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땅 사이를 누비다
◇ 부산 해맞이공원∼울산 덕하
< 2022년3월21일~24일 >
< 첫날 >
한반도 동남단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 오륙도가 부산항의 관문처럼 멋진 자태를 뽐낸다. 우리나라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2천리 가까이 이어지는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 길은 50개 구간으로 세분된 총거리 750km의 ‘해파랑길’이다. 오륙도 동쪽엔 동해의 만경창파가 펼쳐지고 서쪽엔 부산중앙부두와 시가지가 보인다. 바다보다 더 파란 하늘에선 3월 하순의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거기서 북쪽으로 가면 동해안의 해파랑길, 서쪽으로 가면 남해안의 남파랑길이다. 그 길의 시발점에 70대 초반의 네 건각(健脚)들이 북쪽을 향해 섰다. 그들의 마음은 벌써 해파랑길의 북단 휴전선 통일전망대에서 맴돌고 있었다.
3월21일오전11시. 중앙일보 본사에서 청춘을 보낸 네 사람은 서울에서 고속열차로 내려와 이곳에 도착했다. 해파랑길 관광안내소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통과구간 확인도장을 찍는 수첩을 사서 걷기 시작했다. 초입의 계단을 통해 언덕에 오르니 노란 유채꽃이 반겨준다. 주변엔 벌써 이름 모를 풀꽃들도 피어 남녘의 이른 봄을 알리고 있었다. 파란 바다너머로 해운대 달맞이공원언덕이 멀리 보인다. 해맑은 날씨와 얼굴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내음이 우리들의 장도를 축하하는 듯하다. 바다에 바짝 다가선 해식절벽 비탈을 따라 길은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이어졌다. 강한 해풍을 맞으며 핀 빨간 동백꽃들이 우리들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라 우리는 해를 등지고 걸었다. 오른쪽엔 바위절벽에 부딪히는 파도가 하얗게 물거품을 만들고 있었다.
달맞이공원 남쪽으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가없이 이어진다. 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고 온갖 잡념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간간이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산한 길은 우리들 차지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이 그야말로 절경이고 명소들이었다. 때로는 가파른 나무 데크로드를 오르내렸고 간혹 바닷가 거친 바위돌길과 평탄한 호안도로도 지났다. 기기묘묘한 절벽과 바위들, 멋진 경치들의 유혹이 심해 발걸음이 늦어졌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광들이 우리들을 멈춰 세우곤 했다. 제1구간의 산길이 끝나는 곳에 이기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승전잔치에 끌려 나간 기생들 중 둘이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투신해 二妓臺라 불린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녀들의 충절을 기려 의기대(義妓臺)로 불러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눈앞엔 광안리해수욕장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기대 주변에 마련된 공원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바로 광안리해변으로 이어진다. 하늘을 찌를 듯 한 고층건물들이 바닷가까지 바짝 들어서 외국의 유명해변을 보는 것 같다. 해변을 따라 잘 꾸며진 공원들도 눈길을 끈다. 해수욕장 모래밭에 늘어선 빈 파라솔들과 사람 없는 테이블이 한가히 봄볕을 즐기고 있다. 인파로 몸살을 앓던 한여름의 풍경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해안절경에 취해 걷다보니 오후1시가 됐다. 새벽잠을 설치고 달려왔기에 허기가 느껴진다. 도로변 눈에 띄는 음식점의 대구탕으로 허기를 해결했다. 맛도 좋았고 국물도 시원했는데 ‘고마 대구탕’이란 옥호가 특이했다. ‘그만’이란 뜻의 경상도 방언인 것 같다. 식사 후 다시 해변을 따라 걸었다. 해운대해수욕장 못 미친 민락동 수변공원 호안도로의 난데 없는 큰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그 돌엔 2003년9월12일 태풍 매미 때 바다에서 밀려온 것이란 안내판이 붙어있다. 믿기지 않는 태풍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길은 해운대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동백섬으로 이어진다. 지나간 날 APEC회의 때 세계의 정상들을 불러 모았던 누리마루의 비행접시를 닮은 둥근 지붕이 우리를 맞아준다. 인적 끊긴 해수욕장 너머엔 하늘을 찌르며 솟은 초고층 세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멋지다. 그 중 제일 높은 것이 몇 년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그 ‘엘시티’ 건물이다. 그 당시의 소란을 엘시티 건물은 알까?
해운대해수욕장 관광안내소에서 2구간 시작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해변 길을 걸으며 아득한 옛 시절 함께 수영했던 소식 끊어진 한 친구와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해수욕장을 지나 달맞이공원언덕 아래로 지나가는 동해남부선 철길위에 설치된 모노레일의 스카이캡슐을 탔다. 약30분간이지만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해주기엔 충분했다.
모노레일에서 내려 잘 만들어진 나무 데크로드를 걷다 넷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부산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 송정해수욕장이 가까운 곳이다. 시간은 6시를 지났고 약간 흐려진 하늘이 빨리 잘 곳을 찾으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오늘 걸은 거리가 어림잡아도 26km는 될 것 같다.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에 시설 좋고 깨끗한 새 모텔을 찾았다. 그 숙소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한 후 방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첫날 걷기를 마쳤다.
< 둘째 날 >
날씨가 잔뜩 흐렸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음식점에 다시 가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식사를 하고 8시에 길을 나섰다. 해수욕장에 연해 있는 죽도공원에서 해면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하얀 구름 뒤에 숨은 해 그림자가 해면에 길게 드리워져 장관이었다.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이지는 길을 안내 리본과 핸드폰의 GPS앱을 보면서 걸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해동용궁사를 향해 걷다가 엉뚱한 복병을 만났다. 안내 리본은 붙어있는데 앱은 계속해서 길을 잘 못 들었단다.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끝에 길을 되짚어가서 해안절벽으로 이어져 있는 안내 리본을 찾았다. 리본이 두 갈래로 붙은 이유를 알기까지는 한 시간의 발품이 필요했다.
