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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4차 A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6. 2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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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해안서 숨져간 학도병 충혼 새기고
세찬 비바람·파도 맞으며 해안절벽 걸어


◇ 포항시 화진해수욕장∼영덕군 영해
< 2022년6월13일-14일 >


72년 전 9월15일 새벽 그 처절했을 순간을 여러분은 상상해 보았는가요?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모래밭과 바다 물에 걸쳐 서있는 전승기념관 모형전함 ‘문산호’의 측면엔 ‘아! 학도병들이여…’란 커다란 글자가 선명했다. 구국일념 하나만 안고 적진 속으로 뛰어들어 산화한 젊은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북쪽으로 걸었다.
그런가하면 종일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도 맞았고 집채만 한 파도를 피하며 수직의 해안절벽을 따라 아슬아슬 걷기도 했다. 흐리고 바람 불면 시원해서 좋아했고 햇살이 빛날 땐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보며 걸었다.

 


< 첫째 날 >
아침8시10분 서울을 출발한 KTX열차는 10시40분에 우리를 포항역에 내려주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화진해수욕장 근처 송라면 정류장에서 내려 택시로 지난달 걷기를 멈추고 점심 먹었던 음식점으로 갔다. 우리들을 승용차로 송라면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었던 여사장이 우리들을 반겼다. 약 한 시간동안 느긋한 점심식사를 즐기고 오후1시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시원한 해풍이 우리들의 걸음을 경쾌하게 해주었다. 해변의 방파제 테트라 포트에서 홀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늘어선 음식점거리를 지나 푸른 해원을 감상하며 20여분 걸으니 영덕군 경계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영덕군이 개설해 2015년 소비자선정 테마관광부문 최고상을 받은 ‘블루로드’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4개 코스로 구성된 블루로드는 해안을 따라 울진군 경계까지 해파랑 길과 거의 함께 가는 64.6km의 도보여행길이다. 군 경계선을 지나자마자 길 이름도 ‘영덕블루로드’로 바뀌었고 길가의 집들 중 푸른 기와집도 보였다.

 


영덕의 특산품 대게를 주제로 조성한 대게누리공원 이정표가 우리들을 안내했다. 블루로드에서 70m쯤 산으로 들어간 곳에 조성된 공원이다. 영덕군은 블루로드 완주자에게 기념 메달을 준다. 우리는 이 공원에 들려 블루로드 안내서를 받아 첫 스탬프를 찍고 나와 걸었다. 대게공원에서 2km쯤 되는 장사해수욕장 모래밭에 거대한 전함모형이 보였다. 절반은 모래에, 절반은 물에 걸쳐있었다. 측면에 ‘아! 학도병들이여…’라고 크게 쓴 글자 옆에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이라고 작은 글자가 병기돼 있었다. 장사상륙작전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민족의 아픈 상처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에 맞춰 북한군교란을 위한 기만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1950년9월15일 새벽 포항북쪽 25km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에서 시작됐다. 전시에 지원해 2주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학도병 772명을 주축으로 한 육군본부 제1유격대 등 총 841명이 투입된 이 작전은 상륙 4일 후 철수할 때까지 북한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도 막심해 139명이 전사하고 39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타고 갔던 함정이 좌초되고 아군의 무력지원도 제대로 못 받은 전투였지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도운 역사적 작전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다시 한 번 그들을 생각해 본다.

 


해수욕장을 지나 20분쯤을 가니 아가미 윗부분만 내민 물고기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어촌임을 상징하려는 듯 했다. 푸른 기와집들이 더러 보이는 마을도 지났고 길가에 붉게 핀 접시꽃이 반겨주는 마을도 지났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왕복4차선 동해대로에는 거목으로 자란 느티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이어지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가니 남호해수욕장가에 독도까지 244km란 표지판이 보였다. 바로 옆엔 나옹선사의 유명한 시 ‘청산은 나보고 말없이 살라하고’가 새겨진 입간판과 춘원 이광수의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하는 시 입간판도 있었다.

 


그 일대가 삼사해상공원이었다. 바다위로 걸을 수 있는 원형 데크와 정원수들이 잘 가꾸어진 산책로도 우리들을 불렀다. 정원에는 국제로터리클럽 창립100주년 기념 돌비석과 이북5도민 망향탑도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영덕군에서 2004년 새해 아침에 세운 ‘바다의 빛’ 기념탑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기념탑 근처 야트막한 언덕위의 종각에 매달린 큰 종은 영덕군의 새해맞이 타종으로 잘 알려진 무게 30톤짜리 慶北大鐘. 그 종각 앞 공원엔 무게 20톤이란 설명이 붙은 대형 화문석(花紋石)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옆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앞엔 대형 게조형물이 게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 시들을 읽고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우리도 잠시 피곤한 다리를 쉬게 했다.

