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해파랑길을 걷다 - 6차 B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11. 6. 17:13

본문


찬란한 일출 보면서 피로 잊고
38선 지나올 땐 통일염원 다져


< 2022년10월24일-27일 >
◇ 강릉 안목항∼양양 수산항
< 셋째 날 >


멋진 일출모습을 보려는 우리들의 소망은 셋째 날 아침에 이루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밝고 붉은 하늘이 동창 밖에서 우리를 불러내고 있었다. 모텔 바로 앞 안목항 방파제 끝까지 나가 붉게 솟는 아침 해의 장엄함을 실컷 보고 즐기고 카메라에 담았다. 600여km를 오는 동안 처음 맞는 장엄하기까지 한 일출 순간이었다.


하늘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해가 하늘높이 솟은 후에야 식당에 가서 뜨끈한 국물이 있는 아침식사를 즐겼다. 이틀간의 빗속여행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했다. 커피 거리의 수많은 카페들 유혹을 돌보듯 하며 지나쳤다. 안목해변과 송정해변의 울창한 소나무숲길과 백사장, 그리고 새파란 바다와 맑은 하늘, 오른쪽 어깨에 따사로이 쏟아지는 햇살의 축복을 온 몸으로 느끼며 새털처럼 가볍게 걸었다.


50여 분만에 우리는 경포호수물이 흐르는 경포천이 바다와 만나는 강문해변에 도착했다. 하늘 높이 반원을 그리며 솟은 하얀 아치형 현수교를 건너니 바로 경포해수욕장과 이어진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들끓었던 곳이지만 길가의 대형 안내입간판만이 해수욕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잘 정비된 경포호 호반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호수옆 해변에 웅장하게 들어선 쌍둥이 건물 스카이베이 호텔이 거꾸로 비치는 잔잔한 호수면 위로 한 무리 백조 떼가 비상하는 모습은 그림 같았다. 경포호는 옛날엔 바다 쪽 입구가 모래에 막힌 석호였었다. 원래 12km쯤 되었던 둘레도 지금은 4.3km로 줄었다.


호반산책로엔 경포의 달 등 각종 설화를 주제로 한 작은 조형물들이 일정한 거리로 연이어 설치돼 있었다.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벚나무 길도 호수둘레를 따라 돌고 있다. 호수남쪽 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도 관광명소다. 30분쯤을 더 가면 강릉3.1운동 기념탑공원도 있다. 호수 가운데엔 송시열이 쓴 '鳥岩(조암)'이 새겨진 바위도 있다. 경포대 가까이 있는 경포호 나루터엔 우리에게 익숙한 ‘사공의 노래’ 가사가 음각된 노래비도 있다.


우리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수의 조망을 감상했다. 강릉으로 간다는 노래 가사 속의 배는 보이지 않았다. 고려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경포대는 허물어져 고러 충숙왕13년(1326년)에 처음으로 이설했고 그 후 현재의 장소로 다시 이설됐지만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고 한다. 경포대로 오르는 길과 누각 안엔 숱한 한문시비(漢文詩碑)나 현액들이 있다. 그 중엔 율곡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도 누각에 결려있다.


‘내 눈과 임의 눈에 비치는 것까지 합하면 달이 8개가 된다’는 경포호수를 한 바퀴 돌고 해수욕장옆 공원에서 간식을 즐겼다. 해변의 각종 기념조형물도 길손의 눈길을 끌었다. 경포호반을 떠난 지 한 시간 반쯤 후 우리는 사천항과 연해있는 사천진 해변에 도착했다. 푸른 송림과 하얀 모래사장이 유달리 아름다운 사천해수욕장이 걷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우리는 사천해변의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휴식을 즐겼다. 항구북쪽 바위섬의 기묘한 바위들과 교문암이 관광객들을 사로잡는다. 이곳 출신 허균이 바위이름 교문암(蛟門岩)을 본따 호를 교산(蛟山)으로 했단다. 교문암은 바위아래에서 자던 교룡(뱀을 닮은 상상속 동물)이 바위를 깨뜨리고 나가 갈라진 모양이 문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연곡해변의 검푸른 파도를 즐기며 30분쯤을 더 가니 길가에 갈색기와를 얹은 원주대학교 부설 해양과학교육원이 가을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해양과학교육원에서 도보로 약30분 걸리는 연곡천까지는 해송들이 울창한 송림사이로 길이 계속된다. 연곡천에서 우리는 내륙 쪽으로 뚝방 길을 따라가다 영진교 다리를 건너 더 내륙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송림이 무성한 야트막한 언덕길도 지났다. 나무 아래엔 옛 시절 왜구침략에 맞선 토성이 있었다는 오석표지석도 있어 극심했던 왜구의 노략질을 상상할 수 있었다. 숲에서 영진항쪽으로 나오니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해변 북쪽 저 멀리 주문진항이 보였다. 오후1시가 지나고 있었다. 영진항에서 매운탕과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상호는 ‘세자매식당’이었지만 두 자매뿐이었고 서비스도 별로였다. 길은 계속 해안 모래밭을 끼고 이어진다. 영진항 북쪽 해변엔 연속극 ‘도깨비’ 촬영지임을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었다.


