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땅 사이를 누비다
◇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울산 덕하
< 2022년3월21일~24일 >
< 셋째 날 >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온 우리는 간밤의 식당여주인이 알려 준 식당골목 대신 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했다. 통화한 사장대신 할머니 혼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 메뉴는 정식 하나만 된단다. 생선반찬과 나물국, 누룽지가 제격이었다. 식사 후 콜택시를 불러 어제 택시를 탔던 월래항의 길천교로 되돌아가 걷기를 계속했다. 이날은 길이 해변을 벗어나 울산 서생면 내륙으로 이어졌다. 이 고장은 당도 높은 서생배의 집산지다. 그것을 반증하듯 길은 곳곳에 산재한 배 밭들 사이를 지나갔다. 낮은 산길도 지나고 농촌지역 마을도 지났다. 신암리 동구에 있는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는 보호수 곰솔은 수령이 400∼500년으로 추정된다고 적혀있었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자그마한 실리항이 나왔다. 작은 어선 몇 척만 있는 한적한 항구인데 입구를 다 막을 듯 길게 쌓은 테트라 포드가 볼만했다. 문어통발을 손질하는 초로의 어부네 평상에 앉아 쉬며 어부와 애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었다. 항구의 수심이 얕아져 이제 큰 배들은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오늘의 여로는 울산의 해맞이 명소 간절곶, 대바위 공원, 진하해변을 지나 회야강 둑길로 이어진다. 간절곶 바로 아래쪽에 있는 나사항엔 사진틀 모양의 프레임이 있어 기념촬영도 했다. 또 해변 도로 시멘트 방파제엔 수많은 생선과 해초의 그림과 이름들이 적혀있어 초등학생들의 체험학습장을 연상시켰다. 간절곶 가는 해안도로엔 파도의 침식을 막기 위한 대형 테트라 포드들이 계속 놓여있었다.
드디어 우리나라 본토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건절곶에 도착했다. 나는 20여 년 전 부산과 울산지역에 근무하면서 이곳을 몇 번 들렸었다. 그러나 그 사이 수많은 시설이 생기고 호안공원들이 조성돼 당시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간절곶 표지석과 근처의 대형 우체통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전망 좋은 바닷가의 대형 영화촬영장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장을 지나니 평탄한 해변이나 높다란 절벽에 설치된 길고 긴 나무 데크 로드가 우리들의 수고를 많이 덜어주었다. 어느 곳은 길이 없어져 아예 해수욕장 모래밭을 한참 걸어서 맞은 편 바위절벽에서 이어진 길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가다 간밤에 와서 잤던 진하의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모래밭에 내려앉은 갈메기떼들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해변 소나무 사이로 나무판이 깔린 길이 나있었다. 그 길가에 있는 체크 포인트에서 다섯 번째 구간을 시작하는 스탬프를 찍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25일간의 일정으로 해파랑길을 걷는다는 부부를 만났다. 충남 서산에서 온 부부는 함께 울트라 마라톤까지 즐긴단다. 75세라고 나이를 밝힌 남편의 권유로 울면서 시작한 마라톤이 이제는 부인에게 큰 즐거움이 됐단다. 한없는 응원을 보내며 그들과 헤어진 우리들은 이번 일정 중 가장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몇 군데 기웃거리다 생선회집에 들렸는데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생선회 모듬회와 매운탕, 그리고 몇 잔의 반주가 어우러진 성찬이었다. 깨끗하게 신축된 집인데 남자사장의 어머니가 바로 옆에서 35년간 운영한 가게가 4년전 화재로 불타 옮겨왔다고 했다. 값에 비해 푸짐한데다 맛도 젊은 사장의 친절만큼이나 좋았다. 식사 후 진하해변에 조성된 공원을 지나 진하대교를 건너니 울산 남쪽의 벌판을 적셔주는 회야강이 나왔다. 해파랑길은 그 회야강 둑으로 길게 똑바로 이어졌다.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십리는 넘을 것처럼 느껴졌다. 벚나무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 꽃망울도 벌어지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는 만개했다는데 올해는 필 기미조차 안 보여 우리를 실망시켰다. 파란 강물과 물을 잔뜩 머금은 강가 버드나무들이 펼치는 연두색 향연이 그나마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끝이 없을 듯 계속되는 강둑을 따라 우리들은 온산읍을 향해 걸었다. 도중에 만난 아주머니의 사진 촬영 솜씨도 시험하며 포근한 오후의 강둑을 독차지하고 걸었다. 그리고 화단둘레나 화분에 많이 심는, 콩 모양의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열리는 조경수 남천이 줄지어 서서 반겨주는 덕신교 부근에서 셋째 날의 걷기를 마쳤다. 공단으로 유명한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이다.
