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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에서 금수강산을 읽다”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3. 1. 28.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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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땅 사이 길 750여km 걸으며
인정많은 사람들과 만나 즐거움 만끽


동백꽃 만발한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바라본 해운대 전경.

2022년3월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출발하는 네 동료(위), 11월18일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금강산 낙타봉(아래)

2022년은 내 삶에서 매우 의미 깊은 해였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이 땅이 아주 잘 씌어 진 한편의 인문지리서’임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땅을 걸으며 건강과 즐거움도 함께 누렸다. 나는 2,000리 가까운 동해안 길을 걸으며 금수강산 한마디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과 진가를 알리기엔 턱없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강산도 아름다웠지만 거기에 사는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각종 자산과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문화유산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내발로 걸으며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명소 동해용궁사 전경

나는 지난 3월21일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을 출발, 춘풍추우와 삼복더위 염천, 강력한 태풍도 무릅쓰고 동해안을 따라 걸었다. 청춘을 중앙일보에서 함께 보낸 세 친구(권병구, 진한영, 이재영사우)와 함께 매월 3박4일씩 7차례에 걸쳐 보조를 맞췄다. 그 길은 지도상의 공식거리는 750km이다. 그렇지만 우리기 걸은 실제 거리는 2,000리 가까운 대장정이었다. 길을 잘 못 들어 되돌아 나오거나 잘 못 된 이정표에 헛걸음 한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자연의 걸작품인 경주 앞바다 주상절리의 기묘한 모습들

그 여정에서 우리는 바닷가 고운 모래밭도 걸었고, 깎아지른 수직해안절벽도 조심조심 지났다. 주먹보다 더 크고 거친 돌들만 수km씩 계속되는 해안 길도 통과했고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의 산길에서 이틀이나 줄곧 비를 맞기도 했다. 원자력발전소 등 주요 국가시설이나 산업단지,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같은 대규모 공장이 있는 해안을 만나면 내륙 깊숙이 멀리 돌아야 했다. 경치와 전망 좋은 곳에선 쉬었고 길가 편의점에선 허기와 갈증을 해소했다. 점심이나 저녁상에선 한 잔의 반주를 곁들이며 도보여행자의 특권을 맘껏 즐겼다.

동해안 750여km를 함께 걸은 중앙일보 근무시절의 네 동료들이 포항 호미곶과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기념촬영.

그 해파랑 길에서 우리가 지나 온 도시들만도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그리고 고성 등 12개 시군이다. 그 많은 고장들마다 따뜻한 사람들이 살았고 명승절경들이 있었다. 찬란하게 솟는 아침 해와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장엄한 낙조를 보며 감탄도 여러 차례 했다. 전망 좋은 해안절벽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끝없이 퍼져나간 만경창파 위로 크게 소리도 쳐봤다. 그 소리 속에 흘려보낸 젊은 날의 높고 많았던 꿈과 애달팠던 기억들도 함께 실어 보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산속의 잔잔한 호반에선 수면에 거꾸로 비치는 주변 산들의 그림자를 감상하며 노후의 아름다운 요산요수도 그려보았다. 반면 일본을 강타한 태풍 난마돌이 사납게 몰아칠 때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하며 걸었다. 그리고 밀려들어오는 집채만 한 파도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력 앞에 몸을 떨기도 했다.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앞바다의 절경(위)과 양양군 38선 휴게소.

한편 전망 좋은 곳이면 빠짐없이 고급스런 카페 건물들이 즐비했고, 널찍한 해변 캠핑장들마다 고급 캠핑카나 캠핑용 텐트들이 넘쳐났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경제대국이 됐고 여가를 즐기는 방식이나 수준도 경제력에 걸맞게 변했음을 실감했다. 변화된 모습은 해안가나 산속을 지나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시골길에서도 확실히 보였다. 거의 모든 길은 넓고 곧게 포장 된데다 나무나 철제 데크까지 설치해 보행자들을 편하게 해주었다. 장마철이면 비가 조금만 내려도 냇물이 불어 고립되곤 했던 시골마을에서 자란 내게는 엄청나게 커진 나라의 힘이 놀랍기만 했다.

강릉 안인항의 일출(위)과 영랑호와 설악산(가운데), 영랑호의 낙조.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우리는 11월18일 금강산이 바라보이는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천리 길을 멀다않고 걸어 온 결과치고는 너무 안타까웠다. 손 내밀면 잡힐 듯 눈앞에 가까이 있었지만 갈 수 없는 산하들 때문이었다. 청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늦가을 햇살을 받은 금강산 동쪽 자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민족 모두의 가슴에 담겨있는 聖山 금강산이 우리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전망대 아래 펼쳐지는 넓지 않은 벌판을 지나서 어서 오라고. 뿐만 아니라 바다에 한발을 담근 금강산 동쪽자락 낙타봉 너머엔 명승 해금강의 바위들이 동해의 물결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 낙타봉에서 남쪽까지 하얗게 명사십리가 이어진다. 그 모래밭 한가운데서 바다로 쑥 들어간 작은 섬 밤섬도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정말 손색없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저곳을 막힘없이 오갈 수가 있을까? 먼 길을 걸어왔지만 아직 더 걷고 싶었고 걸을 힘도 남았었는데…!

강릉 경포호에서 바라본 설악산(위)과 고성 송지호.

그 여정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자연경관이 금수강산(錦繡江山)임을 절감했다. 부산 동백섬에서 바라 본 해운대부터 기장군 해안절벽의 용궁사, 울산 대왕암공원, 경주 주상절리의 오묘함에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포항 영월대, 울진의 월송정과 망양정, 강릉 경포호와 경포대, 속초의 영랑호, 고성의 송지호와 화진포도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 밖에도 명승절경은 이루 말 할 수없이 많았다. 그리고 지나온 길 근처에서 살고 있거나 만난 모든 이들이 착하고 인정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아울러 그런 사람들이 살며 가꾸어 온 이 땅에 대한 표현하기 힘든 새로운 정감이 생겨나는 것도 느꼈다. 우리도 이 땅을 아끼고 가꾸어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겠다는 다짐도 했다.

최북단 고성군 경계 이정표와 응봉에서 바라 본 화진포 전경.

한 마디 덧붙이면 함께 걸은 네 사람 모두가 비록 70살을 훌쩍 넘겼지만 이번 도보여행을 통해 노후의 삶에 대한 새로운 활력소도 얻었고 심신도 더 건강해졌음을 자부한다. 그래서 새해에도 또 다른 곳을 찾아 건강을 지키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볼까 한다.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까.

해파랑길 걷기를 마치고 통일전망대앞 종점 안내판앞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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