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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4차 B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7. 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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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 남기고 도해순국한 충절 기리고
월송정 누마루에서 솔밭과 바다 벗하다


◇ 영해 괴시마을∼울진 망양휴게소
< 2022년6월15일-16일 >


< 첫째 날 >
7시에 모텔을 나왔다. 어제 우리를 힘들게 했던 비바람은 그쳤지만 아주 약하게 보슬비는 내리고 있었다. 어제 밤 미리 부탁해두었던 김밥 집에 들려 김밥과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 때문에 개점시간을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앞당겨 준 여사장께 고마움을 표시하며 사흘째 걷기를 시작했다.


7번국도가 시가지 도로와 만나는 로터리에 우뚝 선 영해주민들의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에서는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기념비를 지나 10분쯤 가니 전통한옥이 잘 보존된 괴시 민속마을이었다. 고려의 충신 목은(牧隱) 이색선생기념관도 그 마을에 함께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담장 밖에서 한옥들만 일부 둘러보고 목은 기념관은 보지 못했다.


목은선생이 태어난 현재의 괴시(槐市)마을은 주변에 늪이 많아 원래는 호지촌(濠池村)으로 불렸다. 그러다 원나라에 다녀 온 목은선생이 마을의 시야가 원나라에서 머물렀던 괴시처럼 넓고 풍경이 어름다워 고쳤다고 전해진다. 괴시 마을은 현재 지방문화재와 고가옥 등 30여 호가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이자 전통문화마을이다. 길가마을엔 밤꽃이 만발했고 널따란 들판 너머의 산머리엔 흰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대진해수욕장으로 가는 2차선 도로가엔 낙락장송 소나무 두어 그루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드랍게 내리던 보슬비도 멎었다. 길은 대진항에서 영덕대게로와 합쳐졌다.


북쪽의 대진해수욕장으로 가다보니 높고 널따란 단위에 붉은 비각이 바다를 향해 서있었다. 산수암(汕水巖)이라 붉게 새겨진 이 곳은 망국의 한을 한편의 절명시에 남기고 자결한 김도현선생을 기리는 도해순국비각(蹈海殉國碑閣)이다. 좌우 두 비석 중 오른쪽 비석엔 ‘조선의사 벽산 김도현 도해단’이라고 한자로 적혀있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다는 뜻의 도해(蹈海)란 고결한 지조와 절개를 지킴을 말한다.


1852년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895년부터 영양, 안동, 강원도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의병해산령 후 중단했었다. 그러나 고종의 밀지를 받아 다시 활동했지만 붙잡혀 6개월 옥고를 겪었다. 그 후 선생은 후진양성을 위해 교육사업을 하시다 부친상을 치른 후 1914년11월 이 곳에 와서 영결시 한 수를 남기고 자결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현재의 비석은 1915년에 세운 첫 번째 비를 일제가 부숴 바다에 버린 바람에 1954년에 복구한 것이다. 한 맺힌 선생의 충절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파도는 오늘도 쉴 새 없이 철썩인다.

 


비각을 지나10분쯤 걸으니 대진해수욕장이었다. 인적 없는 해변모래밭에 밀려드는 하얀 파도를 보며 고래불대교를 지났다. 해수욕장으로 흘러드는 넓은 개천에 놓인 다리다. 왕복4차선 도로 이름도 이 구간은 ‘고래불로’다. 오른쪽에 펼쳐진 울창한 송림 사이로 난 길은 고래불 국민야영장으로 이어진다. 울타리가 쳐진 드넓은 야영장 솔밭에 설치된 카라반, 평상 등 각종 유료시설은 휴가철이 아니어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야영장 북단 주차장 옆의 멋진 정자 봉송정(奉松亭)도 금줄이 쳐져있었다. 주차장 빈 벤치에서 간식과 음료를 들며 쉬었다. 찌푸렸던 하늘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해안갯벌에 무성하게 자란 검푸른 갈대들이 그 너머로 하얗게 밀려드는 높은 파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고래불로 건너 반대편엔 경상북도 수산자원연구원 검은 건물이 해양입국을 선도하려는 듯 위엄 있게 보였다. 해파랑길은 대로를 벗어나 바닷가 해양산책로로 이어졌다. 울창한 송림과 맑은 개천을 끼고 가는 멋진 나무 데크 로드였다. 동해의 하얀 파도도 멋진 장단을 맞춰주었다. 길 위에 선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 맘껏 취해서 걸었다.


