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에 반하고
음식맛 보다 훈훈한 인정에 감동
< 2022년9월19일-22일 >
◇ 삼척 초곡항∼강릉 옥계해변
< 셋째 날 >
작고 아담한 포구 초곡항의 아침은 고요했다. 하늘도 개었고 바람도 잔잔했다.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조각 한가로이 떠있었다. 간밤에 준비해 둔 라면을 솜씨 좋은 동료가 맛있게 끓였다. 햇반도 데워 조촐하지만 맛있게 식사했다. 7시50분에 펜션을 출발, 미풍이 살랑거리는 해안을 따라 셋째 날의 걷기를 시작했다. 바람은 잔잔해 졌지만 밀려들어오는 파도는 여전히 높고 거셌다. 구름사이로 쏟아지는 강한 햇살을 피해 오늘은 검은 고글을 끼고 걸었다.
30여 분만에 원평 해변 근처 솔숲 옆으로 부설된 삼척 해양레일바이크 철로에 도착, 그 철길을 따라 걸었다. 8시45분쯤 궁촌레일바이크 역에 도착, 31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근처에 고려 말 비운의 군주 공양왕릉이 있어 궁촌이라 불리는 곳인데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국도 동해대로를 따라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걸었다. 길가의 산딸나무 열매를 벗삼아 힘겹게 고개 마루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빛을 반사해 유난히 밝게 보인다. 왼쪽의 바다와 흰 구름 뜬 하늘, 주변의 산들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런 게 바로 선인들이 노래했던 산천경계유람 아닐까? 가로수를 타고 올라가 길게 늘어뜨린 덩굴에 빨간 꽃들을 피운 나팔꽃에 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우리는 내리막길을 50분쯤 걸어 한적한 농촌 부남리 벌판에 도착했다. 주변에 가축 축사와 사료용 옥수수밭들이 많았는데 가축분뇨 악취가 심했다. 길은 들판 옆의 미읍천 제방위로 이어진다. 하천 폭이 넓은 미읍천은 맹방해수욕장과 덕산해수욕장 사이의 덕봉산 아래에서 바다와 만난다. 길은 미읍천의 부남교를 건너 추수를 끝낸 논 가운데로 지나간다. 우리는 벌판의 어느 집 앞 멋진 소나무 그늘에서 간식을 하며 쉬었다. 제방의 양옆 비탈엔 복숭아, 감 등 유실수가 심어져 있었다. 제방위로 이어지던 길은 바다 가까운 덕산해안로에서 덕봉대교를 건너 맹방해변에 닿는다. 다리 바로아래 강처럼 넓어진 개천에서 조정훈련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우리는 11시에 맹방해수욕장 남쪽입구 주차장에서 32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맹방해변 바로 앞 반원형 덕봉산은 미읍천에 놓였던 보행교가 지난 태풍에 유실돼 갈 수가 없었다. 원래는 섬이었다가 연육이 되었음이 16세기 초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돼 있다. 약14km를 3시간 만에 걸은 탓에 쉬고 싶었지만 너무 일렀다.
맹방해변은 모래밭이 길고 물이 맑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해변 북쪽으로 20분쯤 간 곳에 BTS가 앨범 재킷을 촬영했다는 표지가 큼직하게 모래밭에 서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치 파라솔아래 누워 쉴 수 있는 긴 의자들도 20여개가 펼쳐져 있었다. 비록 텅 빈 해수욕장이었지만 파란 하늘아래 짙은 쪽빛 바다가 너무 좋아 눌러앉아 쉬고 싶었다. 다만 파도에 밀려와 모래밭에 쌓인 쓰레기들은 눈에 거슬렸다. 해변은 무척 길었지만 해수욕장은 거기에서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었다.
우리는 모래밭 안쪽의 길고 곧은 포장도로를 1시간 넘게 힘들어하며 걸었다. 그 도로 끝 부근의 바다와 모래밭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이 건축 중이었다. 대형 선박들이 다량의 물품들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일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근처에 건설 중인 삼척화력발전소에 필요한 대형 기계부품들이나 장기간 공급해야 할 석탄 공급과 관련된 시설일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해파랑 길은 다시 뭍으로 올라와 해안을 끼고 걷는 2차선 삼척로로 이어졌다. 우리는 약간 오르막인 길을 힘겹게 걸었다. 4차선으로 넓혀 고속화된 7번국도 동해대로와도 몇 차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해안절경 한재를 넘었다. 크고 높은 고개를 뜻하는 한치 또는 한재로 불리는 고개의 마루에 조성된 한재공원에서 바라보는 동해는 정말 절경이었다.
