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갔다. 봄꽃도 갔다!
또 봄 하나가 사라져 갔다. 봄꽃들도 함께 떠났다. 나도 그 봄꽃들과 함께 움켜잡고 있던 봄의 끝자락을 놓아 주었다. 아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름 꽃을 보면서 봄을 끌고 가는 봄꽃들을 보냈다. 노란 꽃도 있었고 붉은 꽃도 있었다. 분홍 꽃도 보였고 하얀 꽃도 보였다. 나비들도 꽃을 맴돌며 함께 날아갔다.
양지바른 길섶의 제비꽃이나 민들레꽃을 시작으로 몰려왔던 봄꽃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새 여름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대부분이 벌써 모습을 감추었다.
남보다 빨리 샛노란 봄소식을 전해주었던 산수유가 졌고 그 뒤를 이었던 백목련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온 산을 분홍으로 물들였던 진달래에 이어 마을 동산을 샛노랗게 뒤덮었던 개나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전국의 도로나 공원을 하얗게 뒤덮었던 벚꽃도 한 두 차례의 봄비와 몰아친 봄바람에 눈처럼 날리며 사라졌다. 연분홍 살구꽃, 화사함을 자랑하던 분홍빛 머금은 복숭아꽃도 어느 새 푸른 잎 뒤로 숨어버렸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청년의 넋이라는 수선화도 내년봄의 화려한 개화꿈을 품은 구근으로만 남았다. 5월의 공기를 달콤한 향기로 채워주던 연분홍빛 라일락도 어느 새 다 사라졌다.
숲속이나 길섶에선 만발한 애기똥풀 꽃들이 지면을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된 초여름 같은 봄날을 따라 6월의 꽃이라는 장미들이 앞 다퉈 피어나고 있다.
빨갛게 노랗게 하얗게 피어 강한 향기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나는 오늘도 그 향기에 끌려 장미들 앞에 섰다. 장미들의 여름노래 합창도 함께 들려오는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던 꽃도 만발했다. 하얀 쌀밥을 연상시키며 소복하게 핀 새하얀 이팝나무꽃이 공원이나 거리마다 가득하다. 이와 함께 이팝꽃처럼 하얗게 피어 강한 향기를 풍기는 아카시꽃과 들찔레꽃도 초여름 숲을 장악했다. 찔레 순이나 아카시꽃은 내 철부지적 좋은 군것질 거리였다. 내일은 어떤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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