그렇게 걸어 우리는 영덕군 병곡면 사무소가 있는 고래불해수욕장에 도착, 블루로드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면사무소에 들려 확인증과 함께 받은 기념 엠블럼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때가 오전11시였다. 사진을 찍어준 젊고 상냥한 여직원의 배웅인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고래불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었다. 고래꼬리가 거대한 아치를 이룬 고래불해수욕장앞 고래조형물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길은 2차선으로 바뀌었고 길가의 이정표엔 울진군 평해를 10km 앞둔 ‘7번국도’ 라고 표기돼 있었다. 도중의 정자에서 쉬며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돌과 모래도 뺐다. 길은 다시 해안 모래 길로 이어졌다. 그 길가엔 4∼5년쯤 된 어린 해송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날아와 자랐는지 모를 새빨간 접시꽃나무 한 그루가 그들 사이에서 꽃 네 송이를 피우고 있어 이채로웠다. 연약한 풀이지만 새빨간 꽃들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래불 해수욕장을 떠난 지 거의 2시간20분쯤 지났다. 우리들은 어느 새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후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북쪽에 후포항도 보인다. 도로와 해안을 오가며 걷노라니 ‘왕피천 피라미축제’를 알리는 길다란 현수막이 우리를 반긴다. 그런데 그 축제날짜가 우리들이 즐길 수 없는 사흘 후여서 아쉬웠다. 20분쯤 더 걸어 후포항 어시장에 도착했다. 후포수산협동조합의 날씬한 최신형 2층 건물이 눈길을 끈다. 근처의 포스트에서 24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이때가 점심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오후1시40분. 맛있는 식사가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우리들은 너무 비싸 쉽게 엄두를 못 내고 망설였던 대게잔치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아무리 비싸도 대게의 고장 영덕과 울진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는 법. 일행 중 바다 가까운 곳에서 자란 사람이 몇 곳의 가게를 드나들며 조건이 좋은 한 집을 선택했다. 이달부터 대게 금어기가 시작돼 수조에 있는 대게는 대부분이 러시아산이란다. 간 혹 몇 마리 남아있는 동해산 대게는 그야말로 금값이라 포기해야 했다. 음식점의 전망 좋은 2층 방에서 먹기 좋게 손질된 푸짐한 대게를 맛있게 먹고 게 껍질엔 밥까지 볶아서 먹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여자 사장님은 친절했다. 이 잔치를 위해 조금씩 아껴 둔 비용을 탕진했다. 호박씨 까서 한 입에 털어 넣은 격이었지만 결코 후회기 되지 않았다.


느긋하게 앉아 한 시간 반에 걸쳐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다시 길에 올랐다. 길은 야트막한 등기산 언덕의 긴 계단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4반세기전인 1997년10월부터 반년 가까이 방영된 인기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란다. 후포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언덕 위는 후포 등기산 등대공원이다.


높이11m의 등대전망대를 비롯한 각종 조형물과 신석기 유적관, 전망이 좋은 남호정, 바다위로 깊숙이 벋어나간 스카이 워크가 자랑거리다. 스카이 워크 끝 둥근 전망대엔 인어와 물고기 등이 매달린 나선형 조형물이 하늘로 솟아 있어 관광객들의 촬영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 스카이 워크 전망대는 먼 곳에서도 잘 보였다.


