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져 폐선된 동해북부선 철교에서
못가는 북녘길에 아쉬움만 남기고와
< 셋째 날 >
새벽에 창문으로 내다본 동쪽 하늘엔 벌써 붉은 해가 구름위로 솟아 있었다. 날씨는 이날도 활짝 개었다. 펜션 사장의 배려로 다시 안채에서 함께 아침식사 후 그의 승용차에 타고 통일안보공원으로 달렸다. 어제 걷기를 중단한 북천교 북단에서 통일전망대까지 티맵 기준으로 32km쯤 된다고 한다. 그러나 최북단의 제진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약7km는 도보여행 금지구간이라 승용차로만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통일안보공원에서 통일전망대 출입신고 후 50구간 시작 스탬프를 찍고 통일전망대에 들어가 둘러본 후 안보공원으로 되돌아 나와 거기서부터 북천철교까지 걷기로 했다. 우리는 통일안보공원에 들려 통일전망대 출입신청서를 제출하고 간단한 안보영상도 시청했다. 이어 50구간 시작 스탬프 찍은 후 승용차로 제진검문소에 가서 통일전망대 차량출입증을 받았다.
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차창너머로 좌우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달렸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해파랑길 종점 확인 스탬프부터 찍었다. 이 스탬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었다. 해파랑길 총거리는 지도나 안내서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부산의 오륙도앞에서 약750km 북상한 해파랑길 종점에서 의미 있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날렵하게 지어진 전망대 맨 위층에 올라가 창문밖 바로 앞에 보이는 들판 너머의 금강산 낙타봉과 해변 명사십리, 그 뒤의 해금강을 바라보았다. 뭔가 모를 안타까움과 가슴 먹먹함을 느끼면서 쳐다만 보았다. 금강산의 동쪽 자락 나무가 없는 돌산 낙타봉의 세 봉우리가 남쪽을 향하고 있다. 남쪽에서 개설한 도로의 하얀 가로등 전신주들이 길과 함께 북으로 달리다 돌산 가까이서 멈췄다. 거기서부터 가로등 없는 북쪽의 도로로 길이 이어져 있다. 아마도 그 부근이 DMZ 중앙군사분계선 이리라. 남쪽의 도로 오른쪽에는 단선 철로도 조금 보였다. 언제 이 도로와 철로를 마음대로 오갈 수가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10시30분쯤 다시 통일안보공원으로 남하했다. 거기서 차는 먼저 보내고 남쪽을 향해 걸었다. 해파랑길49구간이다. 지금까지 해를 등지고 걸었지만 이날은 마주보며 걸으려니 눈이 부셨다. 30분쯤 내려오니 마차진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졌다. 해변 남쪽 언덕의 하얀 대진등대가 무척 외롭게 느껴진다. 등대옆 언덕길에서 동해의 창파를 벗하며 대진항으로 걸었다.
컬러로 단장된 방파제 위에 세운 아트모양의 빨간 사진촬영대와 그 옆 대진해수욕장의 검고 붉은 안내글자들이 파란 하늘과 바다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휴전선 이남의 최북단 대진항은 어로저지선 부근의 어로작업을 관리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밝은 햇살아래 가오리, 오징어들을 건조대에 걸어서 말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대진항 입구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과 해상 데크 로드, 컬러 채색된 테트라 포트들을 보면서 남하를 계속했다. 이정표를 보니 통한의 분계선인 통일전망대까지 불과 4.7km였다.
이정표에서 10분쯤 가니 초도항 공원 조형물이 커다란 성게를 이고 우리를 반긴다. 옆에는 고성군이 세운 높다란 돌비석엔 ‘관동별곡 팔백리 답사일번지 高城’이 새겨져 있었다. 공원 앞 좁은 수로에 놓인 금구교는 바다와 화진포를 이어준다. 다리를 건너 화진포 호반길을 걸었다. 화진포 호반 전체 거리는 16km나 된다. 호수 주변 산들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정말 장관이다. 동호와 서호로 이어진 화진포도 역시 해안의 모래언덕 때문에 물이 막혀 생긴 동해안 최대의 석호(潟湖)다.
화진포 호반 길을 30분쯤 걸어 김일성별장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옆 정자에서 간식을 챙겨 먹으며 쉬었다. 근처에는 이승만대통령 별장, 이기봉별장도 있지만 우리는 김일성 별장이 있는 응봉으로 올랐다. 김일성별장은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의 외국인 휴양소를 강제 이주시키는 바람에 생긴 별장이다. 셔우드 선교사 부부가 독일에서 망명한 건축가 베버에게 부탁해 1938년에 건축했다. 당초엔 화진포의 성으로 불렸던 이 건물을 해방 후 한때 김일성 일가가 별장으로 사용해 김일성별장으로 불리게 됐단다. 2015년12월엔 싱가포르 리센릉총리 부부도 이 별장과 응봉을 다녀가 더 유명해졌다.
바다를 끼고 거진항으로 이어지는 응봉의 울창한 송림 길은 전망이 아주 좋은 ‘강원도 명품길’이지만 ‘화진포 해맞이 산소길’이란 안내판도 있었다. 이 응봉 일대는 ‘거진 해맞이봉·화진포 소나무숲 산림욕장’이기도 하다. 김일성별장을 지나 40여분 솔향기 가득한 숲길을 걸어 정상에 섰다. 해발 높이는 겨우 122m이지만 눈 아래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화진포 전경과 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는 절경이디. 마침 부부 여행객이 있어 서로 기념촬영 해주며 덕담을 나누다 남과 북으로 헤어졌다.
