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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3차 A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5. 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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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 해변 자갈 때문에 울고
바다에 비친 하얀 낙조에 웃다

 


◇ 포항 양포항∼포항 도구해수욕장
< 2022년5월23일-24일 >


< 첫 날 >


아침8시10분 서울을 출발한 KTX 열차는 10시39분 정시에 포항에 도착했다. 우리들 넷은 택시를 이용, 지난달 2차 걷기를 중단했던 포항시 장기면 양포항으로 갔다. 우리를 태운 택시기사는 최근 마련한 그의 새 전기자동차 성능과 속도의 우수성을 침이 마르게 자랑하며 신나게 달렸다. 그 덕에 우리들은 택시비를 4만원이나 지불한 먼 거리의 양포 항까지 20여 분만에 갔다. 지난번 점심을 먹었던 음식점(일송정) 주인 80세 할머니는 우리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맛있는 해물매운탕으로 식사하고 할머니와 함께 기념촬영 후 12시45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양포항의 마당 끝에 볼링 핀을 닮은 높다란 원형기둥 6개가 둥글게 서있어 이채로웠지만 용도는 모르겠다. 항구를 벗어나 30분쯤 가니 가자미처럼 생긴 커다란 생선들이 높게 설치된 건조대의 가로 막대들에 잔뜩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또 10여분 걸어가니 허리춤 높이의 널따란 사각 철망 건조대에 멸치를 널어 말리고 있어 바닷가 마을임을 실감나게 했다. 해안 호안시설을 끼고 길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오른쪽으로는 항만의 각종 시설이나 해변의 기묘한 바위들과 새파란 수평선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 곳곳엔 ‘동해안로’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한낮의 더위를 해풍으로 쫓으며 북으로 걸었다.


산들이 바다 가까이 바짝 다가온 갯가이지만 군데군데 나타나는 마을의 화단들엔 예쁜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또 길가 시멘트 구조물을 따라서 만들어진 화단에서도 연분홍 ‘낮 달맞이꽃’들이 한창이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땐 바닷가에선 매우 귀한 논도 있었는데 벌써 모내기를 끝낸 상태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더 올라가니 대진해수욕장이 우리를 손짓한다. 해변 모래밭을 가로 질러 바다로 멀리나간 멋진 나무 전망대가 있어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했다. 해수욕장을 지나 30분쯤 가니 거대한 직각 방파제 안을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나누어 바닷물을 가득 채운 시설이 보였다. 무슨 시설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물어 볼 사람들이 없었다. 그 시설이 방어양식장이란 건 한참 후에 만난 주민에게 물어보고서 알았다. 길 건너 왼쪽의 좁은 밭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가뭄에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들은 기묘한 모습의 바위들이나 거북이를 닮은 바위도 봤고 제주도처럼 돌담을 둘러쌓은 마을길도 통과했다. 한 시간 쯤 후에 도착한 장길리 복합낚시공원엔 각종 물놀이시설과 높은 전망대, 바닷물 위로 깊숙이 들어간 목제 데크 로드도 있었다. 데크 로드 입구엔 ‘전망대 끝에 있는 돌이 보릿돌’이라 불린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 데크를 지나니 길가엔 인동초와 해당화꽃이 만발했다. 또 야트막한 언덕에는 기품 있는 소나무가 해변을 따라 설치된 데크 로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로 벋어나간 야트막한 바위에는 주상절리의 기둥들이 세로로 서있어 장관이었다. 길가의 어촌계 작업장 건물엔 하정2리라고 씌어 있었다. 30여분을 더 가니 작은 배들이 접안해 있는 구룡포항이 나왔다. 13구간이 끝나고 14구간이 시작되는 곳에서 스탬프를 찍고 첫날 걷기를 마쳤다. 그 때까지 걸은 거리는 약20km, 걸음 수는 32,400여보였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어업전진기지로 만들어져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한 백화점, 병원, 음식점과 여관들이 들어차 번화가가 형성됐었지만 해방 후 지역개발에 따라 많이 철거됐다. 현재 남아있는 일본인거리는 포항시가 역사교육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2011년3월부터 일제시대의 모습으로 정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일본인 거리를 잠시 들러 본 후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모텔주인이 알려준 부둣가 횟집에서 생선회에 한 잔의 반주로 길손들의 낭만을 즐겼다.


< 둘째 날 >


7시쯤 모텔에서 나와 모텔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아침이라 백반만 가능한 곳이었는데 생선구이, 계란 프라이, 무한 보충되는 국물이 일미였다. 상호는 ‘할매식당’이었지만 할매는 없었고 서글서글하고 건장한 여사장과 61세라고 했지만 더 많게 보이는 친절한 남편이 일하고 있었다. 부부 모두 붙임성이 좋아 우리들에게 가다 들려보면 좋을 곳들이나 식당을 알려주었다. 남편은 등산은 좋지만 우리처럼 걷는 것은 싫다고 했다.