 


해상공원을 지나 경사가 급한 지방도로를 10여분 내려가니 바닷가에 닿았다. 거기서 2km쯤 더 가니 강구항이 우리를 불렀다. 얼핏 보면 강이 바다와 만나는 포구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고 바다가 가늘고 길게 내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양쪽에 그다지 크진 않지만 많은 배들이 접안하고 있었다. 그 위로 다리도 두 개나 걸려 있었다. 우리는 먼저 만난 다리를 건너 블루로드 스탬프를 찍고서 해파랑길 스탬프 포스트를 찾았다. 그랬더니 그것은 방금 건너온 다리직전에 있었다. 우리는 400∼500m가 되는 다리를 다시 건너가서 20번 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어야 했다. 그 때가 오후 5시였다.

 


새로 걸어야 할 20번 코스는 바다와 떨어진 내륙 산길을 통과하게 돼있었다. 왜 내륙을 통과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거리도 18km인데다 코스 주변엔 인가도 없다고 안내서에 적혀있었다. 중단하자니 아직 해가 하늘높이 떠 있어 아쉽고. 가자니 너무 멀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이미 약16km쯤을 걸었다. 강구에서 잘까 말까 숙의를 거듭한 후 결국 더 걷기로 했다. 영덕군청 관계자가 도중에 딱 한 곳 ‘금진구름다리’에서 인가를 찾을 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정표를 보니 강구항에서 4.4km란다. 그 거리라면 비록 산길이라도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되리라고 믿었다.

 


강구항을 벗어나니 곧 바로 언덕으로 올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눈 아래 펼쳐지는 강구항이 주변을 싸고 있는 산과 어울려 아담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걷는 속도를 좀 더 높여 야트막한 산길을 걸었다. 좌우 어디에도 도시나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흐린 하늘이었지만 해는 아직 서산머리에 보였다. 마주 치는 사람도 없어 산길만 보며 걸었다. 오르막 내리막도 적당히 교대로 나왔다. 두어 차례 쉬며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었다. 다행히 자주 만나는 이정표는 우리들이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윽고 산길이 깊게 잘려나간 곳으로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 도로 위를 가로지른 현수교가 나왔다. 금진구름다리였다. 두 사람이 비켜갈 수 있는 그 다리의 바닥은 나무 데크였다. 우리가 빨리 걸은 탓에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GPS로 검색해보니 약4km앞에 있는 고불봉이 가장 영덕읍과 가까웠다. 시간은 저녁 6시. 가장 해가 길다는 하지가 열흘정도 남았지만 곧 해가 질 시간이다. 마침 마주 오는 사람이 있어 물었더니 중간에 사찰이 하니 있지만 영덕읍내로 가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지는 해를 마주보며 어두워 오는 숲길을 정말 힘겹게 걸었다.

 


무성한 숲속이라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도 있었다. 체력의 한계가 느껴질 무렵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불봉 정상에 도착하니 발아래 영덕읍의 불빛이 훤하게 보였다. 해발 높이는 235m밖에 안 됐지만 피로에 지친 우리에게는 에베레스트 고봉처럼 느껴졌다. 해도 이미 서산 너머로 숨어버린 7시15분이었다.

 


등산이나 보행엔 자신 있다는 70대 초로들이었지만 정말 힘든 하루였다.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그렇지만 어둠이 내리는 산길은 경사가 급전직하여서 한 순간의 실수도 용납 안 될 고난도 구간이었다. 우리들은 7시40분쯤 영덕 역으로 하산, 역에서 멀지 않은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고기무한 리필’이란 간판에 끌려 그 음식점에 가서 실컷 배불리 먹었다. 이날 걸은 거리는 27km밖에 안 됐지만 힘들었다.