공원 오른쪽을 보니 조금 전 우리가 지나온 맹방해수욕장과 그 옆 대규모 공사장 구조물들이 손가락처럼 작아 보였다. 왼쪽에는 삼척항과 정라진 방파제가 우리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 오분해변을 지나 오십천에 이르렀다. 작은 개천으로만 여겼던 오십천 하구쪽이 바다처럼 넓을 줄은 몰랐다. 울진 왕피천과 함께 삼척 오십천도 은어들이 산란을 위해한 회귀하는 하천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십천의 남쪽제방 벚나무 길은 소문난 벚꽃명소라고 한다. 우리는 그 벚나무 터널을 따라 상류쪽으로 가다 죽서루엔 가지 않고 삼척교를 건너 삼척시내로 들어갔다. 다리 북단 난관에 서있는 바다사자상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삼척출신 동료의 안내로 우리는 오후2시쯤 정라동의 맛집 ‘만남의 식당’에서 대구탕을 주문했다. 양도 푸짐했지만 맛은 더욱 풍미(豐味)했다. 여기에 한 잔의 반주를 곁들이니 심신의 피로가 확 풀렸다. 중국의 제후들이 즐겼다는 팔진미(八珍味)인들 이보다 더 좋으랴? 벽에는 다녀간 식객들이 써놓은 맛 칭찬 글들이 까맣게 씌어 있었다. 인심 좋은 종업원의 양해로 약 한 시간에 걸쳐 느긋하게 맛과 휴식을 즐긴 후 길로 나섰다. 옆집 어물전 창 앞에 매달린 가오리들이 초가을 빛에 마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음식점 앞을 지나는 해안도로 이름이 ‘새천년해안 샛바람길’이란다. 어학사전을 보니 동풍을 뜻하는 샛바람이 강원도에선 북풍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동풍이나 북풍이 많은 강원도의 길에 맞는 이름같다.
우리는 음식점 바로 맞은편 가파른 언덕길로 올라갔다. 고개초입 벽면의 글들이 의미가 깊다. “바다 너머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바다 같은 사람이고 싶다”고 씌었다. 길은 꼬불꼬불 마을 안을 돌아 올라간다. 삼척항이 눈 아래 펼쳐졌다. 야트막한 건물들 너머로 작은 건물들을 누를 듯 항구입구를 가로질러 선 크고 높은 건조물이 돋보인다. ‘ㄷ’자를 세워놓은 듯 한 이 대형건조물의 용도가 이채로웠다. 대형 쓰나미가 몰려오면 셔터를 내려 항구를 보호하기 위한 시절이란다. 이 건조물의 셔터가 내려오는 날이 없기를 빌며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바람전망대로 갔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동해의 경관이 오전에 지나 온 한재 못 지 않다. 그리고 길가의 울타리를 장식한 나팔꽃이나 솔밭도 길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솔밭 길가에서 본 커다란 돌무지무덤 앞의 오석비(烏石碑)에 새겨진 ‘국난극복유적지’란 글귀가 숙연하게 느껴졌다. 어느 때 어떤 일로 그들은 이 자리에 검은 돌비석의 흔적으로만 남았을까? 조금 더 가다 새천년해안유원지로 내려갔다. 북 모양의 둥근 판에 삼척관광안내도가 그려진 조형물과 그다지 넓지 않은 나무 데크 광장이 동해의 물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발아래에서 굽이치는 파도의 아름다움에 갈 길 바쁜 것도 잠시 잊었다.
어느 덧 오후4시가 훌쩍 지났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걸었다. 30여분을 가니 저 멀리 오늘의 종착지 삼척 솔비치 해변이 보였다. 오늘 걸은 거리가 30km를 넘을 것 같다. 그야말로 온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종착지였지만 20여분이나 더 걸은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들을 편히 쉬게 해 줄 이 콘도는 전망 좋기로 동해안에서도 소문 난 곳이다. 5시에 객실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초가을 짧은 해가 막 넘어가고 땅거미가 찾아올 때 숙소 남쪽 삼척해변 식당가에 들렸다. 마음먹고 찾아간 맛집은 아쉽게도 만원사례였다. 꿩 대신 닭 잡는 심정으로 들어간 음식점이 의외로 괜찮았다. 우리는 생전복 등 신선한 해산물로 끓인 순두부 뚝배기에 반주 한잔으로 셋째 날의 여정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리조트의 널찍한 방에서 내일 아침의 멋진 일출광경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우리는 만보기 기준으로 45,600여보, 약34km쯤 걸었다.
