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魂 깃든 대왕암ㆍ자연의 걸작 주상절리에 반하다
◇ 울산 덕하역∼포항 양포항
< 2022년4월18일-21일 >
< 첫째 날 >
15리나 계속되는 솔마루 하늘길, 십리에 펼쳐진 대숲길, 유채꽃에 물든 태화강둔치!
어느 것 하나 빼놓거나 놓쳐선 안 될 아름답고, 즐겁고, 또 걷고 싶은 길이었다. 오르지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 하고 싶다.
4월18일 오전10시 해파랑길 1차 걷기를 함께 했던 네 사람이 25일 만에 신경주역에서 다시 만났다. 일행은 택시로 지난 번 걷기를 중단했던 울산의 옛 덕하역으로 갔다. 택시요금이 22,000원이나 나오는 먼 거리다. 날씨는 아주 맑았다. 옛 덕하역에서 자동차 소리 시끄러운 울산시내 길을 햇살을 등지고 30분정도 걸어 야트막한 함월산 길에 들어섰다. 20분쯤 산길을 올라가니 ‘높이138m’라고 적힌 목제 표지비가 있었다. 그리 높진 않지만 한 시간쯤 걸은 탓에 땀도 나고 숨도 차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함월산 길에서 내려오니 넓이나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예쁜 호수가 나왔다. 호수를 지나가는 다리주변과 긴 호반에 각종 위락시설이 갖추어진 선암호수공원이었다. 이곳엔 일제 강점기에 농업용수를 위해 쌓은 선암제가 있었다. 1960년대 울산공단 조성으로 늘어난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1964년에 학장해 선암댐을 만들었다. 그 후 나빠진 수질을 개선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환경을 아우르는 생태공원으로 조성, 2007년1월에 개장된 내륙호수란다. 우리들은 멋진 경관에 취해 잠시 길을 잘 못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되돌아서 다시 가파른 산길로 올라갔다. 소나무가 많은 산비탈 길을 한참 가파르게 오르니 평탄한 능선 길은 좌우로 구불구불 서쪽으로 한없이 이어졌다. 햇살은 솔가지에 가렸고 좌우에서 불어오는 비람은 시원했다. 이정표에는 ‘솔마루길’, ‘솔마루 하늘길’로 적혀있었다. 소나무가 많은 능선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산길 곳곳엔 바다에서 올라 온 듯한 자그마한 고래 모형들이 반겨준다. 지난날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울산의 상징동물이다. 그렇게 약 5km쯤 가니 울산대공원 표지판이 나왔다. 덕하역에선 6km쯤 되는 곳이다. 큰 네거리와 만나는 곳에서 산길을 내려와 길옆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주인 혼자 운영하는 곳인데 아구찜이 일미여서 길손들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2시를 지나고 있었다.
도로가의 새빨간 철쭉꽃이 반겨주는 곳을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갔다. 산길은 공원 옆을 지나는 큰 도로위에 놓인 다리를 지난다. 다리의 초입엔 소를 타고 가는 노인 석상, 끝나는 곳엔 김삿갓 석상이 서서 길손을 맞아주었다.
그렇게 가다보니 멀리 울산시를 가로지르는 태화강이 내려다보였다. 전망 좋은 곳이면 빠지지 않는 게 정자. 산마루에 있는 ‘솔마루정’에서 바라보는 태화강변의 대나무 숲이 장관이었다. 새파란 강물과 녹색의 대숲이 어우러져 길게 펼치는 조화에 할 말을 잃었다. 고려시대 문헌에도 기록이 나올 정도로 오랜 세월 명승을 자랑하는 태화강 십리대숲이다.
이 일대의 태화강대공원은 2019년7월 우리나라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돼 관리되며. 한국관광 100선에도 들어있는 절경이다. 산위에서 바라보다 발길을 재촉해 가파른 비탈길을 달려 강가의 태화강전망대로 내려왔다. 해파랑길 7번째 구간을 시작하는 스탬프를 찍은 후 전망대에 올라 강 너머의 십리대숲과 태화강 절경을 감상했다. 전망대를 내려와 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은하수다리를 건너가니 곧 바로 태화강 국가정원의 대나무숲길이 시작됐다.
