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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2차 B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2. 5. 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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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魂 깃든 대왕암, 자연의 걸작 주상절리

 


◇ 울산 덕하역∼포항 양포항
< 2022년4월18일-21일 >

< 셋째 날 >


오늘 걷기의 하이라이트는 경주 양남의 대규모 주상절리 구간이 될 것 같다. 아침 일찍 준비해 7시에 숙소에서 나와 아침식사를 하러갔다. 어제 걸어오면서 봐 둔 24시간 영업집이었다. 맛도 좋았고 값도 저렴해 과객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식사 후 어제 왔던 길을 조금 되짚어가니 네거리에서 해파랑길과 만났다. 큰 도로와 아파트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통해 동쪽으로 20여분쯤 가다 봉대산길로 들어갔다. 들머리의 커다란 안내판에 남목마성(南牧馬城)이라 적혀있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는 목장이 해안가나 섬 등 200여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 목장 둘레에 말이 도망가지 못하게 돌로 야트막하게 쌓은 것을 마성이라고 한다. 이 유적은 그 중의 하나로 17세기 중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 해파랑길 앱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서야 잘 못 든 길을 되돌아서 바른 길을 찾았다. 간밤에 푹 잔데다 이른 시간이라 힘들이 넘쳤었나 보다. 산길은 완만한 시멘트 포장길이어서 걷기 좋았다. 시원한 아침공기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30분쯤 가니 바다가 보이고 산 아래엔 현대미포조선소의 대형 골리앗 크레인 두 기가 주변 시설을 압도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돌로 쌓은 주전봉수대의 둥근 연대(煙臺)가 옛 모습대로 남아있었다. 어제 지나온 천내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유포봉수대로 전했다고 기록돼 있다. 높이 8m, 지름 5m나 되는 원통모양 연대에 올라가니 멀리까지 보였고 전망도 좋았다. 봉수대앞 봉호사 자리에 봉수꾼들의 숙소가 있었다 한다.

 


봉수대를 나오니 완만한 내리막길이 주전해변까지 계속됐다. 우거진 숲길과 가까이 보이는 푸른 바다가 잘 어우러진 운치 있는 길이었다. 바닷가 모래밭에다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해수욕장 옆에 있는 주전패밀리캠핑장 건물이 참 예쁘게 보였다. 하늘은 맑게 개어 파랬다. 주전마을엔 봉수대를 중심으로 7개의 마을에서 안녕을 비는 신당이 있었다. 또 그 중 세 마을은 둘로 나뉘어 제사를 드려 결국 10개의 신당에서 2005년까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로당을 신축해 위패를 한 곳에 모우면서 신당들은 없어졌다. 현재는 사라진 제당들 터에 표지석과 조형물들을 세워 기념하는 한편 아랫마을의 제당 터에다 네 개의 검은 돌기둥 조형물을 원둘레에 직각이 되게 세워 놓았다. 윗부분이 꼬부라지고 그 바로 아래 한 면이 크게 패인 특이한 모양인데 보는 각도에 따라 조형물 사이로 사라진 제당들의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거친 바다에서 잦은 해난사고를 겪으며 살아 온 어촌마을에 무속신앙이 많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해파랑길 외 강동누리길, 강동사랑길이란 이름도 함께 표기된 해안산책로를 따라가니 바닥이 격자모양으로 뚫려 바닷물 위를 지나는 철제산책로도 나왔다. 해변 모래길에 달팽이 모양 나선형 철제의자가 있어 기념사진도 찍었다. 강동사랑길 안내판 근처 길가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 현대그룹과 울산 북구청이 함께 조성한 ‘당사 현대차 오션캠프’가 있었다. 안내판에는 현대자동차 노·사와 울산 북구청이 합께 출자해 ‘바다 위에서 캠핑’을 주제로 조성했다고 씌어 있었다.


1km쯤 더 가니 우가산 중턱에 현대중공업이 1998년7월 조성한 강동축구장이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 대비한 국가대표팀 훈련장으로 만들었는데 월드컵 가간엔 터키 대표팀이 연습장으로 사용했다. 우리 대표팀의 연습장을 사용한 터키는 4강전에서 우리를 꺾는 아이러니를 연출했었다.

