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발로 오르며 즐거움 만끽
4년 여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바위길 산행이었지만 그 길엔 즐거움만 넘쳤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길, 곳곳에 버티고 선 절벽같은 암벽, 힘들게 하나를 오르니 또 앞을 가로 막는 낭떨어지.
길은 험했고 흐르는 땀에 온 몸과 옷이 흠뻑 젖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옅은 구름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더웠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힘들면 쉬었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봉아래의 주눙선에 올라갔다.
중학교 동창 다섯이 만나 북한산의 비봉을 향해 바위가 많은 산길을 걸었다.
6월22일 오전10시30분 서울지하철6호선 독바위역에서 만나 산행을 시작했다.
일행 중 셋은 가파르다고 알려져 있는 이 코스가 초행이라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급하게 올라 갈 이유가 없는 산행이기에 느긋하게 쉬어가며 올랐다.
불광사를 지나면서 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바위길이라 더욱 힘들게 느껴젔을 것이다.
쉬기를 반복하며 오르다 널찍한 공터 숲에서 숨고르며 간식하고 힘을 내서 올랐다.
가파른 바위길은 틈을 주지 않고 이어져 초행길인 세 노인들을 괴롭혔다.
이 길에 익숙한 나와 다른 한 친구는 완급을 조절하며 앞과 뒤를 보아주며 올랐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발아래 펼쳐지는 시원하고 멋진 조망은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중간쯤 오르니 구파발에서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중간 지점에 닿았다.
가까운 곳에 규모가 꽤 큰 국령사가 보였고 계곡 너머로는 인수봉과 백운대로 이어지는 암벽이 펼쳐진다. 정말 장관이었다.
능선길은 더욱 경사가 심했고 어떤 곳은 두 손까지 써야만 오를 수 있을 만큼 가팔랐다.
매달리다 시피 하며 암벽을 오르고 나니 얼마쯤 평평한 길이 이어지는가 했는데 곧 이어 내 키의 두 배쯤 되는 높이의 낭떠러지가 나왔다.
그 낭떠러지를 조심조심 내려가 다시 맞은 편의 절벽같은 오르막에 봍어서 올라야 했다.
향로봉 조금 못 미친 평평한 바위 위엔 흙이 다 씻겨나가 없어져 뿌리가 통째로 드러난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소나무의 강인함에 신비와 숙연함이 느껴진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고 숨도 가빠져 오르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거북이처럼 올랐다.
토끼인들 이처럼 경사심한 바위길에서는 거북이보다 빠르게 오를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토끼나 거북이들보다는 빠르게 올라가 그들과 경주했다면 이겼을 것 같다.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써가며 산을 탄 덕에 우리는 세 시간만에 북한산 주능선에 올랐다.
비봉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이는 향로봉 아래의 너럭바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자가 준비해 간 먹을거리들을 꺼내 펼쳐 놓으니 먹음직스런 상이 채려졌다.
감자떡, 인절미, 김밥과 라면, 달걀, 고기와 두부를 넣은 찌개에 방울 토마토까지.
여기에 한 통의 막걸리와 작은 팩소주 두개가 더해졌으니 나무랄데 없는 상차림이었다.
예보됐던 소나기가 퍼붓는 모습들이 여러 군데서 보였지만 우리가 있는 곳엔 내리지 않았다.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벗삼아 우리들도 한 번은 '술!' 또 한 번은 '산!'을 외치며 먹고 마셨다.
건너편 비봉에 홀로 올라선 붉은 배낭을 맨 등산객이 우리를 향해 부럽다고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호연지기를 부리며 산상 오찬을 마친 다섯 노인들은 구기동 이북5도청쪽으로 내려왔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산길이 끝나고 고급주택들이 즐비한 구기동 골목길로 내려오니 계곡가의 밤나무에 가지가 부러질 만큼 많이 핀 하얀 밤꽂들이 야릇한 냄새를 할배들의 코에다 쏘아댔다.
설마 우리를 밤꽃향에 예민하다는 할매들로 착각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 구기동 삼거리까지 내러 온 할배들은 두부김치 안주에 한 잔의 막걸리로 뒤풀이 하며 바위길에서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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