공원을 지나 우리는 포장된 해안도로를 걸었다. 길가에 핀 빨간 접시꽃들이 지친 우리들을 위로해 주었다. 호안도로 방파제 안쪽에는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 ‘Marine Pia 울진’이란 표어가 예쁘장하게 씌어 있었다. 평해읍 거일리 바닷가에는 울진대게비가 있었다. 대게가 두 앞발을 하늘로 쳐든 대형조형물이었다. 대게는 똑 같지만 잡힌 지역에 따라 성씨(姓氏)가 달라지는가 보다. 도로 옆에는 대게 모형을 매단 긴 막대기들이 전신주처럼 길게 이어져 서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종일 흐렸고 바람도 상당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흰 부채처럼 흩어진다.


‘울진대게’비를 지나 한 시간여 만에 월송정 근처의 개천에 놓인 월송정교를 건넜다. 주변 해안의 소나무밭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길, 잘 정비된 배수로 등은 정말 운치가 있는 멋진 풍광이었다. 안내판엔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을 아우르는 이 일대가 ‘지리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해안 사구습지’라 했다.


흐린 날씨 탓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越松亭)에 올랐다. 月松亭으로 표기된 문헌도 있다. 정자의 건축연대나 건축자에 대한 기록도 여러 개 전해지고 있지만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원래의 월송정은 현재의 위치에서 남서쪽 480m 지점에 있었지만 없어져 1980년에 이곳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은 월송정(越松亭)이란 이름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정자의 누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백사장 풍광은 넋을 놓고 쳐다보게 만든다. 월송정 근처 마을은 고려 말에 충절을 지킨 대제학 이행선생이 이곳에 올 때마다 달 밝은 밤이면 소를 타고 놀았다는 곳이다. 근처의 길 이름도 이행선생의 호 기우자(騎牛子)에서 따왔다.


흐린 날이어서 해가 지자 금방 깜깜해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예약해 둔 모텔주인에게 전화로 물어 소개받은 구산해수욕장앞 음식점에서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한 잔의 반주도 곁들여 원행에 지친 몸을 달랬다. 음식점을 나오니 낮엔 오지 않았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받고 모텔로 가 걷기를 마쳤다. 이날도 34km를 걸었다.


< 둘째 날 >


4차 걷기 마지막 날 아침식사는 모텔 방에서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간밤에 모텔 여사장이 주변엔 아침식사 되는 곳이 없으니 라면으로 하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활짝 개었고 바다를 스쳐오는 해안의 아침공기는 가슴속까지 상쾌하게 했다. 7시부터 걷기 시작했다. 구산항 마당엔 피라미드를 닮은 자그마한 울진대게 유래비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내 키보다 큰 문어조형물도 함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는 커다란 바위로 만든 독도모형과 나무로 만든 거북선 모형도 있었다. 거북선 옆에는 죽변항과 울릉도, 독도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지도도 있었다. 그리고 큰 길 건너 맞은 편 산 아래엔 ‘대풍헌’이란 네 칸짜리 예쁜 기와집도 있었다.


글재주가 없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동해의 멋진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래서 파란 바다와 푸른 솔밭을 바라보며 마냥 걸었다. 4차선으로 화장돼 이전한 새7번 국도와 나란히 가는 옛7번 국도로 걸었다. 이정표엔 이곳 지명인 ‘기성로’라고 적혀있었다. 개천에 놓인 다리도 기성교였다. 기성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해파랑길 25번 코스를 시작하는 스탬프를 찍고 걸었다. 그런데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바닷가 해안이나 산길과는 판이하게 넓은 들판 가운데를 통과했다. 모내기를 끝낸 논 가운데로 끝이 안 보일만큼 똑 바로 뻗은 들길이어서 오히려 이상했다. 그런 들판 길을 20분쯤 걷고 나니 높지 않은 고갯길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와 만났다.