 


축구장을 지나 산길을 30분쯤 올라가니 땅바닥에서 두 줄기로 자란 두 그루 나무 곁에 ‘옹녀나무’란 엉뚱한 표지판이 서있었다. 또 거기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엔 비스듬히 누운 나무 곁에 ‘강쇠나무’ 표지판도 서있어 눈길을 끌었다. 옹녀와 강쇠가 어떻게 생겼기에 이 나무들에 그런 이름들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10여분 내려가 산길이 끝나는 곳에도 ‘무룡산강쇠도령’ ‘옥녀봉옹녀낭자’라고 쓴 두 개의 장승이 반팔간격 거리에 서있었다. 그들은 그냥 서있기만 할 뿐 영원히 못 만날 텐데 이를 어쩌나? 만나고 부딪쳐야 옹녀 든 강쇠 든 될 것 아닌가? 장승옆 안내판엔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문이 있었다. 물에 떠내려 온 옹기 속에서 나온 바다 공주를 집으로 데려갔던 강쇠가 결국 그 녀를 하늘로 보내야 할 때 야한 가사를 담은 노래를 지어서 서로 불렀단다.

 


길은 검은 갯바위가 많은 해변으로 이어졌다. 갯바위 위로 지나가는 나무 데크로드도 있었다. 길옆의 가로무늬 촘촘한 갯바위 위에다 지은 집도 있었고 갓 채취한 미역을 말리는 건조대들을 호안방파제에 기대 옆으로 길게 세워놓은 풍경도 많이 보았다. 우가산 장승을 떠난지 30여분 만에 정자항에 도착했다. 항구 입구 곽암(미역바위) 푯말 옆에서 10구역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곽암을 한자로는 < 藿, 巖>으로 썼는데 藿자의 훈을 '콩잎 곽'으로만 알았던 기자는 함께 걸었던 다른 동료에게 듣고 '미역 곽'이란 훈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정자해변은 부산의 광안리해변처럼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고층아파트들도 해변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4반세기전 내가 자주 본 모습은 간 데가 없었다. 오후1시쯤 항구의 중간쯤에 있는 깨끗한 식당에서 시원한 물회에 밥을 말아 허기를 해결했다.

 


식사 후 30분쯤 걸어가니 길가에 ‘강동 화암 주상절리’ 표지판이 보였다. 약 2000만년전 분출한 뜨거운 현무암용암이 식으면서 6각 또는 5각 기둥모양의 틈이 촘촘히 겹쳐 생겼다고 한다. 화암마을 앞의 이 절리는 동해안의 용암 주상절리중 제일 오래된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큰 바위 두 개 사이의 공터에 올라가 기념촬영도 하며 쉬었다. 이 커다란 바위의 꼭대기에서 소나무가 두 세 그루 자라고 있어 생명의 강인함과 경이로움을 새삼 느꼈다. 줄무늬가 있는 바위들이 켜켜이 모여 있어 경관도 좋아 30분쯤 머물렀다.


이어 3km쯤을 걸어 경상북도 도계를 지났다. 주탑을 높이 세운 이름 모를 예쁜 사장교가 놓인 개천을 건너가니 경주시 양남면 관성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변의 소나무 길을 걸어가니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거기엔 해병부대가 1983년8월5일 새벽 이 곳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5명을 사살했다는 전적비와 6.25참전유공자와 월남참전자 명예선양비가 우리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는 생뚱맞게 회색 재킷 상의에 예쁜 색깔의 스카프를 목에 두른 인어석상까지 있었다. 전투유공자와 인어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공원에서 10분쯤 떨어진 개천에는 우주선을 닮은 커다란 베이지색 덮개가 한 가운데 설치된 다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다리를 지나니 해파랑길과 겹치는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안내판이 서있다. 바로 그 유명한 경주 양남면 하서리 주상절리 구간이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표면에 생기는 5각이나 6각의 틈이 절리(節理)인데 이것이 길게 기둥모양으로 생긴 것을 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부른다. 주상절리는 여러 개가 모여 부채모양으로 펼쳐진 것, 바로 선 것, 누운 것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감탄을 자아낸다.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기기묘묘한 모양으로 느껴진다. 바닷가 절벽에도, 갯가에도, 물밑에서도 넓게 펼쳐져 그야말로 신비스럽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내려다보아도 장관이었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넋을 놓고 30여분동안 보고, 촬영하고 하다 자리를 떴다. 주상절리 구간 끝에 바닷물 위로 지나는 출렁다리가 있어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약40분쯤 걸어서 나아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서 국도로 나와 11번째 구역을 시작하는 스탬프를 찍었다. 시간은 오후5시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번 도보여행의 최대 난제와 직면했다. 나아해변과 문무대왕수중릉 사이에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어 해파랑길은 끊어진 상태다. 처음엔 길이 열렸다가 중간에 닫혔는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도보길이 없다. 안내책자에도 2.6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견대로 가라고 표시돼있다. 터널을 이용 안 하려면 내륙 깊숙이 돌아가는 더 먼 도로밖에 없단다. 길가 버스정거장에서 알아보니 시골 버스는 한 시간에 겨우 한 두 대뿐이란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택시를 불렀다. 그 택시로 터널을 지나 감은사지, 문무대왕릉, 이견대를 지나쳐 감포쪽으로 조금 올라간 도로변 펜션앞에 내렸다. 근처에 숙소는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에 여장을 풀고 조금 떨어진 바닷가 음식점까지 걸어가 저녁을 좀 푸짐하게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식사를 위해 라면과 햇반을 사들고 숙소로 가서 사흘째 걷기를 마쳤다. 이날도 우리는 43,400여보, 약30km를 걸었다.


