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계곡 눈덮인 바위에서 포근함 느껴
누가 바위를 ‘정이 없는 차가운 물체’라 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소복소복 덮여있는 얼어붙은 계곡의 바위들에서 나는 오히려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꼈다. 크기를 달리하는 온갖 바위들이 제멋대로 들어찬 넓지 않은 계곡이지만 거기에도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끔 나오는 높지 않은 빙폭(氷瀑)도 차가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색 너머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엔 크고작은 무수한 돌들이 깔려 발밑을 조심해야만 했다.
영상의 포근한 기온이 봄날을 방불케 했던 1월24일오전10시. 평소 자주 어울린 친구와 선배 등 다섯이 도봉산역에서 만났다. 역사를 나오니 하늘과 맞닿은 도봉산의 수려한 준령이 눈에 들어온다. 잘 생긴 남자의 훤칠한 이마처럼 널찍한 수직의 자운봉 암벽과 좌우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이 위용을 자랑한다. 역시 이름에 걸맞은 훌륭한 경관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했다.
이날 우리들은 산 중턱에 자리잡은 망월사까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시절인 서기639년에 창건돼 수많은 중건을 거친 고찰이다. 역에서 가까운 절이지만 도봉산 중턱 동쪽사면 해발500m쯤 되는 곳에 있어 상당히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한다. 역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300∼400m쯤 올라가니 서울외곽순환도로의 높고 거대한 고가도로 기둥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거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오른쪽의 넓은 산복도로를 버리고 좁은 왼쪽길을 택해 산으로 들어갔다. 좁고 돌이 많은 길이지만 산길이 갖는 고요함과 즐거움이 있는 길이다. 작은 절 쌍용사와 몇몇 작은 집들이 있는 마을골목을 지나 좁은 개울의 다리를 건너면 돌멩이가 많이 깔린 산길이 나온다. 산길은 옆에 난 계곡을 따라 경사를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고도를 높여가다 오른쪽 산복도로와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산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산악인 엄홍길씨가 세살때부터 30여년 살았던 집터가 있다. 엄씨가 셰계적 산악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산속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망월사까지는 1.7km로 적혀 있었다.
계곡은 그다지 넓거나 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크고작은 바위들이 수없이 들어차 있고 그 바위들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위에는 얼마 전에 내린 눈이 하얗게 소복소복 덮여있어 겨울 산의 운치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군데군데 얼어붙은 빙벽이 우리들의 눈길을 끌었고 얼음이 갈라진 곳에선 얼음 아래를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졸졸졸 들려왔다. 날씨가 포근해 눈이 녹아 흐르는 이른 봄날의 계곡 같았다.
정식산행을 하기엔 높이가 낮고 짧은 거리이지만 바위나 굵은 돌들이 많은 산길이다. 게다가 경사도 만만치가 않아 80을 넘겼거나 눈앞에 둔 선배 두 분에게는 쉽지않은 코스였다. 도중에 두어 차례 쉬면서 준비해간 과자나 과일, 간식을 먹으며 올라갔다. 특히 300m쯤 윗쪽에 망월사가 바라보이는 쉼터에서 나누어 먹은 김치전, 돼지머릿고기, 홍어무침과 한 잔의 막걸리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일미였고 감로주였다.
가쁜 숨고르기를 끝낸 후 한 달음에 절에 올랐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벽을 뒤로하고 자리 잡은 절집들이 층층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조망은 정말 절경이었다. 대웅전 동쪽편에 있는 토끼모양의 바위가 남쪽의 달모양을 한 봉우리를 바리보는 형상이어서 望月寺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절 동편의 범종각에서 바라본 절집의 모습이 정말 예뻐 기념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왔다. 도중에 내 키의 3배쯤 되는 높이로 넓게 얼어붙은 빙벽에서도 기념 사진을 남겼다.
오후2시반쯤 망월사역 근처 마을에 내려왔다. 힘들게 산길을 걸은 후의 뒤풀이 식사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일행 중 제일 젊은 사람이 안내한 맛집 생선구이집에서 대형 갈치와 고등어, 조기, 가자미, 임연수 등 각종 생선구이가 한 상 가득히 차려졌다. 구수한 된장국과 고슬고슬하게 갓지은 돌솥밥도 일미였다. 이 좋은 음식에 한 잔의 반주는 필수. 맥주, 소주에 막걸리까지 곁들여 반주를 즐기고 역으로 향했다. 정말 즐겁게 보낸 겨울속의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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