하늘을 가리며 울창하게 우거진 대나무들 사이로 나있는 널찍한 산책로들이 시원하다. 관광객들을 위한 촬영보조 시설도 예쁘게 설치돼 길손들의 발길을 잡았다. 이런 대숲이 주변의 산을 중심으로 무려4km쯤 떨어진 태화루 근처까지 이어져 십리대숲이라 한다. 대나무 잎에서 많이 나오는 음이온은 신경안정과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기자는 25년 전 울산에서 한 해동안 근무해 이 대숲을 잘 안다. IMF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그 당시 이 대숲도 잎이 많이 말라 거의 고사상태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이토록 멋지고 울창하게 복원된 모습이 경이롭다.
대숲을 벗어나 태화강 둔치를 걸었다. 말끔히 포장되고 단장된 강변에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고 강의 양쪽엔 하늘로 치솟은 고층 빌딩들이 멋을 부리고 있었다. 강을 가로질러 건설된 다리들의 모습도 예술적 멋이 풍겼다. 강물이 탁했고 지저분한 강가의 둔치와 울산공단에서 내뿜는 각종 공해로 주변 산들의 나무들이 말라죽기까지 했던 옛날의 울산이 아니었다.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햇살을 받은 태화루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촉석루, 영남루와 함께 영남의 대표누각인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 때 건축돼 임진왜란 때 소실됐으나 최근에 복원, 2014년5월 주변을 태화루공원으로 조성했다. 태화루를 지나 번영교근처에서 이날의 걷기를 멈추었다. 숙소를 정하고 근처의 식당에서 장어구이에 한잔의 반주로 하루를 마감했다. 이날 걸은 걸음 수는 35,500여보, 거리는 25km쯤 된다. 식사 후 마트에서 맥주를 사와 자정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파에서 벗어난 길손들의 즐거움이었다.
< 둘째 날 >
간밤의 늦은 취침으로 8시쯤 일어났다. 숙소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9시쯤 태화강 둔치로 나가 동쪽을 향해 걸었다. 하늘은 맑았고 둔치의 유채꽃은 새악시 저고리처럼 샛노랗게 빛났다. 뜨거운 햇살을 모자로 가리며 강을 따라 동쪽으로 걸었다. 둔치 보리밭에선 보리가 이삭을 패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보리밭을 헤집고 다니며 뽑아 먹었던 깜부기는 보이지 않았다. 보리 이삭이 병들어 까맣게 변색된 깜부기는 배고팠던 철부지들의 맛있는 군것질 감이었다. 40여분을 걸으니 둔치 길은 자동차들이 폭주하는 왕복6차선 도로의 갓길로 이어졌다.
강쪽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바다를 향해 걸었다. 저 멀리 하구에 강을 가로지른 울산대교가 보인다. 하늘 높이 솟은 두 개의 주탑 양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긴 줄이 보인다. 귀를 찢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가도 가도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간혹 강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과 소음을 낚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정말 시끄럽고 짜증나는 길이었다.
양정2교를 지나고 20분쯤을 더 가니 튼튼한 철조망 너머로 수출용 자동차들이 가득히 주차된 부두가 나왔다. 자동차들이 꽉 들어찬 부두엔 산처럼 육중한 자태의 화물선이 두 척이나 정박하고 있었다. 대형 화물선을 이처럼 가까이서 본 기억이 없는 탓에 놀랍기만 했다. 6차선 도로 너머 건너편에도 자동차들이 꽉 들어찬 주차장이 펼쳐져 현대자동차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그 주차장 정문엔 아산로라고 새겨진 대형 돌기둥이 서있어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을 연상시켜 주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가로수가 잎이 많은 소나무여서 그늘이 비교적 좋았다는 점이다. 가로수를 손질하는 인부들도 자동차들 소음으로 무척 힘들어 할 것 같았다.
그 후로 20분쯤을 더 걷고서야 방어진순환도로에 닿아 자동차들의 굉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서 우리들은 큰 길을 벗어나 염포산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똑 바로 곧은 대로에서 자동차 소음에 시달린 우리들은 조용해진 길가의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와 아이스크림 등으로 심신을 달랬다. 걷기시작한 지 세 시간 만이었다. 편의점 근처의 염포산길 들머리에서 8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바다를 끼고있는 염포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데다 그늘이 좋은 완만한 산길이 계속됐다.
30여분을 걸어 2km쯤 가니 울산항과 울산대교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울산대교전망대가 나왔다. 높이 608m나 되는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봤다. 조망도 볼만했지만 울산대교 건설과정과 자세한 현황표와 사진자료 등도 게시돼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울산대교는 공사기간이 5년, 완공은 2015년5월, 총사업비 4869억원, 주탑 높이 203m, 총연장 3.52km, 수면에서 상판까지는 50m, 주탑 두 개의 거리는 1,150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고 했다. 기술력의 위대함이 한눈에 느껴졌다. 전망대 관람은 무료.