완만한 경사의 고개도 몇 개 넘었고 평탄한 길도 걸었다. 자전거로 고성까지 국토종주를 하는 동해안 자전거길 안내판도 함께 서있었다. 기성을 출발한 후 한 시간 만에 길가의 슈퍼에서 빙과와 초코파이 등을 사서 간식을 했다. 탁자가 마련돼 있어 한참을 쉬었다. 그런데 가게 이름이 특이하게도 꼭지였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여주인이 딸부자 집 막내일까? 한참을 쉰 후 망양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오전에만 걷고 서울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망양휴게소 근처에서 걷기를 멈추고 택시나 버스로 울진읍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야한다.


한참을 쉬고 나서 우리들은 망양휴게소를 목표삼아 걸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상쾌했다. 지난 3차 걷기 때는 모두가 고생했던 발의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하늘과 바다는 누가 더 파란지 서로 경쟁하는 듯 보였다. 그들 두 파란색 사이를 우리는 걷고 걸었다. 불어오는 해풍도 파란물이 들은 듯 시원했다. 그렇게 40여분을 걸어서 망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망양해수욕장은 운영을 멈추고 야영장으로 바뀐다는 현수막이 크게 걸러 있었다. 폐쇄된 해수욕장의 솔밭 길을 따라 10여분 가다 도로로 올라갔다.

 


길옆 상당히 높은 언덕에 날아갈 듯 날렵한 정자가 보였다. 5차례나 꺾어서 설치된 경사 급한 나무계단을 통해 한참이나 올라가야 닿는 곳이다. 계단 시작지점엔 ‘망양정 옛터’라 표기된 안내판이 있었다. 길옆 버스정거장 이름도 ‘망양정옛터’였다. 그렇다면 언덕위의 저 정자는 무엇인가? 자료를 찾아보니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지만 여러 차례 중건과 멸실을 거듭한 끝에 2005년에 마지막으로 주춧돌 등 옛 것을 완전히 허물고 현재 위치에 신축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자엔 올라가지 않고 지나쳐 걸었다. 길옆에는 기다란 ‘U’자 모양의 파이프를 거꾸로 세워 가운데 오징어 모형을 붙인 것들이 끝없이 이어 서있었다. 어제는 대게 모형을 붙인 막대기들이 전신주처럼 서있는 길을 지나왔었는데….


그렇게 10여분을 걸어 망양황금대게공원에 도착했다. 공원바닥에 설치된 커다란 대게 모형이 엉금엉금 기어올 것처럼 느껴졌다. 가는 곳마다 대게비, 대게공원, 대게마을이다. 그 공원에서 20분을 더 걸어가 망양휴게소에 도착했다. 오전11시35분이었다. 이번 걷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오늘은 20km만 걸었다. 이로써 지난3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약400km를 걸었다. 남은 여정은 이보다 짧은 350km쯤 된다.


택시를 불렀더니 금방 왔다. 망양정휴게소는 휴게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전망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맑은 날 휴게소2층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만경창파와 좌우로 펼쳐지는 해안 절벽과 그 아래의 백사장은 절경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서울행 버스 출발시간 때문에 택시를 타고 울진 시외버스터미널로 달려 12시에 도착했다. 터미널의 기사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먹고 1시10분 서울행 버스를 탔다. 도중에 차창 너머로 지난번 울진 산불 때 불탄 산 일부가 벌겋게 다가와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우리들은 오후5시 동서울터미널에 내렸다.


그런데 이번 걷기엔 한 가지 특기할 일이 있었다. 울진터미널 기사식당에서 벌금을 문 일이다. 흉내만 낸 뷔페식 음식점인데 담아 온 음식 일부를 남겼다고 무조건 1000원을 더 내란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벽에 그렇게 경고장이 붙어 있었기에 나와 또 다른 일행 한 분은 웃으며 벌금을 물었다. 남긴 음식은 너무 짜서 거의 소태맛이었지만 음식을 중하게 여기라는 주인의 취지는 나무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허허!


< 5차 걷기는 9월19일부터 22일까지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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