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함께 했던 옛 동료들과 추억 곱씹으며 즐긴 맛있고 멋진 하루
오랜민에 찾은 산길에서 산행의 참맛을 마음껏 즐긴 하루였다. 바쁠 것도 없었고, 남의 눈치 볼 상황도 안 생겼다. 산길을 붐비게 만드는 사람들도 적었고 재촉하는 사람들 또한 없었던 고요한 산행이었다. 완급을 바꾸어 가며 高度를 높이는 산길에서 힘들면 쉬었고 목 마르면 물 마셨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능선엔 도봉산 만장봉의 널따란 암벽이 하늘을 떠받치듯 치솟아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산행길의 정면과 왼편 윗쪽에는 오늘 우리들이 오르려는 곳으로 이어지는 도봉산 주능선이 보였다. 아침엔 맑았던 하늘엔 어느 새 몰려 온 짙은 구름이 잔뜩 드리웠다. 비를 품은 듯 검은 구름도 조금 보여 가을비 속의 산행이 될까봐 잠시 걱정도 했었다. 그랬던 가운데 느림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던 초가을 산행이었다.
지나 간 젊은 시절 같은 회사에 몸 담고 바쁘게 일했던 동료들과의 산행 모임은 항상 즐겁다. 중앙일보OB산악회 팀원 중 세 사람이 지난 9월10일오전10시 수도권 전철 1호선 도봉산역에서 만났다. 많을 땐 10여명 넘게 만나 산에 오르곤 했지만 이날은 셋만 만났다. 서울과 의정부 사이에 있는 도봉산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명산이다. 역에서 나오니 넓고 높은 만장봉 암벽이 하늘의 절반 쯤을 가린 채 맞아준다. 의정부행 넓은 국도를 건너 넓은 계단을 올라가면 널찍한 공터와 도봉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공터는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이날은 일요일 이어서 공터와 계단엔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인파속에서 셋은 용케도 만나 곧 바로 걷기 시작했다.
함께 산행한 두 사람은 한국등산학교에서 정규 등산훈련과 록 크리이밍 등 고난도 기술을 배운 등산의 베테랑들이다. 기자는 다만 고향의 명산 가야산 골짜기를 헤매며 자랐고 겨울엔 땔감용 나무 지게를 지고 산길을 다닌 게 전부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산길은 곧 잘 걷는다는 평가를 받긴 한다. 길 양쪽에 늘어선 등산용품 가게, 음식점들을 벗어나 10여분 만에 도봉탐방지원센터 근처에 있는 북한산국립공원 입간판 앞에 도착, 다른 산행객에게 부탁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북한산'은 없어지고 '국립공원' 네 글자만 보였다. 내가 찍었다면 그렇게 안 찍었겠지만 어쨌든 셋의 모습은 들어 있으니 됐다.
길은 여기서 좌우로 갈라진다. 우리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서울둘레길과 공통인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약간 오르막인 넓은 길이 한동안 이어졌다. 황금색이 넘쳐나는 길옆 도봉사의 웅장한 절집들 지붕 너머로 우뚝 솟은 만장봉과 널찍한 암벽이 하늘에서 펼쳐놓은 병풍처럼 느껴진다. 도봉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북한산 둘레길은 왼쪽으로 갈라져 들어가 헤어진다. 우리들은 넓은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 샘터에서 샘물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계곡을 따라 경사가 가팔라지고 슬금슬금 높아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등산용 스틱을 꺼내 길이를 조절한 후 걸었다. 그렇지만 우이암이 가까이 보이는 곳 까지는 경사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이 계속된다.