전망대 옆에는 천내봉수대가 있었다. 봉화를 피운 연대는 있지만 봉수원들이 기거했던 사택은 터만 남아있었다. 봉수대를 지나 오후1시15분쯤 방어진항구에 도착했다. 도로가에 마지막 남은 동백꽃들이 봄의 뒷자락을 부여잡고 길에 떨어져 붉게 덮여 있었다. 추운 겨울부터 피어 사랑받던 꽃이지만 계절의 순환엔 어쩔 수가 없나보다. 몇 군데를 헤매다 들어간 장어탕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맛은 좋았지만 장어의 뼈를 발라내지 않고 끓여낸 탕이어서 조심조심 먹어야만 했다. 마음씨 좋아 보인 나이 많은 남자종업원은 우리들이 나올 때 여주인 몰래 사과 네 개를 배낭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방어진항 입구에 있는 작은 섬 슬도는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바위섬이다. 이 섬은 해풍이 불 때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거문고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소리를 사람들은 ‘슬도명파(瑟島鳴波)’라며 방어진 12경의 하나로 꼽는다. 입구에 등대와 대형 고래조형물이 우뚝 서있다. 각종 위락시설들도 갖춰진 공원이지만 우리는 일정상 입구까지만 가보고 지나왔다. 항구 북쪽의 소리체험관 외벽에 크게 적힌 “귀를 열면 풍경이 들린다.”는 글귀가 가슴에 닿는다.
방어진 항구를 벗어나니 전형적 어촌과 농촌의 풍경이 펼쳐졌다. 구불구불 계속되는 흙길과 밭을 둘러 싼 돌담, 오른쪽엔 갯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연가처럼 들리고 왼쪽으로는 온 밭을 가득 채운 만발한 노란 유채꽃이 춤을 춘다. 마치 제주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정경에 취해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해풍을 벗 삼아 기념촬영도 하며 20여분을 천천히 걸었다. 저 멀리 푸른 바다위에 하얀 바위들이 금강산 봉우리들처럼 연이어 길게 벋어있었다. 거리가 가까워 지면서 드러난 바위들의 기묘한 모습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 유명한 대왕암공원이었다. 슬도에서 불과 2km 남짓 거리였다.
대왕암공원의 안내판엔 나라를 지키려는 신라 30대 문무왕 부부의 확고한 호국의지에 얽힌 전설이 적혀있다. 사후 바다 밑에 마련된 릉(陵)에 장사된 문무왕은 나라를 지키려고 커다란 용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 남편의 뜻을 받든 부인의 넋도 호국룡이 되어 울산 동쪽바다의 큰 바위아래에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용이 잠겼다는 큰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는데 대왕암 아래에선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온갖 모양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나무 데크와 철제 계단으로 연결해 조망이 절경이라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우리도 이 곳에서 약30분가량 머물었다.
그리고 근처의 일산해수욕장 솔밭 길을 지나 해파랑길 9번째 구간을 시작하는 스탬프를 찍었다. 아직 해가 한발이나 남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더 북쪽으로 걸어서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현대중공업 앞길을 통과했다. 마침 퇴근시간이 시작된 탓에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을 목격했다. 특히 정지신호를 받아 대기하던 오토바이 탄 사람들이 신호가 바뀌자 일시에 내달리는 광경은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소음도 컸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오토바이 행렬에서 울산현대중공업 계열사 근로자들의 수를 실감했다. 공장 정문에서 나오는 자동차들 또한 오토바이들 수에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가도 드넓은 도로를 꽉 매운 퇴근 근로자들의 차량이나 오토바이 물결은 이어졌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걸어 현대백화점을 지나 울산시 남목1동의 뒷골목에서 어렵게 숙소를 잡았다. 걸어오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근처엔 숙소가 두 곳밖에 없었다. 전화를 하고 1km쯤 떨어져 있는 두 곳을 둘러보는 발품을 판 후 시설이 좀 더 좋은 곳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서 한 잔의 반주를 곁들여 식사하고 이틀째의 일정을 마쳤다. 이날은 우리가 43,800여보를 걸어 약30km를 북상했다.
< 해파랑길을 걷다-2B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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