있어 우리들의 기를 여지 없이 꺾어버린다. 넘어온 봉우리들도 몇 개나 되는데 그보다 더 많은 봉우리들이 앞길을 막고 있었다.
 


두 분은 힘들어 더는 못 간다며 연신 고통을 호소한다. 함께 산행한 또 다른 젊은 일행은 엉뚱하게도 등산화 깔창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바람에 힘들어 했다.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외길.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나 역시 산을 수도 없이 타고 넘었지만 이처럼 어려운 산행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겪어보지도 않았다. 달마고도 산행로에는 이정표나 길잡이용 리본, 산행지도 등 편의시설이 아주 부족한 데다 기존의 것들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오가지 않는 이 산꼭대기 능선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모두가 왕년에 군 복무를 마친 노병들이 아닌가. 한숨을 연방 내쉬며 오로지 걸었고 쉴 때는 물 마시고 사진 찍으며 피로를 잊으려 했다. 내 키의 두 세배나 되는 가파른 바위 길에선 바위를 부여잡고 좌절하며 한발 한발 옮겼다. 그런가 하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제 사다리 구간에선 손에 힘을 주어 난간을 꽉 잡고 매달리듯 오르고 내려갔다. 우거진 풀들은 등산용 스틱으로 헤치며 길을 찾았고 내리막길에선 땅을 짚은 스틱에 힘을 실어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그렇게 힘든 산행 끝에 3시간30여분 만에 달마산 정상 바로 아래의 부도암 사거리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미황사까지 내리막길 0.7km쯤 남았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 이럴까? 남은 물 다 마시고 과자도 먹으며 산길에서의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숲이 너무 무성해 5시쯤 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하산을 시작한 지 10여 분만에 미황사 뒤쪽 경내에 들어섰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거의 탈진 상태여서 사찰 외곽을 돌아 미황사 앞문까지 오는 데만 10분가량이 더 걸렸다. 결국 우리들은 도솔암을 떠나 4시간 만에 미황사에 도착, 먼저 와서 가디리던 다른 일행과 합류했다. 산속의 해는 빨리 진다.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와 날 저무는 남도의 도로를 달려 7시쯤 나주시에 도착했다.
 


예약시간보다 약30분가량 늦게 음식점에 도착한 우리들은 잘 차려진 호남지방 특유의 맛깔스럽고 푸짐한 음식으로 더위와 산행에 지친 심신의 허기를 해소했다. 몇 잔의 동동주 및 맥주와 소주 반주를 곁들이니 피로가 스르르 봄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호텔 로비의 펍에서 맥주 몇 잔으로 담소하며 선후배간의 정을 더욱 두터히 했다.
 


다음날은 새벽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당초의 일기예보는 어제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 했었다. 그렇지만 강우가 하루 늦어진 덕(?)에 우리는 달마산 산행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던 셈이다. 일행은 7시반쯤 호텔에서 나와 완사천(浣沙泉)으로 갔다. 이 샘에는 목 마른 왕건에게 버들잎을 띠운 샘물 바가지를 준 빨래하던 처녀의 전설이 있다. 실제로 이 처녀는 훗날 왕건의 제2부인이 된 장화왕후 오씨부인 이며 그녀는 고려2대왕 혜종의 생모다. 샘은 평지보다 낮은 곳에 둥근 웅덩이처럼 보존돼 있고 주변은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가랑비는 계속 내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우리는 완사천을 떠너 곧 바로 식사하러 갔다. 나주의 대표적 음식 나주곰탕 전문 하얀집에서 식사했다. 값도 싼 데다 담백한 육수와 소고기 토렴이 일미 이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설사로 이날 새벽부터 화장실 신세를 계속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사는 심했지만 복통은 전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국물만 조금 떠 마시며 겨우 몇 숫갈만 먹고 참는 인고의 노력을 계속해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는 호우급으로 강하게 변해서 퍼붓고 있었다. 그 후에도 비는 호우와 가랑비, 보슬비와 멎기를 반복하며 온종일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그 바람에 이날 예정했던 나주관아의 정문 정수문, 읍성의 동점문(東漸門)과 관아, 나주객사 금성관 (錦城館), 나주 고분군 등 기타 유적이나 박물관 견학은 건성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며 들리거나 건너뛰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낡은 한옥을 개량헤 멋진 정원으로 조성한 카페(마중)에서 마신 차 한잔은 여행자의 여유와 비오는 날의 운치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주마간산 아닌 ‘승차간산’격으로 나주 관광을 마친 우리는 빗길을 달려 함평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절정을 이루는 꽃무릇의 붉은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상 고온과 잦은 비로 개화 상태가 예전보다 못하다고 축제 관계자는 말했다.


우리는 꽃무릇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축제장을 둘러 본 후 불갑사앞 음식점에서 보리비빔밥, 모듬전, 도토리묵 무침에 막걸리로 여행 마지막 날의 점심을 맛있게 즐겼다. 물론 나야 동료에게 밥을 덜어주고 3분의 1정도만 비벼서 조심조심 꼭꼭 씹어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설사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 후 강약을 반복하며 비가 쏟아지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7시반쯤 서울 사당동에 도착했다. 서울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서 내려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 2024년9월23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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