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보슬비, 이슬비의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빗방울의 크기나 내리는 강도에서 다르다는 정도만 알 뿐.
그렇다고 빗방울이 얼마나 크고 작은지, 양이 많고 적음 역시 설명 못 한다.
24절기상 소만인 5월21일 친구랑 셋이 비내리는 안양천 길을 걸었다.
경부선 석수역에서 안양천 뚝길과 둔치길을 따라 안양 역까지 걸었다.
기다리거나 만날 사람 없는 걸음이라 서두르거나 빨리 걸을 이유도 없었다.
신록이 이제 짙은 녹음으로 변한 가로수 잎들이 비에 젖어 더 푸르게 보였다.
뚝길은 양쪽에서 벋은 나무 가지들이 거의 맞닿아 녹음의 터널 같았다.
널따란 둔치에 만들어진 생태공원엔 검푸른 억새풀이 강바람에 춤추고 있었다.
어느 곳에선 몇이랑 심어 놓은 보리가 이삭패서 벌써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보리익어 가던 고향마을의 정겨운 모습들이 보리 위에 겹쳐진다.
그 추억속 잔상과 현실 사이엔 60여년이라는 시간의 두께가 쌓여 있어 슬프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우산을 폈고 아주 약해져 보슬비가 되면 맞으며 걸었다.
간밤에 내린 비를 모아서 흘러가는 안양천의 빨라진 물살이 넘실넘실 춤춘다.
그렇게 세시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안양의 중앙시장 순대골목에서 늦은 점심 먹었다.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씻고 소주 두잔으로 순대국밥의 참맛을 더했다.
테이블마다 네 사람보다 적게 앉아 코로나19의 방역 거리두기는 지켜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좁디 좁은 식당 안은 손님들로 꽉 차서 빈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값에 비해 알차고 맛있는 한끼의 식사, 다시 말해 가성비가 좋은 음식을 찾는 서민들의 정이 물씬 물씬 풍기는 시장골목안 음식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