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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홍천, 춘천을 가다!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8. 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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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바다, 초가을 비 함께 즐긴 2박3일



명경처럼 새파란 하늘이 우리를 불러냈다. 갑자기 찾아 온 선선한 바람도 뒤질세라 살랑거리며 우리를 유혹했다. 그래서 우리는 훌쩍 서울을 떠났다. 일요일 이었던 지난달28일 오전 일찍 서울을 떠나 강원도 여행길에 올랐다. 경춘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약간 질척 거렸지만 나머지 구간에선 거의 막히지 않았다.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탁 트인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엄마의 7순을 기념해 큰딸이 휴가를 내고 여행경비에다 운전까지 도맡은 신나는 가족여행이었다.

 


가평 휴게소를 출발한지 1시간반쯤만에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양양군 정암해변에 닿았다. 파란 바다는 수평선 끝에서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오른쪽엔 푸른 바다와 하늘, 왼쪽엔 태백의 녹색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했다. 가슴속과 마음까지 온통 청색과 녹색으로 물들 것 같았다. 딸이 운전하는 자동차 뒷좌석에 편안히 기대어 차창밖의 바다와 하늘에서 펼쳐지는 푸른 향연을 맘껏 감상했다.

 


오후1시쯤 우리들은 속초시 대포항에 도착했다. 매사에 치밀한 딸이 미리 수소문 해 둔 음식점에서 싱싱한 생선회와 어패류 등 해산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술을 싫어하는 집사람과 운전을 책임 진 딸의 눈총이 따가왔지만 나는 혼자 들떠서 소주 한병을 다 마셔버렸다. 그야말로 인기 못 얻는 남편과 아버지의 전형적 스타일이 바로 이런 행동이리라.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바로옆의 외옹치 해수욕장으로 갔다. 휴가철이 지난 해변은 사람들보다 임자없는 비치 파라솔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해수욕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외옹치 바다향기길을 걸었다. 파란 하늘과 만경창파가 멋지게 어우러진 나무 데크 로드였다. 바다와 하늘은 파랗다 못해 짙은 잉크 빛에 가까와 눈이 시릴 것 같았다. 우리 식구들은 이 길이 좋아 여러 차례 왔었다. 해수욕장과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여러 장의 기념사진도 찍었다.

 


식사 후 강릉시 주문진의 이름난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카페 옆건물 옥상의 휴게시설에서 바다도 구경하며 쉬었다. 그 옥상엔 쿠션이 좋은 원탁 모양에 반구형 차양시설이 돼있고 침대처럼 누울 수도 있는 시설이 여러 개 있었다. 또 아랫층의 넓은 홀에선 음료와 빵, 각종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도 있고 지하층엔 저녁에 술도 마실 수 있다. 꽤 규모가 큰 세 개의 건물이 한 울타리에 있는 주문진의 명소 '도깨비시장'이다.


8월말의 해가 서산으로 많이 기울어갈 때 도깨비시장을 나와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홍천군 남면으로 향했다. 그 숙소는 깊은 산골을 흐르는 홍천강가 캠핑촌에 있어 식사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도중에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맛집 '본가 동해막국수' 집을 찾아가 막국수와 메밀전으로 좀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뒷골목에 있었지만 맛은 일미였다. 식사 후 우리는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태백산맥을 넘고 깜깜한 밤길을 달려 8시가 지나서야 펜션에 도착했다. 깊은 산속의 펜션이지만 시설은 깨끗했다. 몇 개의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에 맞설 뿐 사방은 고요했다. 여장을 풀고 캔맥주를 마시며 첫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아침에 잠을 깨니 짙게 흐려있었다. 혼자 먼저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아주 부드러운 안개비가 기분좋게 팔에 닿았다. 펜션앞을 흐르는 홍천강가로 난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날은 흐리기만 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빗나간 모양이다. 급하게 숙소로 돌아가 우산을 쓰고 다시 걸었다. 펜션 앞마당의 잘 가꾸어진 정원에선 단년생 백일홍, 분홍색 코스모스, 그 옆엔 닭벼슬을 닮은 맨드라미와 키 작은 개량종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가을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펜션 마당의 잔디와 정원수들 잎에 맺힌 하얀 빗방울들이 작은 구슬들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도깨비시장에서 사 온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 후 춘천으로 향했다. 비는 강약을 반복하며 계속 내리다 우리가 춘천시내에 도착했을 땐 거의 그쳤다. 시간은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딸은 미리 찾아 둔 소양호 근처의 유명 닭갈비 집으로 차를 몰았다. 기존의 플라이 팬에 굽는 방식이 아니고 살만 발라 낸 닭고기를 석쇠에 굽는 집이었다. 각종 야채는 쌈싸서 먹도록 별도로 제공됐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고 맛도 좋았다. 3인분을 주문했는데 맛이 좋아 추가로 더 주문해 배불리 먹었다. 그 바람에 일미인 막국수는 먹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나 혼자 소주를 마셨다. 비는 그쳤지만 계획했던 소양호 구경은 포기했다.

