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벌판과 산길에서 삶의 餘裕 즐기다
짙은 안개가 온 세상을 하얗게 감싸 안았다. 민박촌 앞의 황금들녘 끝자락 너머에는 온통 안개뿐이다. 그 너머의 산과 마을은 안개 속으로 숨은 아침이다.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날아다니다 얼굴을 스친다. 어제 밤늦게 들어와 보지 못했던 민박집 기와지붕의 곡선이 미끈하다. 정원의 석류가 빨갛게 익었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달린 무화과가 먹음직스레 보인다. 우리들의 기분을 알아챘는지 민박집 아줌마가 잘 익은 무화과를 가지째 꺾어서 맛보라며 가져다주었다. 갓 따 온 것이라 정말 꿀맛이었다.
빵과 우유 등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7시40분쯤 민박집을 나와 사흘째의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황금빛 볏논에서 대형 분무기로 농약을 뿌리는 농부의 모습이 고등학교까지 농촌에서 다닌 내게도 이채롭다. 그 황금들판 위로 안개가 짙게 드리웠다. 가로수로 심은 배롱나무 붉은 꽃들이 안개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남도지방 국도풍경중 하나다. 지금도 사용하는 큰길가 고풍스런 우물모습이 정겹고 키가 큰 재래종 해바라기는 안개 속으로 치솟아 허공에 꽃을 피웠다. 안개가 걷히면 새파란 하늘과 오곡백과 풍성한 남도 구례의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질 것이다. 그래서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오늘 걸어갈 거리는 불과 12km. 어제까지의 여정이 힘들었던 점과 얼마 안 남은 마지막 구간의 거리를 감안해 짧게 잡았다. 그 덕분에 오늘부터는 느긋하게 걸으며 맘껏 주변경관을 감상하기로 했다. 명실상부하게 周遊天下 기분을 내보기로 한 것이다. 섬진강의 넉넉한 물이 적셔주는 구례들판은 각종 물산이 풍부해 풍요로운 곳이다. 특히 지리산국립공원이 1967년12월29일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구례군민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6.25가 끝나고 1950년대 중반이후 자행된 지리산의 무분별한 도벌을 막으려던 구례산악회(연하반)의 지리산보존운동의 결실이라 하겠다. 구례군내 1만여 가구에서도 10원씩 10만 여원을 모아 연하반의 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그 지리산의 서쪽 구례군지역을 걷는다.
방광으로 가는 둘레길은 오미리 앞을 지나는 국도로 40여분을 함께 가다가 상사마을 입구의 시골길로 접어든다. 길 양쪽의 논에서는 알차게 익어 무겁게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탐스러웠다. 잠시 길을 잘 못 알고 들어갔던 상사마을 골목의 우람한 돌담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친 탓이다. 핸드폰의 GPS까지 이용해 길을 찾느라 애쓰다 마침 밭일을 가는 할머니를 만난 덕에 길을 찾았다. 길은 마을 못 미친 지점에서 가파른 언덕길로 나있었다. 감나무 과수원 옆의 밭두렁과 논밭사이로 길은 약간씩 높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벌초를 위한 예초기 소리가 들려왔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가는 내륙이라 기본적 해발고도가 300m를 오르내린다. 안개는 아직 다 걷히진 않았지만 간간이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어제 걸었던 길에 비하면 정말 평탄한 편이었다. 왼편 아래쪽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들판 너머엔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안개위에서 멋진 자태를 뽐낸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안개들이 그 연봉들의 허리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10시가 지나면서 안개가 대부분 걷히고 하늘은 파랗게 개었다. 익어가는 각종 과일들이 가을바람에 나부끼고 길가 풀숲엔 이름 모를 각종 야생화가 반긴다. 길은 들판과 산 사이의 야트막한 구릉지역을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마냥 이어진다. 바쁠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는 길 위에서 나그네들 또한 여유만만하다.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맘껏 즐기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자유인이 되었다. 따갑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넓은 모자챙과 팔 토시로 가리고 콧노래까지 부른다. 힘들면 쉬었고 목마르면 물마셨다. 가끔 간식도 했다. 지금까지 지나 온 500여리 길에서 느낀 즐거움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렇지만 오늘과 같은 이 여유로움은 느끼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구례군에 들어서면서 다른 곳들과는 달리 눈에 뜨게 많아진 게 있었다. 양지바른 언덕이나 전망 좋은 곳이면 예외 없이 있었다. 아주 잘 다듬고 치장된 무덤들이었다. 몇 대가 함께 누운 대규모 가족 묘원도 있었지만 부부 또는 3-4기의 묘만 있는 무덤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석을 보름 남짓 앞 둔 때인지라 곳곳에서 벌초를 하는 예초기(刈草機) 소리가 소음에 가까울 정도로 들리고 있었다. 동방의 예의지국 후손답게 조상을 극진히 숭상하는 미풍양속을 어찌 탓하랴.
