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비는 마음들
산위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이처럼 그 한 곳으로 끌고 있을까? 숱한 눈길들이 닿은 그 곳엔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빨갛게 솟아오른 1월1일의 태양이 있었다. 구름 없는 날이면 거의 똑 같은 모습과 색깔로 솟는 그 해이건만 왜 이날의 해에게만 이처럼 만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일까?
며칠 동안 몰아치던 추위가 약간 누그러졌던 새해 첫날 평소 아침운동 길에 자주 올랐던 한강가의 응봉산으로 갔다. 사람들은 산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그 곳은 야트막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이 탁 트인 데다 봉우리 바로 아래로는 한강이 흐르고 강 너머엔 서울 강남지역의 빌딩들과 남한산, 구룡산, 청계산, 관악산까지 두루 일망무제로 보인다. 그처럼 좋은 조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물론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해 돋이를 보기 위해 모였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해가 돋고 나서 사람들이 흩어지기를 기다려 일부러 좀 늦게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봉우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그때 올라가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그 봉우리에 도착했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봉우리엔 2층으로 지어진 팔각정 응봉산정(鷹峰山亭)이 있고 정자 주변으로 배드민턴코트 4∼5개 정도 넓이의 평평한 공터가 있다. 그 공터에 사람들은 시루속의 콩나물처럼 몰려서 동쪽 하늘의 해를 보며 구청에서 마련한 해맞이 행사도 즐기고 있었다.
나처럼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공터 가장자리로 가서 한강너머 동편하늘에 솟은 새해 첫 해의 모습을 감상하고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서 핸드폰 카메라로 그 첫해의 모습과 정자주변 공터를 가득 매운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다. 구청에서도 다양한 해맞이 프로그램과 조형물을 마련해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기념촬영도 돕고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열기에 한겨울 아침의 추위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도 밀집한 인파들에게 질서유지를 당부하느라 바쁜 모습들이었다.
나도 두어 달 전의 ‘이태원참사’를 떠올리며 인파에서 빠져나와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조심조심 걸어 봉우리를 내려왔다. 그 사이 붉었던 해는 더 높이 솟아 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함께 내려오는 사람들도 더 이상 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른 아침의 추위를 무릅쓰고 나와 붉게 솟는 해를 보며 환호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해를 향해 새해소원도 빌고 청운의 희망도 그려보았을 것이다. 단순히 일출순간의 장관만 즐기려고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은 붉은 해를 보며 무슨 소원을 빌고 어떤 계획을 세웠으며 어떠한 다짐을 했을까? 나도 그들 사이로 해를 보면서 새해엔 '나에게 더 엄격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고 다짐했다.
근처의 다른 봉우리 숲길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그 봉우리에도 철봉, 배드민턴코트 등 각종 운동 시설이 있어 몇몇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도 철봉에 매달려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집에 왔다. 그렇지만 평소 조용하던 응봉산 봉우리를 오늘처럼 인파로 가득 채우는 새해 첫날의 힘이 무엇인지는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힘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할까? 이틀 후 비슷한 시간 다시 응봉산 그 봉우리에 올랐다. 공터엔 아무도 없었고 정자만 우뚝하게 서있었다. 동쪽 하늘엔 여전히 붉은 해가 떠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 2023년1월3일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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