식사 후 걷기를 시작했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에다 친절한 서비스까지 받았으니 길손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질 수밖에. 식당앞 4차선 도로를 건너면 부두에 연해 조성된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엔 ‘아라광장’이라고 음각한 직육면체 돌 위에 짙은 갈색의 납작하고 둥근 돌판과 얇은 직사각형 돌이 얹혀있었다. 둥근 돌엔 ‘포항구룡포 과메기’, 그 옆 네모난 돌엔 과메기의 기원 등을 새겨놓았다. 과메기 고장의 상징물이었다. 항구에서 30분쯤 가니 구룡포 주상절리입간판이 보였다. 크거나 높지 않은 바위들이 길옆 바다에 넓게 펼쳐져 있어 이 지역이 화산지대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근처엔 인동초도 피어 있었고 오징어를 말리는 긴 빨래줄 모양의 건조대도 있었다. 해변 모래밭에선 나팔꽃 비슷한 보라색 갯매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고 오래전 상영된 어느 영화의 촬영지란 동산모양의 아담한 섬도 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옆엔 대형장비를 동원해 파헤치고 기둥을 박는 공사장도 수시로 나타났다. 자연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건지 환경을 해치는 건지는 모르겠다. 공사장 중장비 소리가 안 들릴 만큼 가니 쉬어가라는 원두막이 있었고 2km쯤 더 가니 직사각형 사진틀이 서있는 전망 좋은 곳이 보였다.


사진틀 아래 돌판엔 ‘동쪽 땅끝마을 석병리’라고 씌어 있었다. 호미곶과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정말 제일 동쪽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빈 사진틀 안에 들어가 사진처럼 찍혔다. 근처엔 ‘성혈(性穴)바위’란 제목이 크게 적힌 주황색 안내판이 있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모양의 구멍 같은 홈들이 많이 패인 상당히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의식 흔적이라고 한다. 더 가니 길옆의 이정표엔 길 이름이 어느새 ‘호미반도 해안둘레길’로 바뀌어 있었다.


자동차 도로의 이정표에는 호미곶 전방7km란다. 석병리에서 2.5km 거리란다. 20여분을 더 가니 바닷가 시설물 안전공사로 길이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안내표시가 나왔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로 나와 가다보니 작은 포구에 있는 고깃배 측면에 재미있는 영어문장이 대문자로 적혀 있어 모두 웃었다. “BOYS, BE AMBITIOUS FOR BIG FISH" 우리도 큰 고기들이 많이 잡히기를 빌어주며 지나왔다. 바로 앞 마을길엔 이 고장에서 제일 많이 본 분홍색 ‘낮 달맞이꽃’들이 기다란 화단에 피어있었다.


마을을 지나 40분쯤을 걸으니 멀리 바다너머로 높이 솟은 호미곶 등대가 하얗게 보였다. 동해는 물론 우리나라의 상징적 등대다. 20분쯤 더 걸어 우리들은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도착, 바다위로 오른 손을 내민 커다란 손과 악수했다. 온 인류가 화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은 이 기념물은 1999년에 영남대 김승국 교수가 제작했다. 육지에도 같은 크기의 왼손이 새천년 기념관앞 광장에 있다. 고 이어령 당시 새천년준비위원장이 ‘상생의 손’이라 이름 붙였다. 해맞이광장 주변엔 기념관 외 등대박물관, 연오랑세오녀상, 최백호 가수의 영일노래비, 일제 강점기 순국한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시비도 있다.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들은 서울에 있는 친구들까지 동원해 수소문한 맛집들을 찾아 헤매다 이 지방 특유의 음식 모리국수로 막걸리 반주해 점심을 즐겼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호랑이 꼬리반도'의 북쪽 해변이자 영일만의 남쪽을 따라 만(灣)의 안쪽을 향해 걸었다. 이 길은 포항제철 남쪽 도구해수욕장까지 굴곡을 거듭하며 약21km쯤 이어진다. 광장부근의 청포도시비를 지나면 붉은 등대와 흰 등대가 방파제입구를 지키는 대보수산물특판장이 나오고 넓고 곧은 도로를 따라가면 대보항 이다.


항구의 등대들은 대부분 붉거나 흰데 색깔에 따라 다른 뜻이 있음을 바다 근처가 고향인 일행이 알려주었다. 모든 항구는 선박 입항 기준으로 적색 등대는 오른쪽, 백색은 왼쪽에 세워지며 등대 가까운 쪽은 위험하니 색깔을 잘 보고 피해서 운항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어느 항구엔 한 개만, 또 다른 곳엔 두 개를 모두 세우는 지는 모르겠단다. 조금 더 가니 물위로 길게 드러난 검은 바위들에 갈매기들이 큰 무리를 지어 앉아있어 검은 바위들이 희게 보였다. 그 너머 바다 가운데엔 녹색의 등대가 아스라이 서있었다. 평탄한 해변 길로 10여분 가니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는 글을 새겨 2001년4월에 세운 호미숲 해맞이터 돌비석도 있었다. 평탄한 포장도로는 20여분쯤 더 이어졌다.