경사가 완만해 하산길도 절경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길가엔 언제 쌓았는지 모르지만 내 키를 넘는 돌무더기 성황당도 있었다. 길은 도중에 바다가 안 보이는 곳으로도 40분쯤 이어졌지만 다시 바닷가 해맞이 봉으로 나오니 12지신 석상들이 원을 이루고 서있었다. 근처에는 커다란 해맞이봉 표지석과 원두막 모양의 높은 전망대, 하얀등대도 있었다. 등대를 자니 가파른 길을 5분쯤 내려오니 거진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낙랑장송 뒤로 펼쳐지는 항구의 멋진 전경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한참이나 붙잡았다. 오후2시를 지난 한낮의 해가 바다에 하얀 그림자를 길게 펼치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란 말밖에 더 표현 할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
거진항으로 내려와 30분쯤 걷다가 아기를 안고 가는 부인에게 물어 찾은 음식점은 정말 일미였다. 그 부인이 남편과 함께 경영하는 집이었는데 모듬 생선찜과 구이, 된장국이 피곤한 길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 점심은 이번 걷기일정뿐 아니라 3월부터 시작된 약 이천리길 걷기의 마지막 점심이기도 했다. 한 시간 넘게 반주 곁들인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사장 부친의 따뜻한 전송을 받으며 3시30분쯤 다시 길로 나섰다. 음식점 앞 건조대에 걸린 가오리들도 우리를 환송하는 듯 했다. 어제 걷기를 중단했던 북천철교 북단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해파랑길은 거진항 남쪽 해오름해변길을 거쳐 바닷가 모래밭과 도로 사이의 자전거 겸용도로로 이어졌다. 그런데 평탄한 길이 갑자기 통행금지 테이프로 막혔다. 식당을 나선지 40분쯤 됐을 때다. 아마도 지난여름 태풍에 유실된 모양이다. 키보다 높은 해변도로의 사면을 타고 어렵게 도로로 올라가 조금 가니 반암해변에서 다시 자전거 겸용길이 나왔다.
무성한 소나무 방풍림이 길게 이어지는 똑 바른 길이 계속됐다. 오른쪽엔 반암리 들판 너머로 서산머리에 걸린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다. 그렇게 30여분을 가니 북천 제방에 닿았다. 북천 건너편엔 어제 봤던 풍력발전기를 닮은 기둥들이 보였다. 이정표를 보니 북천철교까지 1.6km 남았다. 우리는 90도로 우회전하는 제방 위를 걸어 5시5분쯤 철교북단에 도착, ‘해파랑길 완보’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우리는 만보기 기준 약32,000걸음 22km를 걸었다.
들판 길을 조금 걸어가니 어제 저녁 우리를 픽업했던 펜션 사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다 우리를 태워 숙소가 있는 공현진의 음식점으로 갔다. 그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 있어서 가고 우리들 넷만 푸짐한 생선회로 대장정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오니 사장이 조촐한 음식과 함께 고급술까지 한 병 갖고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먹고 마시며 사우애를 더욱 다졌다.
< 넷째 날 >
아침 일찍 잠이 깼다. 구름이 끼어 기대했던 장엄한 옵바위 일출은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구름 너머에서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해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 바다로 약간 벋어나가 우뚝 솟은 두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공현진 옵바위 일출은 우리나라 10대 일출명소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기념촬영을 하고 어제 저녁을 먹은 음식점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와 사장의 승용차에 타고 속초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10시10분에 출발한 프리미엄고속버스는 아주 안락하게 우리를 2시간10분만에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려주었다. 터미널 뒤쪽 삼겹살집에서 점심식사를 겸한 해단식을 진하게 했다.
< 에필로그 >
지난 3월21일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출발, 춘풍추우와 강력한 태풍도 무릅쓰고 동해안을 따라 걸었습니다. 매월 3박4일씩 7차례에 걸쳐 지도상의 공식거리 750km, 장장 이 천리 가까운 대장정이었습니다. 바닷가 고운 모래밭도 걸었고, 깎아지른 듯 한 해안절벽 길도 지났습니다. 주먹만 한 거친 돌들만 계속되는 해안도 걸었고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의 산길도 이틀이나 계속 비를 맞으며 걷기도 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등 국가의 주요시설이나 산업단지, 대규모 공장을 만나면 멀리 돌아오기도 했고요.
그 여정에서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이 확실히 금수강산(錦繡江山)임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선하고 인정이 많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살며 가꾸어 온 이 땅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 했고, 아끼고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망좋은 곳이라면 빠짐없이 고급스런 카페 건물들이 차지했고, 캠핑장들엔 고급 캐러반이나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 텐트(카 박)들이 넘치는 것도 봤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 하는 부국이 됐고 세계적 경제대국임을 느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제가 비록 70살을 훌쩍 넘긴 초로이지만 긴 도보여행을 통해 심신이 더욱 건강해졌음도 느꼈습니다. 그동안 고락을 함께 나눈 세 분의 도반(道伴)들과 음양으로 우리들의 도보여행을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정말 아쉬워 가슴이 먹먹해진 순간도 있었습니다.
통일전망대에 올라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북녘땅을 바라볼 때 그랬습니다.
합쳐야 할 땅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건만 갈 길 없어 애태웠던 여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더 싸우며 으르렁 거려야 하고, 얼마나 더 이런 안타까움을 참아야만 오가는 길이 열릴까요,
운다고, 소리친다고 열릴 수 있다면 내 맘껏 울어주고 소리쳐 주고 싶었던 분단 현장이었습니다.
< 大 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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