이때가 오후 5시30분. 서둘러 숙소를 정하고 저녁도 해결해야만 했다. 모두가 이곳이 초행이기에 길 찾기 앱을 이용해 모텔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1km이상을 걸었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도심구간은 더 피로를 느끼는 것 같다. 아마도 먼 길을 걸어온 후여서 그랬을 테지만 힘겹게 걸어서 어렵게 숙소를 정했다. 그리고 가로등이 밝게 빛나는 거리를 조금 헤매다 숙소 가까운 큰길가 삼겹살집에 앉았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어 맛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삼겹살 굽고 된장찌개에 배불리 먹었다. 물론 소주로 반주도 잊지 않고 했다. 1차 걷기의 마지막 날이라 느긋한 심정으로 즐겼다. 식사 후 편의점에서 대형 캔 맥주를 사서 숙소의 한 방에 모여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다 11시가 다돼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은 약27km를 걸었다.
< 넷째 날 >
마지막 날의 여정은 8km남짓 떨어진 덕하역까지만 걷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근처 시장골목의 밥집에서 정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음식 때문에 속 썩인 적은 없었다. 모든 집이 값도 착하고 맛도 나무랄 데 없었다. 우리들의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기도 했지만 차려내는 음식들도 무난했기 때문이리라. 집집마다 김과 미역이 빠지지 않은 걸 보며 바닷가 마을들임을 실감했다. 식사 후 다시 도심을 1km쯤 걸어 회야강의 덕신교 아래 강둔치로 난 길을 걸었다.
이날도 우리들처럼 북쪽으로 걷는 두 남자를 만났다. 그들은 서울 관악구의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 친한 사이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엄지발가락에 부상이 있고 발바닥에 물집도 생겼다며 힘들어 했다. 그런 상태인데도 그들은 50일 쯤 예정으로 우리와 같은 날 내려와 오륙도에서 걸었단다. 그들은 우리와 한동안 함께 걷다가 앞질러 갔다. 우리는 부디 무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헤어졌다.
별로 굴곡도 없이 이어지는 강둑에는 예쁜 팔각정도 있었고 아직 눈을 틔우지 않은 벚나무, 연두색을 자랑하는 버드나무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었다. 온산읍을 벗어나 온양읍 망양리 앞을 지날 땐 잘 자란 세 그루의 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거기서부터 약 1시간30분쯤 걸어 이날의 종점인 울주군 청량면 상남리 옛 덕하역앞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다. 6구역 시작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고 기념촬영 하는 것으로 1차걷기를 마감했다. 바로 옆 길가집의 담장 안에는 높게 자란 동백나무가 수많은 붉은 꽃을 예쁘게 피웠다고 뽐내는 것 같았다.
이제 서울 가는 길을 알아봐야 한다. 일단 근처로 옮겨 간 새 덕하역으로 갔다. 거기에서 서울행 고속열차가 출발하는 울산역으로 갈 수 있을 줄로 생가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온 전철은 덕하가 종점이란다. 역무원의 안내로 우리는 큰길가 버스정거장으로 나가 한참을 기다렸다 시내버스를 탔다. 약1간20분을 달려 울산 외곽에 신설된 고속철도 울산 역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널찍한 역구내 식당가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으며 해파랑길 1차 걷기를 마감했다. 식사 후 셋은 SRT열차로, 한 사람은 KTX열차로 서울왔다.
이번 1차걷기 3박4일동안 우리들은 약95km~100km를 걸었다. 안내도에 표시된 거리보다 좀 많은 건 숙소를 찾느라 곁길을 걸었거나 되돌아 간 길들이 있기때문이다. 또 많이 걸은 날엔 모두가 50,000보 냐외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음 번 걷기는 4월18일부터 21일까지 덕하역에 와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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