길가의 전망 좋은 원두막에서 신발 끈까지 풀어 제치고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마침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남자 한 사람을 만나 간식을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청주가 고향이지만 한국전력의 기술자로 부산에서 30여년을 근무한 은퇴자라고 했다. 그리고 살기 좋은 구레로 와서 산지 5년쯤 된단다. 오후의 산책 시간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말벗이 그리웠던 탓인지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일어서니 기회 되면 들려달라며 자기 집 위치까지 설명해주고 갔다.
조금 내려가니 이번엔 남자들 세 명이 우리와 마주 쳤다. 그들도 둘레길 길손들이었다. 우리에게 1km쯤 가면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할 개울이 있다고 알려주고 갔다. 이래서 길 떠난 사람들은 모두가 인심이 넉넉해지는가 보다. 작은 마을을 지날 때 길옆의 버려진 묵정밭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 어렸던 시절 한 평의 논밭이라도 더 얻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가 산을 개간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5.16직후 정부가 적극 장려한 야산개간정책은 극빈했던 사람들의 피땀을 요구했다. 여기저기 버려져 잡초와 잡목만 무성한 저 묵정밭들이 한 때는 한 가족의 삶을 지탱했을 것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니 과연 신발을 벗어야 할 개천이 나왔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개천바닥을 가로질러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물이 적을 때는 시멘트 길옆에 놓인 돌 징검다리로 건널 수가 있다. 그렇지만 최근 내린 비에 물이 불어 그 징검다리로도 건널 수 없었다. 처음으로 넷이 함께 등산화를 벗어들고 지리산자락의 맑은 물에 발을 담갔다. 둘레길은 개천 둑길을 따라 상류로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11시가 다됐다. 마침 개천 둑길의 커다란 나무그늘이 우리를 유혹했다. 오가는 사람 없는 시멘트 길에 둘러앉아 먹을거리들을 펼쳤다. 흐르는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도 우리들을 즐겁게 했다. 몇 조각의 소시지, 에너지 바 몇 개에다 막걸리 한 잔이 전부였지만 이보다 더 풍성한 간식은 없을 것 같았다. 느리게 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진정한 즐거움을 알 것 같다.
다시 짐을 챙기고 걸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의 맑은 물에 우리들의 마음도 맑게 씻으며 걸었다. 계곡 옆에 조성된 상당히 넓은 유원지의 포장도로를 걷다보니 지리산탐방안내소가 나왔다. 안내원에게 국립공원에 관한 설명도 듣고 둘레길과 연결되는 공원의 명승지가 표시된 지도도 얻었다. 안내소를 나와서 보니 이 곳은 우리에게 낯익은 지리산 화엄사입구 황전마을 집단시설지구였다. 2년 전 5월 지리산 종주산행 길에 들렸던 집을 찾아가 도토리묵, 산채전에 막걸리로 식사했다. 푸짐한데다 맛도 좋아 별도의 식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먼 길 걸은 후의 피로 탓 일진 몰라도 정말 맛있었다. 중국 고사에 자주 인용되는 별미 팔진미(八珍味)나 맛있는 음식인 오후청(五侯鯖)인들 이 것과 바꿀 수 있을까?