주문진항 주문진 수산물 좌판 풍물시장을 지나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길을 가파르게 올랐다. 하늘높이 솟은 하얀 주문진 등대가 우리를 맞는다. 눈이 모자라게 펼쳐지는 짙은 남빛바다가 발아래 펼쳐지고 지나온 해안 길과 포구들이 수고했다며 응원해 주는 듯하다. 옥색 하늘을 반쯤 가린 흰 구름도 등대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펼친 갈매기 조형물도 창공으로 비상할 준비를 마친 듯 했다. 오후4시쯤 등대를 내려오니 소돌항 아들바위공원이었다. 소가 드러누운 모양이어서 ‘소돌’이라 한다는 항구의 ‘소돌어촌 체험마을’ 기념관 앞에 있는 포장마차들은 자연산 생선회로 유명하다. 선장부인들이 그날 잡은 자연산 생선만 판다고 했지만 시간이 안 맞아 우리는 지나왔다.


아들바위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인 주문진해수욕장 기념조형물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배의 핸들인 키와 정박시키는 닻 모양의 조형물엔 ‘추억과 낭만이 있는 곳--’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좌대 앞쪽 하단에 작은 글씨로 ‘BTS앨범재킷 촬영장소는 240m 옆’이라고 적은 파란 표찰이 붙어있었다. 근처 버스 정거장에선 기념촬영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곳이 BTS의 앨범 촬영지였단다. 우리도 순서를 기다려 뒷사람에게 부탁해 촬영했지만 사진 상태가 나빴다. 근처에 있는 담수호수 향호수면에 비치는 저녁 해를 보며 가다 41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향호를 건너 지경해변 입구에 양양군임을 알리는 둥근 돌로 만든 이정표가 반긴다. 산 좋고 물 좋은 양양이란다. 동해안 북단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지경검문소가 있었던 부근이다. 이정표를 지나 해안을 따라 50분쯤 더 가니 남애항의 하얀 등대와 붉은 등대가 손짓한다. 6시가 다 된 시각. 이곳에서 셋째 날의 걷기를 마쳤다.


사전에 연락해 둔 음식점 해녀횟집으로 갔다. 이 음식점은 하루전날 내가 재직했던 회사동료 8명이 설악산 단풍관광 후 들렸던 곳이다. 건장하고 붙임성 끝내주는 남자사장은 지난날 끗발 좋은 부대에서 복무하다 10.26사태 후 전역했단다. 우리들과 비슷한 연령대여서 곧 바로 형님-아우 하면서 풍성한 서비스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주문한 별넙치회보다 서비스로 내준 복어회, 문어회 등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생선회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사장의 음주량도 엄청나 우리 넷이 마신 량의 30%는 그가 마셨을 것 같았다. 맛있는 죽과 매운탕까지 정말 푸짐하고 맛있고 신나게 먹고 마신 식사였다. 그리고 그 집에서 알선해 준 모텔로 사장부인이 운전해서 우리를 픽업해 주었다. 조용한 포구 남애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 넷째 날 >


여사장은 횟집이 문 여는 시간은 9시이지만 우리들의 요청에 따라 7시 반에 아침식사준비 해줄 테니 일찍 오라고 했다. 6시 반쯤 숙소에서 나와 남애 어시장으로 내려갔다. 싱싱한 생선들이 넓은 바닥에 펼쳐져 있고 둘러선 사람들이 값을 흥정하는 어시장 풍경이 나에겐 생소했다. 7시쯤 음식점에 도착하니 여사장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해안의 일미 섭조개 국으로 해장하고 해파랑길 걷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기념촬영도 했다. 길을 묻는 여자관광객들에겐 안내까지 해주고서 마지막 날 걷기를 시작했다. 남애항 해변에 설치된 ‘나는 남애 해변을 사랑한다.’는 대형 영문 안내판이 우리를 전송했다. 뜨끈한 섭국으로 속을 다스린 덕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북진을 시작했다. 구름 너머에서 아침 해가 붉게 비치고 있었다.