 


그 대신 음식점 뒷편의 잘 가꾸어진 정원과 맨드라미 꽃밭을 구경했다. 붉은 색과 주황색, 노랑색 맨드라미들이 넓은 밭에 만발해 장관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 한구석 작은 화단에서 피던 맨드라미가 이처럼 예쁠 줄은 몰랐다. 꽃밭을 나와 근처의 감자밭 카페에서 최근 전국적 명성을 얻은 감자빵도 샀다. 그리고 우리는 공지천으로 가서 이디오피아 한국전참전 기념관과 이디오피아집, 그리고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를 둘러보았다. 특히 공지천가의 이디오피아집에서 마신 커피는 맛과 향미가 일품이었다. 1968년 개관한 이 집은 당시 하일레 슬라세 이디오피아 황제가 직접 명명하고 커피 원두까지 보내주며 '이 향기가 계속 이어지게 하라'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바로 옆에는 공지천이 흘러가는 의암호가 있다. 의암호수를 가로질러 건너편 삼악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는 개통된지 오래되지 않아 인기가 있다. 그렇지만 탑승료가 생각보다 비싸 타는 건 포기했다. 대신 호수를 끼고 도는 춘천둘레길을 걷고 호수위에 설치된 스카이 워크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잘 정비된 데크 로드를 걸으며 삼악산 등으로 둘러싸인 의암호수의 멋진 조망을 즐겼다. 한 폭의 채색 동양화가 연상되는 풍경이었다. 호수에선 두 팀의 조정선수들이 물살을 가르며 연습중이었다.

 


의암호를 맘껏 즐긴 우리는 카페들이 몰려있는 구봉산 카페 거리로 갔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카페에서 커피와 케잌을 즐겼다. 그 카페의 옥상은 춘천 시가지가 거의 다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 명소였다. 흐린 날씨에다 바람도 살짝 불어 약간 쌀쌀했지만 조망에 취해 오래 머물렀다. 그러다 다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우리는 카페를 나왔다. 시간도 벌써 5시 가까와졌다. 우리는 점심을 먹었던 닭갈비집 근처 '샘밭 막국수'집에서 낮에 먹지 못했던 막국수와 녹두전으로 저녁을 먹었다. 둘째 날의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어두워지는 산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탁탁탁, 툭툭툭'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창문에 부딪치고 나뭇잎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소리였다. 곤히 자고있는 두 사람을 두고 혼자 빗속의 산책을 나갔다. 숙소 앞쪽 길을 조금 걸어거니 과수원에선 가지가 부러질 만큼 주렁주렁 열린 자두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맞은 편 밭에선 내 키보다 높게 자란 율무들이 무거운 이삭을 숙인채 비에 젖고 그 옆 고추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비를 맞고 있었다. 밭두렁엔 옥수수가 익어가고 길가 풀섶에 피어난 달맞이꽃은 더 노랗게 보였다. 산속의 가을은 이처럼 비에 젖는 이들 꽃이나 곡식, 과일들을 따라 찾아오나 보다.

 


펜션으로 돌아와 셋이 햇반과 라면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예상하지 못한 비가 많이 내려 근처의 절이나 유원지에 가보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셋이 함께 나가 정원의 꽃들을 구경하고 내가 조금전 산책했던 그 코스를 둘러본 후 객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비내리는 산속의 고요함을 즐겼다. 가을을 재촉하는 자연 현상은 파란 하늘, 선선한 바람, 밝고 따가운 햇살, 그리고 가랑비까지 여러 개가 겹쳐 있나 보다. 오전11시에 체크 아웃 하고 가을비 내리는 상경길에 올랐다. 딸은 젊은이답게 비를 개의치 않고 고속도로를 시원시원하게 달려 12시반쯤 서울 근교 남양주시에 도착했다. 토평 IC부근의 한강변 음식점마을 깊숙한 안쪽에 있는 '밀밭칼국수'집에서 뜨끈한 칼국수로 점심을 먹으며 2박3일의 여정을 모두 마쳤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철 이른 가을비 속을 달리며 닭갈비와 막국수, 칼국수를 즐긴 알차고도 신나는 여정이었다.

< 2022년9월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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