< 넷째 날 >
동해의 일출은 장관이다. 그렇지만 3월부터 500여km를 걷는 동안 한 번도 그 멋진 모습을 못 봤다. 어제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기에 이번엔 큰 기대를 걸고 해뜨기 전에 일어났다. 부리나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리조트 옥상광장으로 달려갔지만 아쉽게도 구름이 잔뜩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한참 기다렸다가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을 뿜으며 뜨는 해를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옥상광장에 있는 종을 쌓아놓은 모습의 조형물 사이로 보이는 일출도 볼만하지만 이 마저도 볼 수 없었다. 간밤에 준비한 막대형 빵과 우유로 간단히 식사하고 7시40분 리조트를 출발했다.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추암조각공원앞에서 33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추암역 근처 철둑길 굴을 지나 동해시 쪽으로 걸었다. 동해시는 동해항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평, 북쪽의 묵호 두 항구를 묶어 이루어졌다. 동해항에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사카이미나토와 연결되는 국제여객선이 출항한다. 추암을 출발한지 30여분 만에 동해북평산단 공공폐수처리장을 지났다. 건물의 규모를 보니 동해산업단지의 크기가 엄청난 것임을 유추할 수가 있었다. 10여분쯤 더 가니 동해항에도 엄청난 방파제와 대형 건조물이 축조되고 있어 세계를 향한 한국의 웅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근처의 전천(箭川)가에 호해정(湖海亭)이란 현액이 걸린 아담한 단층기와집 한 채가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 정자는 1947년 북평지역 유림들이 해방의 기쁨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전천은 두타산 무릉계곡에서 흘러온다. 호해정 일대의 전천은 예전엔 왕모래 밭이 넓은 유명한 해수욕장이었지만 북쪽에 동해항이 개설되고 시멘트공장이 들어선 후 명성을 잃었다고 한다. 전천하구는 폭이 넓어 바다 같았다. 실제로 작은 고기 배들이 많이 정박돼있었다. 건너편엔 쌍룡 마크가 선명한 시멘트공장 시설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전천의 남쪽둔치를 따라 상류로 한없이 올라갔다. 호해정을 떠나 약40분만에 우리는 전천을 가로지른 시멘트 길을 지나서 상류쪽으로 걸었다.
10여분을 더 가다 동해대로와 전천 북쪽의 서동로가 교차되는 곳에서 잠시 헤맸지만 다시 리본을 찾아 걸었다. 길 왼쪽의 철조망 안에 요즘 좀체 보기 힘든 조 이삭들이 무거운 듯 고개를 숙인 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동해선철로 바깥에 쳐진 철조망을 끼고 20여분을 똑 바로 걸어 10시쯤 동해역에 땋았다. 역 맞은 편 편의점에서 군것질 하며 20여분을 쉬었다. 역 광장 대형화분의 붉고 노란 꽃들이 가을햇살을 받아 유난히 화사했다.
우리는 철로 옆으로 난 길을 40여분 걸어 한섬해변에 도착했다. 철로와 해변 모래밭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계속됐다. 해변의 나무 데크 길 중간쯤 있는 사각형 프레임 여러 개를 나선형으로 비틀어 세운 구간을 통과했다. 또 거기엔 ‘제임스본드 섬’이라고 표지된 입간판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까운 천곡마을앞 하대암이 007시리즈 영화에서 제임스본드가 출연했던 태국 푸켓의 바위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란다. 또 촛대를 닮아 촛대바위라고도 했단다.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마음이니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도 그 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려고 옆의 여자행인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사진에는 엉뚱한 망망대해 수평선만 찍혔다. 해변을 나와 소나무가 무성한 한섬언덕길을 올랐다. 언덕아래의 몽돌해변은 가보지 못 했다. 지나온 해변과 그 너머 하대암쪽 산이 무척 아름답다. 그리고 이 언덕엔 민족분단이 빚은 슬픈 상흔 하나가 보존돼 있었다. 1968년 발생한 울진삼척 북한무장공비 침투사건 후 철통처럼 둘러쳤던 해안철조망 일부를 안보교육을 위해 그대로 보존한 것. 해안철조망 대부분은 2021년6월에 철거됐다는 안내판이 함께 서있었다. 당시 나는 대학진학을 눈앞에 둔 꿈 많던 청년이었다. 조금 떨어진 북쪽 고불개해변엔 해안절벽과 그 앞 바위섬 사이에 선 높다란 바위기둥 하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동해선옆 해안도로를 따라 묵호항으로 갔다. 거기엔 선박인양도 가능한 대형 해상 크레인이 있었다. 묵호역 뒤쪽에 있는 포인트에서 34구간 시작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근처 삼겹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표준말을 사용하는 상냥한 여주인이 혼자 일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정갈한 음식솜씨가 입맛을 돋우었다. 시원한 반주 곁들여 푸짐하게 먹었다. 말없이 고기를 손질하던 남자사장은 무뚝뚝해 보였지만 집안얘기까지 들려주었다. 고향이 제주도 애월인데 어려서 고향을 떠나 잘 몰랐던 집안비사였다. 보훈처의 통보를 받고서야 자신의 할아버지가 애국지사임을 알았단다. 그래서 지금은 보훈처로부터 애국지사자손지원도 받는단다. 부인은 경기도 화성출신.