< 넷째 날 >


해 뜨는 동해가 창밖에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방이었다. 기대를 걸고 일찍 일어났지만 아쉽게도 일출의 장관은 보지 못했다. 해님은 짙은 구름 뒤에서 겨우 자기 위치만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간밤에 사 온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 아침식사를 했다. 설거지까지 말끔히 한 후 나와 7시10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해파랑길은 숙소 앞 31번 국도와 함께 간다. 약 20분만에 감포읍 나정리 해변(요즘은 '고운 모래해변'으로 부른다고 함)에 도착했다. 해변의 몽돌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아름답다는 곳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 해변에 느닷없이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흘러간 유행가 제목이 검게 음각된 노래비가 커다랗게 서있어 의아했다. 이 노래의 작사자 정귀문씨가 이 자리에서 노랫말을 쎃기 때문에 이곳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 해변 개천에도 지나오면서 여러 번 본 것과 비슷한 '주탑이 높고 예쁜' 사장교가 놓여 있었다. 길은 평평한 해안모래밭을 따라 갈색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전촌리 해변공원엔 좌우로 펼친 활모양의 높다란 두 개의 대위에 나르는 말 조형물이 얹혀있었다.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는 모른다.


해안절벽을 따라 10분쯤 가니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구멍이 크게 뚫린 굴들이 보였다. 바다까지 바짝 다가온 절벽이다. 어떤 건 터널처럼 앞뒤가 터져 있고 어떤 건 동굴 같았다. 갯바위들 모양도 예사롭지가 않다. 경사가 심한 절벽에 설치된 나무계단으로 모래밭까지 내려가 온갖 모양의 동굴과 뻥 뚫린 굴을 볼 수가 있다. 계단 중간에 사룡굴 푯말이 크게 붙어있고 좀 떨어진 곳엔 단용굴 푯말도 있었다. 바닷물이 바위절벽에 새겨놓은 걸작들이다. 동굴도 찍고 우리들의 기념사진도 찍었다. 거기서 2km쯤 걸어 감포해변에 도착했다. 해변 모래밭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차와 연결해 텐트를 친 소위 ‘차박 캠핑’ 족도 보였다.


감포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바라보면 항구입구의 바다에 송대말등대가 있다. 암초들이 많은 감포해역의 선박안전을 위해 1955년6월 설치된 무인등대를 1964년12월 더 밝은 등명기를 설치하며 유인등대로 했다. 그 후 2001년2월 종합정비하며 감은사지3층석탑을 형상화해 현재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주변엔 기품이 넘치는 낙락장송들이 많아 경치가 좋다. 등대옆 해변 모래밭에선 아낙네들이 미역손질에 바쁜 모습들이다. 무성한 솔밭을 지나니 고아라 해변을 알리는 높은 안내판이 예술작품을 방불케 했다. 고아라 해변을 지나 약1시간30분쯤 가니 국도 옆 어느 집 담장에 붉은 해당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거기는 포항시 장기면 계사리였다.


국도의 이정표를 보니 구룡포가 18km 남았단다. 이정표가 나오게 기념촬영하고 5분쯤 더 가니 양포항으로 가라는 푯말이 있었다. 길 이름도 ‘호미반도해안둘레길’로 적혀있었다. 국도에서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와 해안 모래길을 걸어 양포항에 도착했다. 항구엔 10척의 배가 두 줄로 정박해있었다. 12시30분이었다.


항구의 공영주차장에서 구룡포까지 가는 13번째 구간 스탬프를 찍는 것으로 2차 걷기를 끝냈다. 이날 우리는 28,700여보, 20km쯤 걸었다. 주차장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모듬회와 매운탕으로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싱싱한 생선회를 갓 채취한 생미역과 상추에 싸서 먹으라고 여주인이 알려주었다. 80노모와 딸이 40년간 해 온 집이란다. 정말 값싸고 맛있었다. 식사 도중에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식사 후 10여분 떨어진 삼거리로 나가 버스를 탔다. 두 번을 더 갈아타며 1시간40분만에 KTX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 다음 걷기는 5월23일 양포항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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