10여분 거리에 화엄사가 있지만 뒤로하고 한낮의 가을햇살 속으로 나섰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짙은 에메랄드 색에 가까웠다. 그 하늘에 작은 구름 몇 조각만 떠간다. 높거나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걸었다. 왼쪽엔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들판, 오른쪽엔 지리산의 연봉들이 펼쳐진다. 식사 직후라 숨도 차고 상당한 피로감도 느껴진다. 산길을 벗어나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길옆 원두막 벤치에서 쉬었다. 길손들을 위한 밭주인의 배려가 고맙다. 바로 옆 밭두렁엔 누렁호박이 가을빛에 익어가고 고구마 잎도 이젠 알뿌리가 다 굵었다고 애기하는 듯 했다. 익어가는 옥수수만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가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골목의 돌담들이 예쁜 수한마을이 나왔다. 마을 앞에는 높이를 알 수 없는 당산나무가 멋진 자태로 넉넉한 쉼터를 만들고 있었다. 해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드리는 520년쯤 된 나무란다. 안내책자엔 생소한 이름의 ‘도나무’라고 적혀있다. 당산나무 아래엔 마을의 유래를 새긴 오석비석이 있었다. 물이 차가워서 물한리로 불리다기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수한리가 됐단다. 돌비석엔 여순반란사건과 관련된 아픈 역사도 적혀있었다. 혼자서 둘레길을 걷는다는 남자 한 사람도 이 곳에서 잠시 쉬다가 헤어졌다.
마을을 지나 30분쯤 더 가니 천은사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가 나왔다. 노고단으로 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이런 삼거리엔 꼭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주막집이 바로 그것이다. 배불리 먹었던 점심의 효과도 사라지고 출출한 참이었다. 길가의 조그만 슈퍼에 들려 라면이라도 먹고 가자는 데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 슈퍼 앞 평상에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와 젊은 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모녀간이었는데 딸은 슈퍼에 붙은 음식점 사장이었다. 라면국물에 막걸리를 마시는 우리를 위해 딸은 맛있는 반찬을 안주로 내다 준다. 85세 되셨다는 어머니의 온화한 말솜씨엔 인정이 넘친다. 오늘 숙박할 방광이 바로 옆이니 굳이 서두를 까닭도 없어졌다. 객지로 나갔던 넷째 딸 부부가 노모를 위해 고향에 와서 산다고 했다. 인정 많고 붙임성 좋은 딸의 엄마사랑이 돋보였다.
우리가 자고 갈 방광마을은 삼거리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거기를 지나 천은사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조금만 걸으면 나온다던 천은사(泉隱寺)는 50분쯤을 걸어가서야 나왔다. 노고단을 오가는 차들이 많아 조금 시끄러웠지만 늦은 오후의 시골길은 좋았다. 2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방장산 천은사(方丈山 泉隱寺)라고 적힌 대형 현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5분쯤 더 가니 커다란 저수지가 나왔다. 저수지 물위에 서산머리의 해가 길게 꼬리를 드리우고 있다. 주차장을 지나니 천은사 입구엔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들과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부처님도량(度量)을 찾은 속인들을 반겨준다. 다시 문 하나를 지나니 돌다리 위에 놓인 2층 누각이 있었다. 돌다리에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저수지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누각을 지나니 극락보전(極樂寶殿) 앞마당이다. 주변의 산과 어우러진 절집의 아름다움을 내 짧은 글 솜씨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기념촬영도 하고 부처님도량을 두루 둘러본 후 서둘러 내려왔다. 마침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있어 뛰어가서 타고 방광마을로 손쉽게 갔다. 50분 넘게 걸릴 거리를 10분도 채 안 걸렸다. 지리산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후 둘레길 구간에서 처음 이용한 대중교통이다. 안내책자 내용과는 달리 방광마을에서 한옥 민박촌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민박집이란 간판이 서있는 한 집은 비어있었다. 걱정을 하는 중에 불편한 몸을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할머니를 만나 한 음식점을 소개받았다. 10여분을 걸어서 그 집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주인아주머니의 결단으로 그 날 밤 일행은 따뜻한 음식을 먹고 좋은 방에서 자는 행운을 누렸다. 근처에 사는 시누이 집을 소개하고 난색을 표시하는 시누이에게 음식점에 준비된 반찬과 국거리까지 지원해 준 덕분이었다. 시누이 역시 활달한 성격이라 뽕잎 밥에다 정성이 깃든 반찬을 듬뿍 만들어 내놓았다. 한 잔의 반주를 곁들이며 깊어가는 산촌의 밤을 그렇게 즐겼다. 앞으로 남은 여정은 29km뿐이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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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18년4월부터 9월까지 4박5일씩 세 차례에 걸쳐 지리산둘레길 270여km를 완주한
기행문(시리즈 총10회) 중 제3차걷기(9월7일-10일) 완주기 4회분 중 제3회 입니다. 코로나 걱정 없었던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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