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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꽃길을 가다

사진 소묘

by 솔 뫼 2024. 5. 9.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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鐘닮은 꽃송이들이 아래로만 향해

꽃말이 ‘겸손’인 작고 향기로운 꽃

 


 
작은 종을 닮은 하얀 꽃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길을 걸었다. 새로 돋아난 파란 잎들 아래에서 가지를 따라 소복소복 조롱조롱 매달린 꽃들이 향기를 풍기고 있어 길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자주 걸었던 길인데 이렇게도 이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많은 줄은 몰랐다. 좀 과장한다면 온통 이 나무들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절정을 이룬 작고 하얀 꽃들이 벌써 길에도 눈처럼 하얗게 떨어져 있었다. 이런 비경의 꽃길을 일찍 몰랐던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매년 5-6월이면 하안 꽃을 무수히 피우는 그 나무는 때죽나무였다. 하얗고 작은 꽃들이 가지를 따라 조롱조롱 땅을 향해 피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아주 조그마한 종들이 매달린 것 같았다. 이 꽃을 영어로도 스노우 벨(snow bell)이라고 한다. 꽃들 위에는 연두색 잎들이 덮여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하늘을 가린 그 잎새들이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밝은 연두색으로 바꾸어 아래로 내려보내 환상적 분위기를 만드는 숲속이었다.
 


사방은 온통 초록색의 물결로 넘실대고 우리가 걷는 길은 그 물결 사이로 계속됐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가끔씩 물결이 갈라지면 그 사이로 코발트 빛 하늘이 새파란 얼굴을 내민다. 옛사람들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멋진 절경(絶景)을 표현했던 말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고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들이 말한 절경이 아마 이런 경치를 말하는 것이리라.
 


수 많은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이날 연휴 사흘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그야말로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사한 날씨가 펼쳐진 하루였다. 이날은 마침 어버이날이었지만 연휴 기간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흩어진 후인지라 우리 부부 둘만 남은 조용한 날이기도 했다. 전날까지 내린 비가 먼지를 모두 씻어내린 덕에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큼했고 불어오는 바람 또한 무척 선선했다. 계속된 궂은 날씨에 찌부두 해진 기분도 추스를 겸 길을 함께 나섰다.
 


하늘은 새파랬고 햇살은 쨍쨍 빛났지만 바람은 오히려 약간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숲이 울창한 장소를 향했다. 시내버스를 타면 20분쯤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그곳은 서울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다. 가파르지 않고 비좁지도 않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도 있고 물론 각종 화초나 수목들이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 산에 있는 숲길 중 비교적 한적하고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나는 길을 자주 찾는다. 넓은 길에서 살짝 벗어나 바람 소리 새소리를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이날도 우리는 평소처럼 버스에서 내려 산 아래에 있는 잘 정비된 공원을 통과해 산으로 갔다. 화려하게 피있던 벚꽃은 사라졌고 붉은 철쭉도 거의 다 지고 없었지만 신록을 지난 나무들이 초록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공원이다. 공원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에는 키가 큰 아까시아들이 향기 강한 꽃을 하늘에서 깃발처럼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향기속에 색다른 것도 함께 섞여 있었다. 그 향기는 키가 좀 작지만 작고 하얀 꽃을 무수히 피운 몇 그루의 때죽나무들이 내뿜는 향기였다.
 


계단을 오르면 평소엔 사람들만 다니는 2차선 넓이의 포장된 산책로에 닿는다. 그 산책로 또한 무성한 벚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서로 맞닿아 숲 터널처럼 느껴진다. 그 길엔 때죽나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찾아 들어간 숲속의 오솔길에서 우리는 때죽나무 하얀 꽃들, 스노우 벨(snow bell)들의 세계를 만난 것이다. 영어 이름처럼 눈처럼 하얀 종들이 모여서 이룬 꽃동네였다.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때죽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원산이며 높이 10m정도 자라고 꽃은 향기가 강해 향수의 원료, 열매는 머릿기름의 원료나 약재로도 사용되는 나무란다. 나무에 달린 꽃과 길에 떨어져 누운 꽃들이 기막힌 향기로 맞아주는 길에서 즐긴 한 시간여에 걸친 즐거운 숲속 산책이었다. 또한 꽃이 지고 없을 때는 커다란 나무들과 일반 수목들에 가려 그 존재조차 가려져 있던 때죽나무들의 길이기도 했다. 그 때죽나무 꽃 비경 길은 남산자락길 남쪽 구간 국립극장에서 가까운 입구로 들어가면 시작된다.
 

 

<  2024년5월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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