오후1시반쯤 음식점앞에서 기념촬영 하고 걷기 시작했다. 해안가 일출로 옆 건조대에 가오리, 오징어 등 수많은 생선들이 매달려 있었다. 20분쯤을 가니 길은 가파른 언덕으로 이어졌다. 바닥과 길옆 담장엔 등대오름길이라 적혀있었다. 우리는 산동네 골목길을 걸어 약10분만에 묵호등대앞 광장에 도착달했다. 도중에 본 입간판에 적힌 시 한편이 가슴에 뜨겁게 와 닿는다. 바닷가 사람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읊은 글이었다.
“바람의 언덕
바람앞에 내어준 삶 //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 다시 묵호언덕으로 불어와
꾸들 꾸들 오징어와 명태를 말린다 // 남은 이들을 살려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하얀 등대는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건물에서 높이 솟아 동해를 지키고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과연 ‘天下一景’이라 할만 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셋이 기념촬영을 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주민이 알려준 샛길로 내려오니 넓은 길이 나왔다. 하늘엔 굵은 줄에 매달려 자전거를 타는 시설이 있고 그 아래를 지나 내려오는 길바닥엔 ‘스카이 밸리’ 라는 영문자 외에 ‘동해도째비골’도 병기돼 있었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사투리. 하늘에서 줄에 달려 자전거 타니 도깨비일 것 같다. 해안가 조그만 공원엔 문어조형물이 있었다. 또 그 옆엔 동해시에서 세운 커다란 돌비석도 있었다. 비석엔 ‘이곳 까막바위가 서울 숭례문의 정동쪽임을 국립지리원이 공인했다’고 음각돼 있다. 북위 37도 33분이란다. 비석 옆엔 검은 직사각형 비석이 있고 공원 바로 옆 바다엔 광개토대왕비를 닮은 길쭉한 바위가 서있었다. 어느 것이 까막바위인지 확인을 못한 체 그곳을 떠났다.
어달해변을 지나 한참을 더 가니 망상해수욕장이 4.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있었다. 까막바위 비석에서 30분쯤 걸었다. 대진항 입구를 지나니 길가에 붉은 벽돌담장이 길게 이어졌다. 또 그 담장위엔 요즘 거의 사라진 둥글게 감은 촘촘한 방범철조망이 담장 끝까지 처져있어 주요군사시설인 듯싶었다. 그 담장이 끝난 곳에 서울대학교 동해해양연구센터 3층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주변 공터엔 잡초만 무성했다.
연구센터 근처의 해물금교를 건너 큰길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가 망상해변으로 향했다. 철이 지나 텅 빈 해수욕장옆 넓은 솔밭 공터엔 주인을 기다리는 고급 캠핑 캐러밴들만 가득 주차돼 있었다. 우리도 긴 해수욕장 모래밭을 따라 난 길을 걸으며 기념촬영 하고 오토캠핑리조트 입구에서 다시 동해대로로 나갔다.
우리는 오른쪽의 동해선철로와 왼쪽의 동해대로 사이에 난 자전거와 보행 겸용도로를 한 시간 가량 앞만 보고 걸었다. 해수욕장 가까운 곳에 규모가 굉장히 큰 ‘망상 한옥촌’이 있었지만 그 외엔 특별한 시설이나 경관은 없었다. 우리는 똑 바로 뻗은 길만 묵묵히 걸었다. 길가의 한국여성수련원 안내표지판에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광포교를 건너니 소나무들이 멋지게 자란 금진솔밭이 나왔다.
그 솔밭 숲길을 걸어가 5시10분쯤 한국여성수련원 앞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인 34구간 종점이자 다음 달에 걸을 35구간의 시발점이다. 오늘 우리는 만보기 기준으로 43,900걸음에 약 33km. 우리는 한국여성수련원 입구로 나가 택시를 불렀다. 한적한 어촌인지라 몇 차례의 노력 끝에 힘겹게 성공해 정동진으로 갔다. 역 부근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7시21분에 출발하는 KTX열차를 탔다. 이번 여정에서 걸은 총거리는 GPS상 121km.
< 6차 걷기는 10월24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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