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밭에서 6살 손녀가 알려 줘
보이거나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건 많다. 공기가 그렇고 바람이나 소리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의 생각이나 타인들이 내게 베푸는 친절과 고마움도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는 있는 것들이다.
이들 모두가 다 중요하고 좋아 경중이나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다 하나를 꼭 추가하고 싶다. 그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고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행복 역시 일정한 형태는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는 있다. 물론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거나 느껴진다고 표현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그들 나름대로 느끼는 행복은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우리 가족은 서울 근교의 도시에 사는 동생집에 갔었다. 그날 동생부부는 부업 겸 재미삼아 경작하는 밭에서 고구마와 땅콩을 캔다고 했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가을철에 캐는 고구마 수확의 즐거움을 잘 안다. 물론 그 즐거움엔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데 따른 상당한 체력 소모가 필요하다. 그러나 힘든 삽질이나 호미질 끝에 땅속 깊이 파고든 뿌리에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고구마를 보는 순간 고통은 일시에 사라진다. 그날도 그랬다. 동생이 가꾼 밭은 흙이 비옥해 굵은 고구마가 참 많이 나왔다. 땅콩도 많이 맺혔다.
그런데 이날 가장 신이 났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딸이 6살짜리 손녀를 데리고 사위와 함께 왔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손녀는 고구마 덩굴이나 잎은 물론 땅콩도 처음 봤다. 따라서 땅속에서 굵은 고구마나 땅콩이 나오는 것도 처음 보았다. 모든 게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을 것이다.
손녀는 어른들이 주렁주렁 달린 땅콩이나 고구마를 들어 올릴 때마다 달려가서 들어보고 만지며 마냥 즐거워 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도 고구마를 캐겠다고 고사리 손으로 호미질도 하고 제 키보다 긴 삽자루를 들고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그날 좋아서 이리저리 달리고 소리치는 손녀에게서 '행복'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세상 물정은 모르지만 좋아서, 기뻐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는 그 어린 아이의 느낌이 곧 행복이란 것을! 또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던 내 맘속의 느낌도 '행복'이었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방긋방긋 웃으며 내 품에 안기는 손녀와 함께 '행복'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