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비에 젖은 ‘Father's day’

사진 소묘

by 솔 뫼 2022. 8. 11. 23:38

본문


땡감에선 희망이, 젖은 장미에선 처량함이!



보슬비와 가랑비 번갈아 맞으며 아침에 동네의 동산과 장미원 길을 걸었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 시간에도 내리다 그치기를 계속하며 내렸습니다.
집에서 나올 땐 기분 좋게 피부에 닿던 약한 보슬비였습니다만 수시로 굵은 가랑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미원의 장미 가지들이 만든 둥근 아치 아래에서 잠시 비피하며 구경했지요. 벌써 여러 날 계속되는 비이지만 초목들은 생기가 넘칩니다.


장미들은 꽃의 색깔에 따라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심어져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장미는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된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계속 피어나더군요. 어느 구역엔 빨갛고 작은 꽃송이들이 가지 끝에 무리지어 소복소복 피어있었습니다. 거기에 꽂혀있는 Father's day 란 이름 푯말과 함께 장미송이들이 가랑비에 흠뻑 젖고 있었습니다.


근처의 다른 구획에 핀 노랗거나 붉은 장미꽃들도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채 은구슬 같은 빗방울들을 달고 있었습니다. 꽃잎 속으로 파고든 빗물이 무거워 아래로 축 쳐진 그 모습들에서 이룬 것 하나 없이 속절없이 늙어만 가는 처량한 내 모습도 어른거렸습니다!.


장미원을 지나 다른 봉우리로 가는 길가의 풀밭에선 짙은 자줏빛 나팔꽃이 피어서 웃고 있었습니다. 맑은 빗물에 세수한 꽃들은 더욱 생기가 넘치고 예뻤습니다. 또 길옆 감나무엔 초록빛 땡감들이 푸르고 싱싱한 잎들 속에 숨어 탱글탱글하게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머잖아 닥쳐 올 가을날의 붉고 화려한 결실을 꿈꾸고 있겠지요.


오락가락하던 비는 점심때쯤 완전히 그치고 언뜻언뜻 터진 구름 사이로 햇살도 간간이 쏟아졌습니다. 불어오는 바람도 가을바람처럼 선선해서 아내와 함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동네 동산으로 산책 나갔습니다.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서울숲 근처의 합수부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입니다. 그렇지만 강쪽의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은 봄이면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개나리동산’입니다.


봉우리에 있는 팔각정 응봉산정(鷹峰山亭)에 올라 최근 폭우로 황토물이 넘실대는 한강의 물 구경을 했습니다. 날이 맑을 때면 파란 강물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강남시가지,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솟은 청계산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전망 좋은 곳이지요. 정자마루 난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습도 높은 한낮의 더위를 잊었습니다.


저는 오늘 산책길에서 본 알차게 영글어 가는 땡감들에선 희망을 느꼈고, 빗물에 젖어 고개 숙인 장미꽃들에선 왠지 모를 처량함을 느끼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카카오 톡 단체대화 방에서 벗님들과도 공유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벗님이 처량함을 느꼈다는 내 생각에 대해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한 친구는 “몸도 건강하시니 어디 봉사할 곳을 찾아보심이?”라 했고,
다른 친구는 “무얼 해야 이룬 건가요? 충실하게 살아가면 뭐 더 부러울 게 있겠소? 무리하게 뭘 이뤄보려는 사람들이 문제지. 늠름하게 산길들길 걸어가는 모습 그대로가 좋아요. 절대 처량하지 않아요,”라 했습니다.


두 친구의 말이 모두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곧 바로 회신을 했습니다.
첫 번째 친구에게는 “맞아요. 우리처럼 건강하고 나름대로의 know-how와 사회적 연륜이 있는 노인들이 해야 할 가장 보람찬 일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론적으로만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아직도 실천을 못 하고 있는 한심한 사람이지요. 벗의 말씀대로 다시 찾아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친구에게는 그냥 편히 지낸다는 안부만 전했습니다.


제가 과연 봉사할 것을 찾게 될는지, 그리고 그게 언제쯤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찾아보겠습니다.

다시 찾아온 장마가 몰고 온 폭우의 수해가 막대해지는 현실이 걱정됩니다.

< 2022년8월11일 >

'사진 소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잉크처럼 파랗다!  (0) 2022.08.27
處暑  (0) 2022.08.23
더위 이기기  (1) 2022.07.27
능소화는 궁녀의 넋?  (0) 2022.07.06
청와대 구경 했습니다  (0) 2022.06.2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