 


< 둘째 날 >
어제 무리한 탓에 조금 늦게 숙소를 나와 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던 중 문을 연 식당이 있어 국밥으로 아침 식사했다. 그리고 택시로 고불봉 아래 야성종합폐차장으로 갔다. 그 곳은 고불봉을 넘어 오는 해파랑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어제 고불봉정상에서 걷기를 멈추었지만 거기에 올라가지 않고 폐차장에서 둘째 날 걷기를 시작했다. 오전8시30분이었고 하늘은 잔뜩 흐렸다. 수풀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10분쯤 가니 무척 가파른 나무 계단이 시작됐다. 왼쪽 건너편에 우리를 힘들게 했던 고불봉이 보였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있는 전망대에서 보니 영덕 시가지가 저 멀리 보였다.

 


거기서부터 비교적 평탄한 산길이 계속됐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가니 산 능선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풍을 맞아 프로펠러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자연생태공원의 풍력발전단지인 듯 했다. 풍력발전기 프로펠러를 벗하며 비교적 넓은 임도를 따라 걷다가 출렁다리 근처 산림생태문화 체험장 쉼터에서 쉬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쓰고 길을 걸었다. 비는 강약을 반복하며 계속 내렸고 바람까지 불었다.

 


임도를 벗어나 큰 길을 10분쯤 가니 갈색 2층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앞에는 건물높이만한 갑옷차림의 괴물 장군이 서있었다. 어린이 만화영화 주인공 마징거Z 같기도 했지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폐품을 이용해 만든 조형물이었다. 그 건물에는 이것 말고도 크기를 달리한 조형물들이 옥상이나 측면에 몇 개 더 보였다. 건물앞 세로로 된 표지판엔 <정크 & 트릭아트 전시관>이라 적혀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바로 옆이 영덕해맞이공원이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선 등대가 멋있고 해맞이를 상징하는 횃불모양의 조형물, 영덕특산물 대게를 형상화한 둥근 관광안내판도 눈길을 끈다. 공원을 지나니 길은 바닷가에 바짝 붙었다. 몰아치는 파도가 바로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바위에 부딪쳤다 부서지는 소리가 우레 같다. 집채만큼 큰 파도가 몰려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며 우리에게 달려들 것처럼 바위사이로 몰려온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성난 듯 몰아치는 파도를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경사가 심한 바위는 비에 젖어 조심스러웠다. 길은 절벽으로 올라갔다가 파도에 닿을 만큼 가까운 모래밭길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런 길을 우리는 무려1시간 반 정도 걸으며 영덕읍 대탄리, 오보리, 노물리, 석리를 지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끊겼다. 외길인데 공사 중이라며 막아놓았다. 우회로 안내도 없었다. 비바람은 계속 됐다. GPS로 검색 해봐도 소용없었다. 영덕군청으로 문의하니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멀리 되돌아가는 수뿐이란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사구간을 통과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기를 정말 잘 했다고 나중에 칭찬 들었다.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심정으로 한참동안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그러다 국도를 만나 2km쯤 북상하고서야 겨우 경정2리에서 해파랑 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2시가 지나서 배도 고팠다.

 


몇 집을 기웃거리다 어렵사리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식재료가 마땅찮다며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음식점 아주머니가 생선매운탕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공사구간을 통과하지 않은 데 대해 칭찬했다. 이렇게 비바람 치는 날엔 절대로 미끄러운 해안가 바위 길을 걷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을 듣고선 ‘정말 날을 잘 못 잡았다’며 평소엔 절경으로 각광받는 코스이지만 이런 날은 파도가 덮칠 위험이 있어 못 간단다.

 


배불리 먹고 비바람에 언 몸을 녹인 후 우리는 여사장이 알려준 대로 조금 더 바닷가를 걷다가 국도로 올라갔다. 약4km를 더 걸어 축산항 버스정류소에서 22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마침 다른 도보여행객이 우리를 스탬프 포스트까지 안내해줘 쉽게 찍을 수 있었다. 그 때가 오후5시였다. 종일 비바람 맞아 한기가 드는데다 피곤해서 더 걸을 수 없었다. 그날 걷기를 끝내고 택시로 숙소가 많은 영해면소재지까지 7∼8km를 달려갔다. 택시기사는 우리를 모텔이 많은 장소에 내려주었다. 숙소를 정한 후 나가서 저녁식사 한 집은 노부부가 하는 쇠고기국밥 집이었다. 메뉴판 아래에 ‘종업원이 하나뿐이니 서비스가 늦더라도 양해 바란다.’고 애교스럽게 적혀 있었다. 이날도 27km쯤 걸었다.


< 해파랑길을 걷다-4차 B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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