이 비석을 지나 약 한 시간쯤 간 곳, 호미곶 광장에서 8km쯤의 거리에 전망이 아주 좋은 구룡소가 있다. 40∼50m 높이 절벽이 둘레 100m정도로 움푹 패인 곳 인데 이 곳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갔다는 전설이 있는 절경이다. 여기에 있는 동굴 아홉 개는 용이 하늘로 갈 때 생겼다고 전해온다. 높다란 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절벽위 난간에 난 길을 걸으며 절경을 감상했다. 이 구룡소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봐야 전체 모습을 완전히 감상할 수가 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울퉁불퉁한 자갈길과 편안한 나무 데크 로드가 번갈아 나오며 이어졌다. 오후2시를 전후한 뜨거운 초여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구절양장을 닮은 해안 길이라 걸어가는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우리들도 해풍을 안거나 등지고 걸었다. 바람을 안았을 때와 등졌을 때의 체감온도 차이는 경험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거듭되는 냉탕과 온탕의 도보여행이었지만 평탄한 길에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수시로 나타나는 굵고 모가 난 자갈이 깔린 길이 길게 계속될 때는 정말 힘들었다. 더군다나 15구간 종점에 있는 스탬프 찍는 포스트는 흥환보건소앞에 있다는 안내책자의 표시와 달리 한참 떨어진 엉뚱한 대로변 흥환슈퍼에 있었다. 그 바람에 지나쳐 갔던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가는 고생까지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그 때가 벌써 오후5시쯤이었다.


우리가 지나 온 길에는 커다랗고 기묘한 바위들이 수십 개나 박힌 수직절벽도 있었고 파란 바다위로 설치된 멋진 데크 로드도 많아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가하면 높다란 절벽 전부가 온통 하얗게 보이는 곳도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호미반도의 화산성분이 많이 함유된 백토로 생긴 바위여서 하얗단다. 이름도 흰 언덕이란 뜻의 ‘흰덕’으로 불리다 힌디기로 고착됐단다. 바로 옆에는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바위섬 하선대가 우리를 유혹했다.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석날 선녀들을 초청해 놀았는데 그 중 예쁜 선녀에게 반해 어렵게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아 왕비로 삼았단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살펴봐도 빈 바위뿐이었다.


짙어진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햇살에 반사돼 하얗게 반짝이는 해면, 바닥 가장자리에 커다란 비석처럼 우뚝 선 비문바위, 바다 깊숙이 설치된 데크 로드가 늦은 오후의 햇살을 가려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모습도 갈 길 바쁜 우리들의 발길을 붙잡곤 했다. 그러나 일본으로 연오랑세오녀(延烏郞細烏女)를 싣고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먹바위(검둥바위)는 주변 공사장 가림막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일본으로 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신라의 사신이 일본에 가서 세오녀가 짠 비단을 얻어와 제사를 지내고서야 신라엔 다시 빛이 돌아왔다는 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서쪽 하늘은 회색구름이 짙어졌지만 동쪽은 아직 명경처럼 새파랬다. 영일만의 낙조는 절경으로 소문난 곳이다 그렇지만 이날 우리는 6시도 안 된 시간에 대부분을 통과해 조금 아쉬웠다. 날이 길어져 해가 서쪽하늘 높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일만 바다위에 길게 드리운 해 그림자는 장관이었다.


험한 자갈길을 오랜 시간 걸은 탓에 발바닥의 통증이 심했다. 게다가 작은 물집까지 생겨 더 힘들었다. 이날의 행선지 도구해수욕장은 아직도 2km쯤이나 남았는데 발바닥 통증과 수시로 나타나는 자갈길이 우리들을 괴롭혔다. 절벽위에 조성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바라 본 영일만 수평선과 그 너머에 길고 희미하게 보이는 포항제철, 공원 주변의 멋진 절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서쪽 하늘은 더 컴컴하게 흐려지고 있었다. 시간도 6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20여분을 더 가니 기다란 모래해변이 나타났다. 도구해변의 시작지점이었다. 우리는 해변의 잔솔밭 사이를 힘겹게 걸었다. 소나무들은 모두 해풍의 오랜 영향으로 육지를 향해 비스듬히 기울었다.


푹신푹신한 모래밭길이 천리처럼 느껴질 즈음 도구해변 부근 포항시 동해면 약전2리 시내로 나왔다. 비행장이 가까워 머리위로 대형 수숭기들이 연달아 지나가 귀가 먹먹하게 느껴졌다. 잔뜩 낀 구름 탓에 7시가 막 지났는데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시력 좋은 일행의 시력까지 동원해 찾은 덕에 운 좋게 가까운 곳에 있는 유일한 모텔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모텔근처 음식점에서 장거리 도보여행에 소비한 단백질을 족발보쌈으로 충분히 보충했다. 이어 바로 옆의 호프집에도 들려 이틀째 걷기를 마감했다. 이날 우리는 약37km, 51,000여 걸음을 걸었다.

 

< 해파랑길을 걷다-3차 B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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