도봉산역앞 공터를 출발한 지 한 시간반쯤 지났다. 능선 길이라 좌우의 조망이 정말 멋졌다. 자운봉과 만장봉 등 도봉산 주봉이 저 건너편에서 손짓한다. 바람도 별로 없어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특히 체중이 나보다 훨씬 많이 나가는 두 사람은 연신 흐르는 땀을 닦느라 애쓰고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시원했다. 이날은 느리게 걷기로 한 만큼 쉴 수 있는 한 열심히 쉬면서 올라갔다. 중간의 쉼터에서 만난 다른 팀엔 아리따운 여자들이 많아 우리들의 지난 시절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두 시간쯤 오르니 거대한 바위 무리 가운데 우람한 우이암(해발 542m)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우리가 걷는 능선에선 작은 계곡 건너 약간 윗쪽에 있었다. 길은 그쯤에서부터 경사가 무척 심해져 거의 수직에 가까왔다. 바로 타고 오르는 길도 있지만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경고판이 우리를 막아 세웠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난 우회로를 타고 수직의 벽을 감아 안듯이 돌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에서 칼바위를 지나 우이암으로 이어지는 도봉주능선에 닿았다. 거기에는 나무로 된 데크 로드와 길고 넓은 전망대가 설치돼 있었다. 나는 동굴처럼 좁은 바유틈으로 이어지는 데크 로드를 통과해 거의 8년만에 이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서니 건너편에 오봉능선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능선은 칼바위를 지나 주봉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약간 하늘은 흐렸지만 그 능선을 바라보며 서있으니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산을 오르는 사람만이 이 맛을 즐길 수가 있다. 나 역시 75세의 나이에 이런 고지에 올라 절경에 환호할 수 있음을 감사할 수밖에.
도봉주능선의 바위에 올라 바로 눈아래에서 하늘로 치솟은 우이암의 장관을 보니 나도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우이암은 거대한 수직바위여서 암벽등반 장비를 갖춰야만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위에 네 사람이 올라가 손 흔드는 모습을 보니 마낭 부럽기만 했다. 꿩 대신 닭잡는 심정으로 우이암을 배경으로 한껏 폼을 잡아 기념사진들만 찍었다. 대구와 김천이 고향이라는 젊은 부부가 촬영을 위해 좁은 바위에서 고맙게도 자리를 비워주었다.
수직으로 선 직사각형 모양의 우이암이 볼수록 머싰었다. 그렇게 산 위에서의 즐거움을 실컷 누린 후 하산하기 시작했다. 수직벽을 티고 올라왔던 만큼 하산길 역시 급전직하 경사여서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데크 로드가 끝나니 울투울퉁한 바위와 미끄럽고 위험한 자갈돌과 모래가 많은 길이 이어져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했다. 그렇게 노심초사 하면서 20여분을 내려오니 평탄한 곳이 있었다. 원통사 바로 위쪽 공터였다. 시간은 오후 1시를 지나고 있었다. 준비해 간 음식들을 펼치니 푸짐한 산상오찬상이 차려졌다. 특히 일행 중 한 분은 서울 충무로 근처에서 부인과 함께 소문난 맛집을 25년간 경영했기에 진미가 가득했다. 그 부인 역시 암벽등반까지 했던 유능한 산꾼이었다.
우리들은 모여 앉아서 약 한 시간동안 준비해 간 음식과 약간의 반주를 즐겼다. 마침 그때 우이암에 올라 손을 흔들어 댔던 사람들이 공터에 와서 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을 찍은 사진을그들에게 보내준 후 근처 원통사 마당에 들려 물 마시고 산을 내려왔다. 등산로가 거의 끝나는 곳에서 맑은 계곡물에 들어가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히니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계곡에서 20여분쯤 쉬다 나와 한 시간쯤 걸어 산 아래 무수골로 내려왔다. 이 곳은 서울속의 농촌마을이다. 산 아래 양지쪽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마을앞 논에선 고개 숙인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 논 옆 봇도랑에는 도봉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흘렀다. <무수골 논체험장> 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하며 약7시간에 걸친 산행을 마쳤다. 그 때가 오후4시40분. 정말 하루 종일 많은 얘기 나누며 오붓하고 느긋하게 즐긴 값진 산행이었다. 우리는 30분쯤 마을 길을 따라서 걸어 경원선 도봉역으로 나왔다. 역 맞은 편 치킨집에서 저녁 식사를 겸한 뒤풀이로 산행을 마감했다. 이런 맛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산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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