50분쯤을 걸어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에 있는 휴휴암에 들렸다. 1997년에 창건된 이 암자는 경치가 아주 좋은 데다 해안바위에서 1999년에 누운 관세음보살상 형상이 발견돼 기도처로 유명해졌다. 한자 休休庵 이름 그대로 일상의 근심걱정 모두 내려놓고 쉬고, 또 쉬라는 의미로 세운 곳이라고 했다. 암자 아래쪽 바위 가장자리의 발가락바위, 발바닥바위와 광어바위가 특이했다. 주변에 몰려드는 황어와 숭어 떼들이 구경거리라고 한다. 암자 앞 언덕에 선 대형불상 뒤편에서 불상에 가려진 아침 해가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휴휴암에서 30분쯤을 걸어 죽도에 도착했다. 높이53m인 언덕에 1965년 현남면의 유지들이 세운 죽도정은 전망이 매우 좋은 곳이지만 우리는 올라가지 않고 지나쳤다. 옛날엔 섬이었던 죽도는 울창한 소나무와 장죽이 유명하다. 특히 장죽은 화살용으로 매년 나라에 진상됐다고 한다. 죽도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42코스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20분쯤 간 곳엔 전투충혼비와 태국해군 참전기념비가 나란히 서있었다. 비석을 지나면서 길은 38선 휴게소까지 내륙의 조용한 산길로 이어졌다. 길섶에 핀 가을꽃 노란 들국화와 분홍 코스모스가 길손들을 반겨주었다.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예쁜 감들을 주렁주렁 매단 키 작은 감나무들도 가을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감들 중 하나가 네 갈래로 갈라진 특이한 모양이어서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가까운 38선 휴게소에 들려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 느닷없이 그어진 보이지도 않는 이 선이 해방의 기쁨을 앗아간 건 물론이고 혹독한 동족상잔까지 몰고 올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6.25전쟁으로 지금은 사라진 이 38선표지판 앞에서 함께 기념촬영하며 통일의 염원을 다시 한 번 다지고 걸었다. 도중에 넘은 만세고개엔 이름 모를 돌비석들 여러 개가 키 재기를 하듯 몰려있었다. 20여분쯤 더 걸어 하조대 해수욕장 남쪽 비석 앞에서 43코스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동해에서 가장 일출이 아름답다는 하조대엔 오르지 않았지만 파란 해변의 물결은 실컷 즐기며 걸었다. 비교적 조용한 곳으로 난 자전거 전용도로가 4차선 7번국도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특히 동호해변 근처에서 해안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송림들의 아름다움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구간엔 이런 잔잔한 자연의 절경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걷고 또 걸어 오후1시 조금 지나 이번 여정의 종점 수산항에 도착했다. 항구 앞에 가로로 놓인 아치형 현수교 중간에 돛 모양으로 높이 서있는 지주가 무척 멋있게 보였다.


우리는 약간의 혼선을 겪은 후 항구와 조금 떨어진 대로의 버스정거장에서 44구간 스탬프를 찍으며 4일간의 도보여행을 마쳤다. 바로 옆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선사한 시원한 배를 먹으며 택시를 불렀다. 감로수가 이런 맛이 아닐까? 곧 이어 도착한 택시는 넓은 길을 바람처럼 달려 순식간에 우리들을 양양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주었다. 시간표를 보니 서울행 버스출발 시간이 20여분밖에 안 남았다. 터미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등을 사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점심을 대신하고 버스에 올랐다. 서울이 가까운 경춘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 에정보다 30분쯤 늦은 4시50분에 동서울터미널에 내렸다.


< 해파랑길
장정을 마무리 할 다음 걷기는 11월16일 -19일에 계속 됩니다. >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을 걷다 7차-B  (0) 2022.11.27
해파랑길을 걷다 7차-A  (0) 2022.11.27
해파랑길을 걷다 - 6차 A  (1) 2022.11.06
해파랑길을 걷다-5차 B  (1) 2022.10.06
해파랑길을 걷다-5차 A  (0) 2022.09.3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