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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들의 수리산 등산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1. 5. 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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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정상에 선 다섯 할배

 

수리산 정상 태을봉 표지석에 둘러선 중학 동창 할배들

 

철부지 시절의 동무들이 가장 격의 없고 정답다고 한다.

특히 코흘리개 초등학교나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입고 함께 공부했던 중학교 동창들이라면 그 정의 깊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이런 친구들이 있고, 또 이들과 함께 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조그만 시골 읍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 즐거운 생각에 싸여있다. 중학교동창 네 명과 매달 한 두 번씩 등산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의 작은 읍에서 왔기에 서울에 있는 나의 동창생은 겨우 40명 정도다.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더욱 깊은 정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데 70을 넘긴 초로에 들고 보니 그들 중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불과 일여덟 명뿐이다. 산에 못 가는 이유야 많겠지만 체력 등 건강상의 문제가 가장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다섯이 주기적 산행을 즐길 수 있음에 마음 깊이 감사할 뿐이다.

 

 

 

우리들이 오르는 산은 서울 근교나 경기도에 있고 전철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높이도 해발 500∼650m 내외의 그다지 높지 않은 곳들이다. 물론 산에 따라 난이도는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 아주 험하거나 어려운 힘든 코스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산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어르신들이 대단하시다’는 말들을 건네곤 했다. 그들이 우리들보다 조금 연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6월에 찍은 붉은 매미충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은 나무들(위)과 애벌레 모습(아래)

 

지난5월3일 우리들 5인의 할배 동창들은 안양의 수리산에 올랐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데다 연두 빛 신록이 아름다워 산행하기에 아주 좋았다. 특히 지난해 극성을 부렸던 붉은 매미충 애벌레들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아 금상첨화였다. 제발 올해는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작년6월 초순 이 산에 왔을 때 보았던 끔찍했던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날 우리들은 넓은 수리산의 남쪽 사면 전체의 나뭇잎을 벌레들이 갉아먹은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네 번째 잠을 자고난 누에들이 던져 준 뽕나무 잎을 다 갉아먹어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흉측한 애벌레들은 나무는 물론이고 풀잎과 길바닥, 심지어 벤치위에까지 기어 다니고 있었다(앙상한 나무 모습과 벌레모습은 작년의 풍경이다). 작년 그때보다 아직 한 달쯤 이르지만 올해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된다.

 

 

 

전철을 이용하는 가장 일반적 수리산 산행은 서울지하철4호선 수리산역에서 시작한다. 우리들도 오전10시 수리산역에서 만나 걸었다. 역 근처의 관광명소 철쭉동산은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폐쇄됐다. 우리들은 먼발치에서라도 철쭉을 볼까 해서 그쪽으로 갔지만 꽃은 이미 다 지고 철쭉 잎만 푸르렀다. 철쭉동산에서 수리산 슬기봉 가는 길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평탄하고 숲도 무성해 걷기에 아주 좋았다.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새로 쏟아지는 맑은 햇살을 벗 삼아 우리들은 걸었다. 평일이어서 산책객이나 등산객도 많지 않았다. 도중에 만난 우리 또래쯤 돼 보이는 여자에게 부탁해 기념사진도 찍었다.

 

 

 

바쁠 일 없는 초로들이라 잔등에 땀이 베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걸었다. 그런 속도로 약20여분을 더 올라가니 평탄한 길은 끝이 났다. 가파른데다 돌들이 많은 길이 앞을 막고 있었다. 수리산이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리는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발밑을 조심하면서 한 발, 또 한 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차면 쉬었고 목마르면 물 마셨다. 무성해지는 초록의 잎들 사이로 보이는 전망이 정말 좋았다. 온 세상이 초록의 물결에 일렁이는 듯 느껴졌다. 슬기봉 바로 아래 널따란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눈 아래엔 산본 신도시일대의 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청계산에서 이어지는 백운산 능선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등산객이 우리들 다섯을 카메라에 멋지게 담아주었다.

 

 

슬기봉 아래서 바라본 태을봉과 능선길
슬기봉아래 데크에서 바라 본 건너편의 수암봉

 

숨고르기를 마치고 10여분 더 올라가 슬기봉에 도착했다. 수리산은 슬기봉을 기준하면 북쪽으로는 태을봉, 서쪽으로 수암봉이 있다. 슬기봉 정상엔 군사시설이 있어 바로 아래 설치된 나무 데크를 통해 수암봉으로 갈 수가 있다. 태을봉은 데크에 오르지 않고 북쪽으로 난 능선 길을 가면 된다. 우리들은 태을봉으로 갔다. 이 능선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여러 번 교차된다. 또 가파르고 긴 나무계단도 4∼5개 있고 험한 바위를 타고 넘거나 비껴 가야한다.

 

 

 

이렇게 험한 구간이지만 능선 좌우에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조망이 절경이다. 슬기봉과 태을봉까지 거리의 중간쯤 되는 평평한 곳에서 준비해 간 먹을거리들을 펼쳐 놓고 점심을 즐겼다. 한 바탕 땀 흘리고 난 후라 정말 일미였다. 두 통의 막걸리와 한 병의 소주 반주도 맛과 흥을 더해주었다. 신선이 뭐 별것일까 하는 기분으로 먹고, 마시고, 쉬었다.

 

 

떡, 술, 과일, 달걀, 라면으로 차린 멋진 산상의 점심상.

 

산상의 신선놀음을 끝낸 우리들은 다시 계단을 오르고 바위를 돌아 태을봉 근처의 전망대에 올랐다. 느린 산행이었기에 오후의 해가 어느새 서쪽 산 가까이 기울고 있었다. 기우는 햇살을 카메라에 담고 태을봉에 있는 표지석에서도 기념촬영을 했다. 태을봉이 슬기봉보다 좀 높다고 한다. 그렇지만 수리산의 정확한 높이는 474m, 475m, 488m로 다르게 표기돼 있어 알 수가 없다.

 

 

태을봉 가는 능선길을 가로막아 버티고 선 바위

 

태을봉을 떠난 우리들은 관모봉을 거쳐 경부선 명확역으로 하산을 했다. 이 길은 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정말 가팔라 거의 급전직하(急轉直下)라고 할 수준이다. 최근에 설치된 나무계단이 관모봉 근처엔 조금 있었다. 그렇지만 계단이 끝나는 곳부터는 발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경사가 심한 길을 장시간 내려 오다보니 초로들의 무릎이 고통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한 경사 길을 한 시간정도 걸려 내려왔다. 수리산역을 출발한지 7시간 만이다.

 

 

 

명학역 근처의 먹자골목을 10여분 헤맨 후 깔끔한 김치찌개 집에 앉았다. 코로나19 방역 거리두기를 피할 수가 없어 둘과 셋으로 떨어져 앉았다. 두부와 돼지고기를 추가로 넣은 찌개와 술 한 잔의 멋진 조화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맛있고 신나는 뒤풀이로 저녁식사를 하고서 어둠이 깔리는 시각 열차에 탔다. 70대 할배들의 멋진 하루는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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