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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둘레길 걷다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3. 11. 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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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우산속 鞍山 秘景길을 만끽
안개 덮인 인왕산은 한폭의 동양화
 


종일 쏟아진 가을비도 70대 중반 초로들의 산길을 막지 못했다. 온 나라의 관심이 2024학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 시험에 쏠렸던 11월16일. 이날은 잔뜩 흐린 데다 한낮부터 약간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있었다. 그러나 기상청 예보와는달리 비는 오전9시를 지나면서 바로 시작돼 온 종일 내렸다. 그것도 적지 않은 양이 쏟아졌다.
 


오전10시쯤 서울지하철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에 대학 입학동기생 4명이 만났다. 당초 6명이 약속했지만 둘은 갑지기 일이 생겨 조금 늦게 따라 와 합류하기로 했다. 우산을 받고 넷은 민족의 슬픔과 아픔을 간직한 옛 서대문 형무소 가운데를 지나 그 옆의 안산길로 올라갔다. 이 산은 10여년전 개설된 나무 데크로드 안산자락길로 유명하다. 안산의 아랫자락을 거의 전구간 순회하는 이 데크로드는 경사가 아주 평탄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도 밀고 걸을 수 있어 여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날 데크로드를 피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사람의 손길이 아닌 발길에 의해 만들어진 산비탈의 숲길이다. 그 때문에 비교적 찾는 사람이 적은 데다 우거진 숲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경에 가깝다. 우리는  안산자락길(데크로드)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10여분쯤 가다 자락길을 벗어나 그 옆의 시멘트 계단이 뜸성듬성 있는 옛길을 걸었다. 그 길을 조금 더 가다 풀숲으로 들어가 가파른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개설된  산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내리는 비를 작은 우산으로 막으며 조금 올라가니 겨우  두 사람이 비켜갈 수 있을 정도지만 분명한 산길이 나왔다. 길은 수평으로 산허리를 감아돌며 숲속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등고선을 따라  굴곡을 계속할 뿐 평탄한 수평이 대부분이었다. 마주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다 바람도 안 불어 걷기엔 정말 좋았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노래삼아 즐기며 좁은 산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하며 걸었다. 중간 중간 함께 출발 못 한 두 사람과 전화로 만날 장소를 협의하며 걸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라 글이나 말로 길 안내를 제대로 할 수 없지만 미처 알지 못 한 비경임엔 틀림 없었다. 이 산의 데크로드를 수십차례나 산책했던 나도 이길은 몰랐다. 안산 자락의 아파트에 사는친구가 자주 산책하는 비밀의 코스였다.
 


쉬지 않고 비는 내렸지만 옅은 안개가 산 허리께부터 감돌기 시작해 더 신비스런 분위기였다. 도중에 쉼터에서 준비해 온 다과를 나누며 쉬었다.  나무잎이 대부분 떨어진 숲속이지만 상록수들도 많은 울창한 숲길이었다. 중간에 기념촬영도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안산의 또 다른 이름인 무악을 따서 지은 毋岳亭에 도착했다. 정자 2층에 올라 다시 간식을 하면서 합류못한 둘 중 한 사람이 근처에 있음을 알고 기다렸다가 만났다. 그는아침에  약속 장소로 오다 버스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바람에 택시로  그 버스를 뒤쫓아 가 폰을 찾아서 오느라 큰 고생을 하게 된 셈이다.
 


우리 다섯은 안산의 정상에 있는 봉수대에 올랐다. 높이 296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이날은 안개가 짙어 눈아래 펼쳐진 서울 시가지가 뿌옇게 보였다. 의주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인왕산도 구름속에 희미하게 보여 잘 그린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시켰다.


그 바람에 우리는 신선이 된 기분으로 눈아래의 사바세게를 굽어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기념 촬영 후 우리는 독립문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하산길은 올라 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데다 정상부근은 바위길이었다. 더군다나 바위길엔 굵은 마사토 왕모래가 깔려 있어 미끄러워 조심하며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다섯은 약 2시간반만에 독립문공원으로 하산, 맞은 편 골목의 맛집 대성집으로 갔다. 워낙 널리 알려진 맛집인지라 궂은 날씨인데도 대기 손님의 줄이 이어지는 집이다. 우리는 운좋게 자리를 쉽게 잡아 수육안주로 반주를 하면서 도가니탕을 주문했다. 그 때에 마지막 으로 합류를 못 했던 친구가 도착했다. 그는 개인 용무가 있어 처리하느라 좀 늦었단다. 더구나 서둘러 오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팔꿈치에 철과상까지 입었단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나와 길 건너 영천시장의 명물 꽈배기를 한 봉지씩 사서 먹으며 헤어졌다. 이날 식사와 꽈배기 비용 12만6000원 중 회비 1만원씩을 걷고 나머지는 안산 자락에 사는 친구가 부담했다. 자기의 위수지역이란다. 이래서 친구는 좋은가 보다. 가장 늦게 온 친구는 그나마 먼저 가는 바람에 꽈배기 혜택도 못 받았다.

                       < 2023년11월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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