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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산행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3. 11. 1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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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갈길 멈추는 운길산에서
내리는 첫눈 맞으며 동심에 젖다

 
 

해발610m 운길산 정상에 선 다섯 사우


주변의 산마루들을 하얗게 뒤덮은 눈구름이 세찬 바람에 밀려오는 높은 산꼭대기에 섰다. 간간이 날리는 눈발들이 찬바람을 무릅쓰고 힘겹게 올라온 5명을 반겨주었다. 구름도 가다가 이 산에 걸려 멈춘다는 바로 그 산, 운길산 이다. 하얀 돌에 새겨 세운 정상 표지석엔 ‘해발 610m’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날리는 눈발들 사이로 저 멀리 산 아래 남북에서 굽이굽이 흘러 온 두 갈래 넓고 하얀 강줄기가 반갑게 만나는 두물머리의 절경이 펼쳐진다. 태백산과 소백산 자락의 물들이 모여 단양과 영월, 제천, 충주를 지나 흘러온 남한강과 강원도 화천, 인제 등지의 물들이 모인 북한강 줄기가 하나로 합수되는 한강의 양수리 유역이다.
 


깊은 산곡사이를 굽이돌며 먼 길을 달려 두 강줄기가 만나 하나 되는 곳이라 넓어진 강폭과 주변 산들이 어우러진 이 곳은 예로부터 이름난 절경지로 손 꼽혔던 곳이다. 더군다나 합수부에서 십리쯤 하류 쪽에 지난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두물머리 일대는 거대한 내륙호가 생겨 호반의 경치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아름다운 강줄기와 내륙호수, 그리고 주변의 예빈산, 예봉산, 검단산 등 명산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광은 가히 천하일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멋진 장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운길산 정상이다. 그렇지만 아무나 이 절경을 쉽게 감상할 수는 없다. 힘들게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 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오른다고 볼 수도 없다. 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잎에 가려 산 아래 전경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잎들이 대부분 떨어진 늦가을부터 다음해 초여름 녹음이 우거지기 전까지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그 기간 중에서도 눈 쌓인 겨울이나 언 땅이 녹아 질척거리는 이른 봄철보다는 등산하기 좋은 눈 오기전의 늦가을과 초겨울이 제일이다.
 


지난11월17일 오전10시30분 중앙선 운길산역에서 초로의 남자 다섯이 만났다. 약30년 전 중앙일보의 한시적 특별부서에서 팀을 이루어 한 해 동안 함께 일했던 선후배 동료들이다. 맡은 업무를 마친 후 각자는 원래의 소속부서로 복귀했고, 그 후 은퇴나 퇴사 하면서 국내외로 헤어졌다가 이날 다시 뭉쳤다. 30년 가까운 풍상속에서 그 때의 40∼50대 젊은이들은 이젠 60대 후반에서 80세의 初老들이 되어 만난 것이다. 5인의 초로들은 그 긴 세월의 간극이 있었지만 엊그제 헤어진 사람들처럼 재회의 기쁨과 반가움을 나누었다.
 


하루 전날만 해도 종일 비 내리고 바람 불었지만 이날 운길산역에 내리니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일행을 환영하는 듯 했다. 역에서 나와 철둑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 수종사 가는 길로 가다 운길산 자락 양지녘 시골 마을에서 산쪽으로 걸었다. 수종사에는 하산길에 들릴 계획이었다. 마을 뒤쪽 등산로 들머리에 있는 등산안내도를 보니 정상까지 거리는 약3km, 소요시간이 1시간3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산길은 곧 바로 낙엽이 쌓인 완만한 경사의 돌길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다. 우리 일행은 준비해 온 등산 스틱을 꺼내 땅을 짚으며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한 오목한 골짜기의 산길을 걸었다.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속이었다.
 


산길 곳곳에 지난 여름의 태풍이나 지난해 겨울의 폭설에 부러지거나 심하게 휘어져 말라죽은 나무들이 조각 작품처럼 나타나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이 죽은 나무들처럼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생겨나고 자라다 부러지고 죽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生者必滅의 생태계 순환' 앞에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산행 시작 20여분을 지나자 경사는 아주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일행 중 80세인 분의 보조에 맞추어 완급을 조정하며 경사진 산록을 비스듬히 가로 질러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에 들어섰다. 좌우로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금강산에서 발원해 화천, 춘천을 지나 흘러 온 북한강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 너머 양평군 양수리와 문호리 쪽 산들의 멋진 자태도 보였다.
 


정상으로 향하는 이 능선은 경사가 심한 코스로 소문 나있다. 비교적 곧 바로 가파르게 치솟는 길이라 상당히 힘이 든다. 물론 몇 군데 완만한 곳도 있지만 곧 바로 나타나는 급경사구간이 노인들이나 초심자들에겐 상당한 노력을 요구한다. 우리는 완만한 구간에선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오르기를 계속했다. 비교적 강하게 부는 바람을 피해 좀 아늑한 곳의 낙엽에 앉아 과일과 떡도 먹고 물도 마셨다. 운길산역을 출발한지 약50분만에 조망이 탁 트이는 곳이 니왔다. 태백에서부터 흘러 온 남한강이 북한강과 만나는 양수리가 저 멀리 보였다. 거기에서는 경기도 광주 쪽에서 흘러 오는 한강의 지류 경안천도 팔당호로 유입돼 함께 만난다. 크고 작은 세 개의 물길이 팔당호에서 만나 내륙호를 이룬다. 이 호수의 물은 바로 서울과 수도권 주민 대부분의 생명수가 된다.
 