우리들은 바닷가 절벽으로 난 길을 걸으며 멋진 경치를 마음껏 즐겼다. 도중에 만난 낚시꾼은 예전처럼 고기가 안 잡힌다고 했다. 그렇게 나아가니 영화 ‘빠삐용’에서 본 절벽과 같은 절경이 나왔다. 눈 아래 수평선이 펼쳐지고 오른쪽엔 각종 안테나가 솟은 언덕, 길은 왼쪽절벽으로 이어졌다. 멋지게 설치된 나무 데크 길도 보였다. 우리들은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해동용궁사의 기와 얹은 돌담에 닿았다. 길은 절벽 끝의 시랑대로 이어져 있었다. 기장군 기장읍 시랑산 동쪽 해동용궁사 앞쪽의 평평한 바위로 주변을 둘러싼 기암괴석들이 절경이다. 기록엔 1783년 기장 현감으로 부임한 권적(權樀)이 바위에 侍郞臺라고 새기고 시를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시랑대는 경치가 좋아 해운대, 태종대 등과 함께 부산팔대(釜山八臺)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도 시랑대 길로 가려는 데 앞서갔던 사람이 되돌아 나오며 절벽이어서 못 간단다. 우리는 돌담을 따라 흙길을 조금 더 걸었다. 그런데 해동용궁사로 통하는 문이 잠겨 있었다. 굵은 철망으로 짜여진 단단한 철제문이었다. 마침 여자 한 분이 보여 소리쳐서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안내서에 적힌 기장군청 문화관광과로 전화하니 “절에서 사유지라고 막았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 중(스님)들에 대한 비난을 맘껏 퍼부으며 무려 한 시간가량 되돌아 나와야만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씨근거리며 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가로막은 철문이 보이는 곳에서 관리인이란 사람을 만난 순간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절에서 일했다는 그는 문을 막은 것은 국방부란다. 우리가 조금 전에 본 안테나들이 군사시설이란다. 열어두었던 문을 다시 폐쇄한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 다시 군청으로 전화해 똑 바로 안내하라고 퍼부으며 화를 풀었다. 그렇게 들어간 용궁사 주변의 경치는 정말 절경이었다. 아리따운 아기씨에게 부탁해 우리도 기념촬영을 몇 커트하고 길을 재촉했다.
홍룡교를 건너 절 경내를 벗어나니 국립수산과학원 건물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평탄한 시멘트 포장 호안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그 길엔 엄청나게 규모가 큰 리조트도 있었다. 한눈에 다 보지 못할 만큼 한 동으로 기다랗게 이어져 있었다. 모든 객실이 바다를 볼 수 있게 지어진 오시리아 리조트란다. 조금 더 걸으니 바다로 쑥 들어간 해안절벽 위에 작은 탑처럼 보이는 오랑대가 대변항과 바다를 배경으로 예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변항 연화리에서 3구간 시작을 알리는 스탬프를 찍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해안가 시멘트 공터에서 미역을 손질해 말리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미역귀를 조금 사서 씹으며 걸었다. 짭조름한 맛이 침을 나오게 해 갈증해소에도 도움이 됐다. 연화리를 지나 야트막한 봉대산(230m)을 지났다. 산속에서 길이 헷갈려 잠시 헤매기도 했지만 곧 죽성리 마을에 도착했다. 산길엔 몇 송이 피어난 진달래와 만개직전의 개나리들이 봄을 알리고 있었다.
12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죽성항에 도착했다. 허름하게 보이는 작은 음식점에서 칼국수로 식사하며 주인아주머니가 사다 준 지평막걸리 두통을 반주했다. 국수국물은 걸쭉했지만 특이한 맛이 있었다. 이런 걸 두고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 했던가? 근처 해변에 예쁘장하게 지은 영화촬영 세트장이 있어 몇 장의 사진을 찍고 계속 걸었다.
길가엔 하얀 목련이 앞 다투며 피어나고 길섶에선 샛노란 민들레 여덟 송이가 시계의 숫자판모양으로 피어 있었다. 어느 집 담장에선 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했고 일광해수욕장을 지난 길가에선 빨간 동백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동백꽃 근처의 쉼터에서 잠시 쉰 후 일랑해수욕장의 체크포인트에서 4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텅 빈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멀리 보이는 고리원자력발전소를 향해 걸었다. 이날 오후의 걷기는 바람이 매우 강해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 우리는 8km쯤 더 가서 5시 반쯤에 고리원전 바로 앞 월래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들은 일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건 오판(誤判)이었다. 아무리 찾아보고 힘들게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곳은 없었다. 해는 지고 어둠은 다가올 때 느끼는 나그네의 서글픈 심정을 절감했다. 비상수단으로 월래콜택시를 불러 16km나 떨어진 울산의 진하로 가야했다. 무척 착해 보이는 택시기사는 진하의 모텔들이 몰려있는 곳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날은 저물어 깜깜했다. 서둘러 비교적 깔끔한 집에 여장을 풀고 숙소 근처의 큼직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를 도우며 일하는 딸이 친절했고 엄마는 우리들에게 다음날 아침식사 할 수 있는 식당골목을 알려주었다. 그 식당상호는 엄마의 이름이란다. 이날 우리는 36km나 걸었다.
< 해파랑길을 걷다-1B 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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