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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에 올랐다

등산이야기

by 솔 뫼 2021. 6. 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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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에서 신선놀음 하다


산은 옛날 그대로인데 산길은 딴 길 같았다. 넓어졌고 곧아졌고 그 많던 자갈들도 사라졌다. 그렇게 달라진 길 곳곳엔 천연소재로 만든 멍석 같은 것이 덮였다. 경사가 심한 곳엔 계단식 나무 데크가 설치됐다. 뿐만 아니라 정상부근 능선의 급경사 구간들엔 돌계단이 깔렸고 길 양쪽엔 밧줄로 엮은 튼튼한 손잡이까지 가드레일처럼 처져있었다. 단지 변하지 않은 것은 산의 높이와 울창한 수풀, 그리고 팔당호와 한강을 낀 수려한 자연경관뿐이었다.


지난 6월25일 무려 3년4개월 만에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黔丹山)에 올랐다. 한강과 팔당호를 내려다보는 정상의 높이가 657m인데 한성백제 시대 위례성의 진산이었다고 한다. 무덥고 잔뜩 흐려 장마철 같은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불시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의나 우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나도 비닐우의를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섰다.


서울지하철5호선이 최근 하남까지 연장된 바람에 나는 검단산 등산로 근처까지 40여 분만에 갈 수 있었다. 그전엔 잠실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또 약1간30분쯤 걸렸던 곳이다. 당초엔 이날 다른 산행이 예정돼 있었지만 그게 취소돼 ‘꿩 대신 닭’잡는 기분으로 나선 단독 산행이었다. 준비물은 물 한 통과 컵라면 1개, 토마토 1개, 달걀2개, 잘 익은 살구 다섯 개 뿐이었다. 그 외에 급경사 구간이 많은 산이기에 스틱도 챙겼다.


지하철5호선은 강동역에서 하남검단역행과 마천역행 노선이 둘로 나뉘어 열차가 교대로 지나간다. 하남검단 역은 최근 개통된 역사여서 규모가 크고 깨끗했다. 그리고 근처에 한강이 있어 무척 깊다. 그래서 대형 에스컬레이터를 세 개나 바꿔 타야 지상으로 나온다. 하늘엔 옅은 안개와 구름이 끼었지만 햇살이 뜨거웠고 바람은 거의 없었다. 지하철 출구에서 똑 바로 가면 검단산 아래에 도착할 수가 있다. 마침 배낭을 맨 사람들이 몇 사람 보여 말없이 그들을 따라서 걸어갔다. 똑 바로 가다 넓은 개천을 건너니 바로 등산로가 시작되는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애니메이션고교에서 현충탑, 곱돌약수터,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오를 생각이었다. 이 코스는 좀 길지만 경사가 완만한 구간이 길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앞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그 곳에서 산길로 들어갔다. 조금 계속되던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천연섬유소재로 된 멍석 같은 것이 깔린 평탄한 산길이 나왔다. 울퉁불퉁한데다 자갈투성이였던 길이 평평하게 바뀌어 있었다. 우거진 숲속이라 매우 시원한데다 평탄한 길이어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한참을 가도 이런 길이 이어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몇 차례 가본 현충탑 길은 조금만 들어가면 평지길인데도 나무 데크가 길게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치는 등산객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없는 외길이었기에 계속 걸었다. 그렇게 가다보니 경사가 심해지는 곳에서 두 사람이 서서 쉬고 있었는데 거기엔 규모가 큰 산소가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당초 계획했던 것과 다른 길로 올라 온 것을 알았다.


그 산소는 조선말기의 유명한 개화사상가 이자 정치가였던 유길준(兪吉濬)선생 유택이었다. 이 길로 하산하려했는데 반대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예기치 않은 일들이나 계기로 길이 바뀌는 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아는 산길이라 계속 올라갔다. 이 코스는 여기서부터 경사가 급격히 심해진다. 또 능선에 올라서도 정상까지 가파른 경사구간을 여러 곳 지나야 한다. 이런 능선 길은 상당히 오래 계속된다.


능선 길엔 가파른 돌계단과 나무 데크 구간이 번갈아 나타난다. 중간 중간 평평한 길이 나오지만 곧 급경사길이 가로 막는다. 그 대신 이 능선 길은 날씨가 맑으면 팔당호와 한강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주변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각광을 받는다. 나도 이 멋진 경관이 좋아 땀 흘리며 이 산을 찾곤 했었다.


그렇지만 계속 되는 급경사 길이라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숨도 찼다. 수시로 서서 숨 고르고 물마시며 걸었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졌다. 흘러간 세월만큼의 무게가 내 몸에 더해진 탓이리라. 게다가 이날은 안개와 구름이 끼어 주변 경관마저 뿌옇게 가려 아쉬웠다. 또 울창하게 우거진 나뭇가지들도 경관을 가리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이 턱에 닿을 무렵 정상에 도착했다. 산행시작 후 한 시간 반쯤 걸렸다. 먼저 올라와 있던 묘령의 여자등산객에게 부탁해 정상표지석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비록 뿌연 운무에 가렸긴 했지만 팔당호와 양수리, 그리고 미사리로 흐르는 한강물이 멋지게 펼쳐지고 있었다. 강 너머에선 운길산과 예봉산, 예빈산의 웅장한 모습이 나를 즐겁게 했다. 장엄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경관을 내 글재주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정상 바로 옆 숲속 공터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윗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준비해간 먹을거리들을 펼쳐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다만 이날엔 홀로 한 산행이라 좋아하는 막걸리는 가져오지 않았다. 잘 익은 토마토의 단물과 살구의 새콤달콤한 맛으로 막걸리를 대신했다. 땀이 마르고 피로가 풀린 데다 시원한 바람까지 맞으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쯤의 신선놀음을 끝내고 당초 오르려고 계획했던 곱돌약수터와 헬기장을 지나 현충탑이 보이는 길로 내려왔다. 이 코스는 정상에서 약수터까지는 짧지만 급전직하의 급경사에다 돌계단 길이다. 발밑에서 한 눈을 떼기가 겁이 날 정도여서 조심조심 내려와 곱돌약수터에서 흐르는 약수에 손을 씻었다. 거기서부터는 평탄한 길이고 더 내려오면 나무 데크까지 깔려있다. 시발점이라 좌석이 많이 비어있는 지하철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피로를 씻어준다. 그렇게 해서 2시간20분에 걸친 산행이 끝났다. 이날 걸은 거리는 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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