역을 출발할 때 쾌청했던 하늘엔 어느 새 엷은 구름이 덮였다. 한낮부터 눈비가 예보된 기상청 예보가 빗나갈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 맞아가고 있었다. 햇살이 사라진 산길에서 초겨울 바람까지 맞으니 의외로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겨울산에서 한기를 쫓는 확실한 방법은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것 뿐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올라가다 잠시 쉬기를 반복했다. 그 즈음부터 구름이 짙어지며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하얗게 가려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한결 강해졌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이런 현상이 머잖아 눈이나 비가 시작될 징조임을 잘 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두 송이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올 겨울 처음 맞는 눈이다. 그렇지만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날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아이들처럼 "첫 눈, 첫 눈!"을 외치며 산을 올라갔다.
 


그렇게 10여분을 더 가니 평평한 곳에 쉴 수 있게 의자 겸한 테이블 두 개가 나왔다. 조금전 우리들을 앞질러간 세 사람이 쉬고 있었다. 우리도 남은 한 테이블에서 과일과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쉬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나누어 준 포도도 먹었고 그들에게 기념촬영도 부탁했다. 운길산역을 출발한지 1시간 반쯤 된 것 같다. 등산안내도의 예칙 시간보다는 훨씬 느린 산행이었다. 한기가 들기 전에 우리는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연장자 되시는 분의 체력을 고려해 일행 중 한 사람이 그 분을 모시고 먼저 수종사로 하산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그러는 가운데 50분쯤 더 오르니 정상이 빤히 보이는 곳에 설치된 쉼터에 도착했다. 그 사이엔 수종사로 가는 산행로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널따란 평상에 앉아 쉬었다. 눈발은 계속 간간이 날렸다.
 


그 때가 오후 1시쯤 된 시각. 수종사로 하산하는 길은 여기에서 말굽자석 모양의 곡선으로 벋어가 다른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그런데 80세 선배께서 정상을 보고나자 용기가 나는지 함께 올라가겠다고 하셨다. 우리도 덩달아 호응해 다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 바로 아래는 경사가 매우 급한 돌길이다. 그 곳을 올라가면 정상엔 널따랗고 튼튼한 사각형 나무 데크가 정상표지석 앞에 마련돼 있다. 10여분 만에 내가 앞서 올라가서 그 표지석 앞에 섰다. 거기엔 조금전 우리를 앞질러간 젊은 여자등산객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직 도착 전이어서 그 여자와 내가 서로 기념촬영을 해주며 일행을 기다렸다. 정상표지석 옆 안내판에 씌어있는 글귀가 인상깊었다. '구름이 가다 이 산에 걸려 멈춘다고 운길산' 이란다. 사방이 탁 트여 저 멀리 산 아래엔 두물머리의 강물과 주변 산들이 빚어내는 절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 뒤처진 일행도 곧 뒤따라  와 그 여자등산객에게 부탁해 다섯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들은 정상에 서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원근의 경치를 감상하며 10여분을 더 머문 후 하산을 시작했다. 그때도 간간이 눈발은 날리고 있었다. 산행 후 들리겠다고 예약해 둔 양수리의 음식점에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예상보다 산행 시간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초의 계획을 일부 수정, 수종사에 들려 차 마시며 두물머리의 절경을 감상하려던 것을 포기했다. 또 하산 시간 단축을 위해 올라왔던 능선길로 내려가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내가 우겨 그보다 더 빠른 코스로 들어섰다. 그 길은 빠르긴 하지만 그야말로 急轉直下의 가파른 길이었다. 등산로 옆의 안전용 밧줄과 스틱에 의지해 구르다 시피 내려왔다. 30분도 채 안 돼 우리는 수종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不二門과 일주문에 도착,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는 운길산역을 향해 경사가 상당히 심한 시멘트 포장길을 뛰다시피 걸었다. 잠시 멈추었던 눈발이 상당히 세어졌다. 동영상으로 촬영하니 날리는 눈송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눈발은 곧 그쳤고 경사 심한 내리막 시멘튼 포장길은 딱딱해서 힘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로 오른쪽 급경사면으로 난 좁다란 길을 타고 내려가 작은 계곡을 건너 갔다. 우리가 오전에 올라갔던 등산로 들머리가 가까운 산길이었다.

 

 


등산로 초입에 선 한 입간판에 옛사람이 운길산과 수종사의 수려한 경치를 읊은 시 한수가 있었다. 우리는 운길산역 앞 교회에 주차해 둔 일행 중 한 사람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인근 양수리로 갔다. 오후2시30분쯤 양수리 재래시장안 깨끗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쇠고기와 빈대떡, 해물파전에 막걸리 반주로 푸짐한 뒤풀이를 했다. 우리는 흥에 겨워 아주 낮은 저음으로 흘러간 노래도 몇 곡 부르다 보니 짧은 늦가을 해는 이미 저버렸다. 음식점에서 나와 양수역 근처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로 산행의 막을 내렸다. 이날 푸짐했던 뒤풀이는 팀 막내가 부담했다. 서울행 밤열차 차창밖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가로등 불빛들이 우리를 전송해 주었다.

폐선 된 옛 철교와 이설된 새 철교가 나란히 건너는 두물머리 북한강

                       < 2023년11월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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