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싫지 않은 오해

수필생활

by 솔 뫼 2021. 6. 20. 00:54

본문

다시 받고 싶은 오해

 

 

혈기 방자했던 20대 후반 어느 날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아무런 동기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 일이 왜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이럴 땐 그저 사노라면 가끔 그런 생각도 날 수 있다는 말에 책임을 돌릴 수밖에. 그날은 일요일 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젊고 아름다웠던 날의 이야기 같아 혼자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 시절 나는 선배 세 분과 함께 대전에서 근무 중이었다. 당시 총각이었던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잘 놀았다. 지방근무는 층층시하인 본사와 달라 유형무형의 각종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곳이 고향인 사무실의 선배들과 달리 나는 객지여서 하숙을 했다. 나는 객지생활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본사와 달리 비교적 일거리가 적어 퇴근 후 선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시간이 참 많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오전 하숙집에서 나오다 사무실 선배를 만났다. 내 하숙방은 방이 여러 개 달린 여관형태의 3층 건물 1층에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늦은 아침밥을 먹으러 나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내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다정하게 손까지 잡고 걸어 나가다 만났다. 선배는 내게 아는 채를 하려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못 본채 하고 지나갔다. 그러는 선배를 불러서 인사하고 옆의 여자를 소개했다. 선배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일이 벌어졌다. 선배는 그 묘령의 여인이 누구며 어떤 관계인가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이미 사무실에 알려진 상태라 다른 두 선배도 덩달아 의심의 눈초리로 화살을 쏘아댔다. 그야말로 내 말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들은 오르지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방향의 얘기만 들으려고 했다. 말하자면 결혼할 애인이라든가, 아니면 새로 꾀어서 사귀기 시작한 여인이라는 등의 답변만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제 누나라니까요!”

에이, 여보시오. 그럴 땐 누구나 그렇게 말하는 줄 내가 모를 줄 아시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런 말을 거짓말이라고 해요. 어쨌든 미인이던걸요. 부럽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런 식으로만 받아들이려 했다. 참 답답했지만 그들은 끝내 믿어주지를 않았다. 나도 포기하고 더 이상 강변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던 갈릴레오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상한 오해는 결국 내가 대전근무를 마칠 때까지 풀리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 여관에서 함께 나오다 선배와 마주쳤던 예쁜 여자는 누구였을까? 왜 하필이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을 일요일 오전에 여관에서 나오게 됐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런 상황을 목격했더라도 그 선배들과 똑 같은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을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나는 친 사촌이 없고 고종사촌과 이종사촌 형제들만 있다. 아버지는 남매만 자란 외아들이었다. 이모님은 두 분이 계셨는데 모두 어머니의 언니다. 그중 큰 이모님 네 이종형제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쪽형제들이 나보다 나이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작은 이모님은 딸만 넷 두셨는데 막내딸이 나보다 생일이 불과 한 달 빠른 누나였다. 나는 형님만 세 분 있고 누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방학 등 틈만 나면 그 동갑내기 누나와 어울려 놀며 자랐다.

 

그랬던 그 누나가 3년간의 파독 간호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나를 만나러 대전까지 온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사이좋게 자랐던 사촌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토요일이라 본사와 연락할 일도 없어 나는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정말 다정한 연인들처럼 손잡고 음식점으로, 동학사 등 유원지로 쏘다니고 하숙하는 여관에서 함께 잤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느지막하게 함께 아침 식사할 음식점을 찾아 나가다 선배를 만난 것이다.

 

그 누나는 미인이셨던 이모님을 닮아 정말 예뻤고 몸매도 남에게 자랑할 만했다. 게다가 외국생활을 오래 한 탓인지 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 다녔다. 40여 년 전이었던 당시로서는 20대 청년과 예쁜 아가씨가 거리에서 손잡고 걷는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을 우리가 했으니 누가 봐도 수상한(?) 관계로 오해받을 만 한 일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오해를 받을 일이 다시는 안 생길 것 같아 서글퍼진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시절의 그 일이 더욱 새롭게 떠오른다. 그 시절 함께 손잡고 걸었던 그 동갑내기 누나도 이젠 며느리를 둘이나 맞은 70살을 훨씬 넘긴 할머니다.

정말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 이 글은 대전근무 시절인 1976년 겨울의 추억담을 적은 것입니다.

 

 

'수필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빛이 말을 걸다.  (0) 2021.07.30
기품 있게 늙고 싶다  (0) 2021.07.07
못 본체 할 걸!  (1) 2021.06.20
‘개가 물고 간다’  (0) 2021.05.16
이틀간의 행복  (0) 2021.05.1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