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말솜씨와 보행 실력 조금도 줄지 않아
"정외과 출신은 물에 빠져 죽어도 입은 살아 움직인다!"
53년전 봄 우리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연세숲에 모였을 때 장안에 유행했던 말이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홍안의 흑발 청년들은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칼이 휘날리는 할아버지가 됐다. 그렇지만 변치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와 청년을 방불케 하는 체력이었다. 그 불가사의한 말솜씨와 힘이 있어 즐거움을 배가시킨 하루였다.
10월13일오전10시30분 서울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1번 출구앞. 건강미 넘치는 70대 노인들 일곱이 반갑게 인사하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며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70학번 동기들인 이들은 잠시 후 '늦게 도착하니 먼저 출발하라'는 지각생 친구의 전화를 받고 걷기를 시작했다.
이날은 아차산 길을 걸으며 우의를 다지고 70대들의 호연지기도 과시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일행은 10여분만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잘 가꾸어진 등산로 입구 생태연못의 인어상 앞에서 기념촬영 후 산길로 들어갔다. 그러나 공원 산책로에 데크 로드 설치 공사로 기존의 등산로들이 모두 통제되고 있었다. 이 바람에 일행은 길을 우회하거나 되돌아 가기를 거듭하는 불편을 겪었다. 그러다 급기야 서로 손잡아 당겨주고 밀어주며 공사장의 튼튼한 철제 펜스를 타고 넘는 모험을 감행하고서야 등산을 계속 했다.
일행은 그 옛날 고구려와 백제가 맞섰던 아차산성 유적지앞에서 기념촬영 하고 근처 쉼터에서 간식을 나누며 숨고르기를 했다.
그리고 곳곳에 산책로 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길을 지나 능선 길로 올라갔다. 좌우로 시야가 탁 트이자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엷은 구름이 온 하늘을 가렸지만 눈 아래로 폭이 널따란 한강이 하얗게 굽이치고 있었다. 강 너머 동쪽엔 고구려 군과 싸우다 전사한 백제 게로왕의 비극을 품은 풍납토성과 미사리 일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뒤쪽엔 남한산성, 검단산, 예빈산, 예봉산으로 이어지는 광주정맥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면 남산과 서울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려 조금 빛이 바래긴 했지만 참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그 전망좋은 능선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북쪽으로 계속됐다. 도중에 전망이 좋은 곳에선 기념촬영을 하며 걸었다. 그리고 반세기에 걸쳐 모우고 쌓아 둔 추억담들을 쉴새 없이 풀면서 걸었다. 이야기들은 실타래가 풀리듯 끊임 없이 이어졌다. 조금 힘들어 하는 친구가 생기면 모두가 그와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풀밭에 앉아 경치를 완상하던 젊은 비구니 스님이 자청해 우리들의 기념 촬영을 해주었고 또 다른 곳에선 여자 산행객이 찍어 주었다.
그렇게 걷고, 얘기 나누고, 사진 찍으며 1시간40분만에 일행은 아차산 제4보루에 도착했다. 고구려의 군사들이 생활했던 이 보루는 10여년전 유적발굴을 마치고 옛 모습으로 복원한 곳이다. 사방이 모두 트여있어 군사요충지로 최적지임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근처의 여자 등산객에게 부탁해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 올 때와는 달리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골짜기 길이었다. 그러나 이 길은 거리가 매우 길어 '긴 고랑길'이라고 불린다. 도중에 쉼터에서 준비해 간 과일을 먹으며 지친 다리를 쉬게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중곡동 주택가로 내려왔다. 4보루를 떠난지 약한시간 만이었다. 우리는 음식점을 정한 후 늦게 도착해 함께 산행을 못 한 친구에게 연락해 알려 주었다. 이렇게 여덟명이 모두 만나 맛있는 돼지고기에 시원한 막걸리 반주하며 초로들의 호연지기를 맘껏 과시했다.
이날 식사대는 일부 회비를 걷고 부족분은 오랜만에 걷기에 참석한 화곡동 사는 친구가 부담해 우의를 다졌다. 한편 다음달 모임은 서대문 안산둘레길, 12월의 송년걷기는 인천역에서 만나 차이나 타운 일대를 걷기로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선 내년의 졸업50주년기념 재상봉모임 때 재외국 친구들의 참석을 위해 적극 힘을 보태자고 다짐했다.
< 2023년10월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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