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 길 넘으며 향수에 젖고
계곡물 소리 맞춰 노래도 불러
서울 북한산을 가로지른 우이령길을 걸었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깔려 울툴불퉁한 길입니다. 경사가 완만해 소달구지 덜컹대던 들판의 신작로와 시골마을 앞길을 닮았습니다. 제가 초중고 12년을 걸어서 다녔던 고향길과도 같았습니다.
올해 봄은 하루가 멀다하고 비 뿌리며 흐리고 바람 불었습니다. 그 와중에 하루 반짝 개였던 3월27일 고향 친구들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다섯 사람이 함께 우이령길을 걸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매달 걷는 모임인데 올해 두 번째 만났습니다. 폭설과 혹한이 겹쳤던 1월엔 건너뛰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선후배 동료로 일하다 헤어진 후 거의 30년 만에 뭉쳤습니다. 맨 위 연장자와 맨 아래 연소자는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납니다.
서울지하철3, 6호선 연신내 역에서 오전11시에 만나 시내 버스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우이령길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200m쯤 가면 교현탐방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우이령길 통행은 미리 인터넷 등으로 신청해 허락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3월4일부터 주 중의 평일에는 자유통행으로 바뀌었답니다. 또. 단풍철인 9~11월엔 종전대로 사전예약해야 합니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비포장 흙길입니다. 안내판에는 서울의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 4.5km가 비포장길 이랍니다.
일행 중 이날 처음 온 사람도 있고 수 차례 넘은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신이 났습니다. 앞에는 북한산 능선의 준령들이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왼쪽의 계곡에선 눈 녹은 물이 창해를 향해 달리느라 졸졸 봄 노래를 합니다. 듬성듬성 보이는 봄꽃들도 따스한 햇살에 예쁘게 웃고 양지쪽 풀잎들은 초록빛을 더해 가고 있었습니다. 일행 외엔 걷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산속의 고요함이 모두 산길에 깔려 있었습니다. 유달리 흥이 많은 연장자는 벌써 노래를 하며 일행의 합창을 독려했지요,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한지 10여분 만에 산 능선 위로 우뚝 솟은 멋진 바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네 차례나 이 길을 다녀갔지만 처음엔 그게 무슨 바위인지 몰랐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닮은 우람한 바위 두 개가 붙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파란 하늘을 등에 진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길은 구불구불 평탄하게 이어졌고 계곡물의 노래소리도 계속 들렸습니다. 그렇게 20분쯤 더 걸으니 능선 위의 바위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북한산의 상징과도 같은 오봉능선의 바위 5개 중 앞쪽 두 개였습니다. 안내판에는 원님의 예쁜 딸을 얻기 위한 시합에 참가한 한 마을 총각 다섯이 맞은편 능선의 바위들을 던져서 생겼다는 전설이 씌어 있었지요. 안내판 근처의 주차장에서 우리는 오봉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고 떡과 빵으로 간식을 하며 쉬었습니다.
마감 시간이 없는 인적 드문 산길에서나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주차장을 지나면 경사가 조금 심해지지만 자락길 수준이라 힘들진 않았습니다. 마냥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봄경치와 오봉의 위용, 북한산 주능선 준령들의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30여 분을 더 올라가 오봉의 다섯 바위가 모두 잘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대 앞에는 1966년6월부터 17개월에 걸친 사방사업 기념비가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돌판에 음각된 내용은 당시 돈으로 현금 16만2000원, 양곡 10만7500kg(80kg기준 1,344가마니)을 들여 사방사업을 했답니다. 2009년 기준가격 약4억9800만원 이라네요. 공사비를 미곡 현물로 기록한 게 이채롭습니다.
마침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일행 셋 중 한명 뿐인 남자에게 부탁해 기념 촬영도 했습니다. 멋진 절경에 취한 우리 쪽 연장자가 낙화유수, 외나무다리 등 구수한 옛노래를 목청껏 불러 갈채를 받았답니다. 정말 놓치기 아쉬운 멋진 자연 무대위의 공연이었습니다. 그는 또 경청해 준 세 관객에게 감사(?)의 표시로 팁까지 주어 공연의 재미를 더욱 돋우었습니다. 걷는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겠지요?
그러다보니 우이동 쪽에 예약해 둔 음식점과의 약속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 두 사람이 먼저 우이령을 넘어 달려 내려가 사정을 얘기해 놓고 뒤늦게 쫓아온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담백하고 맛있는 한우설렁탕, 두툼하게 말은 계란말이에 막걸리 반주로 늦은 점심을 즐겼지요. 그리고 종업원의 오후 휴식시간 때문에 음식점 근처의 찻집에 들렀습니다. 거기에선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가 정면으로 보였습니다. 전망 좋은 그 찻집에서 우리는 여자들 못지않은 수다로 맘껏 뒤풀이 후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헤어졌습니다.
< 2024년3월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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