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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아주 조촐한 가족송년회

단상

by 솔 뫼 2023. 12. 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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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매 자랐지만 막내 동생과 단 둘만 오붓이


12월29일 아침 서울동쪽의 햇님! 계속되는 흐림과 눈-비 예보로 이 모습이 올해의 마지막 햇님이 되었네요.


송년회라고 하면 의례히 여러 사람들이 만나 왁자지껄 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습이 떠 오르지요? 사실 저도 그렇게 해왔고 최근에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 아주 조촐하게 송년 점심을 하고 집에 와서 멍 때리며 올 한 해를 반추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너무 조용했지만 그 대신 매우 깊고 정겨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술을 안 마신 것도 아닙니다.  비록 막걸리였지만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셨으니까요.

제가 자주 올라 아침 운동을 하는 한강변 개나리동산 응봉의 일출 모습!


저는 경상도 작은 고을의 산촌에서 가난했던 부모님의 5남1녀 중 넷째 아들로 자랐습니다.  형님 세 분 중 두 분은 하늘에, 한 분은 病床에 계십니다. 그리고  홍일점인 여동생은 사는 곳의 거리는 멀지 않지만 출가한 탓에 현실적으로 좀 멀리 지내고 있지요.


그래서 한 해를 불과 이틀만 남겨 둔 어제 막내 동생과 만나 닭 한마리에 칼국수, 막걸리 마시며 술잔에 혈육의 정까지 듬뿍 담아서 담소했지요! 막내도 이젠 은퇴를 하고 연금에 의지해 초로의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손녀도 둘이나 보았고요. 다만 두 아들 중 막내가 아직 미혼이라 태산 걱징이랍니다. 그런 면에선 저랑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셈이네요. 저도 작은 딸이 결혼해 손녀를 안겨 준 바람에 할아버지가 되긴 했지만 큰 딸은 미혼이니까요.

어쨌든 우리 형제는 왕십리역 근처의 비교적 한산한 음식점 닭한마리집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가내의 대소사와 지나 간 날들에 있었던 부모 형제들과의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그리운 추억담들을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술을 저보다 훨씬 잘 마시는 '대한해병대' 출신 동생이 취기가 상당히 올랐을 때 쯤 우리는 일어났지요. 동생은 가지고 나온 우리나라 전통명주 <진도홍주> 한 병을 저에게 선물하고 갔습니다. "교우 관계가 저보다 훨씬 폭이 넓은 형이 갖는 게 더 유용할 것 같아서 갖고 왔다."고 했습니다. 저도 동생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이 고급 술을 사용할까 합니다.


저는 동생에게 제가 갖고 있던 여벌 등산화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근교 산엘 자주 올랐는 데 동생의 등산화가 좀 낡아 보였거든요. 오늘 내가 준 신발도 좀 오래 된 데다 세탁도 안 한 채여서 미안하기 짝이 없네요. 그렇지만 가죽제화여서 튼튼하고 발이 편해 괜찮은 신발이긴 합니다. 헌 신발을 주어도 흉허물이 안 되는 건 우리가 우애좋은 형제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새해에도 자주 산에 오르자는 무언의 약속을 하며 헤어졌습니다.

지난 여름, 7월3일 동생과 함께 올랐던 불암산 정상에서!


                      <  2023년12월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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