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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하프 마라톤 完走記

수필생활

by 솔 뫼 2024. 10. 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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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가을빛 즐기며 21km달려

포기않고 완주한 내자신이 오히려 뿌듯

 


 장거리 마라톤대회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릴 때는 언제나 기분이 들떠 마음이 설랜다. 몸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지만 ‘오늘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항상 뒤따른다. 개천절인 10월3일 이른 아침부터 서울 강님구 삼성동 봉은사대로는 마라톤을 하러 나온 사람들과 그들의 친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8시10분쯤 서울 지하철9호선 봉은사역에서 내려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서울 강남구청과 미8군사령부가 주최하는 제21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가 이날 열렸다. 나는 이 대회엔 처음 참가해 더욱 마음이 설랬다.
 
출발시간 9시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았다. 주최측이 마련한 무대에선 식전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마라톤대회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기에 출발장소에서 대부분 한 시간 이상 모여 함께 율동을 하거나 준비 운동을 하며 보내게 된다. 그래서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자유롭고 친철하게 손잡고 율동하며 축제분위기를 즐긴다.
 


이날 대회에 정식으로 출전한 사람은 6000명. 그들은 자신들의 체력에 맞춰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에 참가했다. 각 부문은 다시 몇 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장거리 참가자들부터 순차적으로 출발한다. 나는 하프코스의 세 번째 그룹인 C그룹에서 기다리다 달렸다. 나는 지난 25년동안 70차례(풀코스 39, 하프코스 27, 10km 4회)나 마라톤을 했지만 대부분 3대 메이저 언론사나 서울시청이 주관한 대회에만 참여, 대도시의 도심이나 국도에서 경찰의 엄격한 교통통제와 보호를 받으며 달렸다. 그런데 이날 대회는 봉은사 앞 큰길에서 출발해 1km도 채 못 가서 바로 탄천의 산책길로 들어가 계속 양재천과 탄천의 산책길을 달렸다. 이 때문에 전체 구간의 상태를 거의 모른 채 앞선 사람들만 따라서 달려야만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비 뿌리고 종일 흐렸던 날씨가 이날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다. 바람도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어 달리기엔 아주 말맞은 날씨였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큰소리로 환호하며 50여리에 걸친 달리기를 시작했다. 뒤쪽에 섰던 나도 그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코스는 턴천 둔치 산책길로 내려가는 제방의 경사 심한 길로 이어졌다. 시작 직후여서 많은 달림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몰려들기에 자칫하면 큰 사고가 예상됐지만 모두가 속도를 줄여 무사히 탄천 산책길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 산책로 역시 자전거용 길과 보행자용 길이 함께 있는 비교적 좁은 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엔 무척 불편하고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왼쪽엔 한강으로 흐르는 탄천이 맑은 가을 하늘을 반사해 파랗고 머리 위로는 하늘을 가린 4차선 고가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오른쪽 둔치에는 그 고가도로를 받치는 굵고 높다란 교각들이 우리들을 응원하듯 줄을 잇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출발선에서 2km쯤 되는 곳에서 우리들은 탄천과 헤어져 양재천 산책길로 달렸다. 청계산에서 흘러오는 양재천은 이곳에서 탄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간다. 양재천은 폭이 상당히 넓은데 물은 가운데로만 흐르기 때문에 양쪽 둔치 또한 넓다. 그 둔치로 난 산책길은 서울 강남구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다. 잘 정비돼 풀들도 무성하고 곳곳에 쉼터나 꽃밭들이 만들어져 있다. 양쪽 제방, 특히 북쪽 제방길은 벚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봄이면 멋진 벚꽃길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양재천 상류를 향해 다시 5km쯤을 달렸다. 숨도 가팔라지고 종아리도 뻐근해지기 시작했지만 바람이 선선헤 참을 만했다. 하늘을 찌르며 높이 솟은 좌우의 빌딩들도 우리를 따라 달리는 듯 보였다. 2,5km마다 공급되는 생수와 스포츠 음료는 빠짐없이 마시며 달렸다. 함께 달리는 미군 병사들도 많이 보였다. 그렇지만 나처럼 머리 하얗거나 내 나이 또래 내국인은 한 사람도 못 봤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었지만 젊고 날렵한 여자분들도 꽤 많았다.
 
우리는 출발한 후 약7km 되는 곳에 있는 영동1교 근처 반환점에서 양재천을 건너 맞은 편 둔치의 산책로를 하류 방향으로 달렸다. 그곳에 전자식 체크 시설이 있어 참가자들의 배번호에 부착된 전자 칩이 통과시간을 체크 한다. 산책로는 거의 수평이지만 그래도 하류쪽으로 달리니 조금 쉽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른 오전 시간이어서 그늘인 데다 바람을 안고 달려 훨씬 달리기 좋았다. 나는 전체 참가자들 중 거의 끝자락에서 출발했기에 앞서 달려가는 달림이들의 기다란 행렬을 보며 달렸다. 가끔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로부터 “파이팅!. 힘내세요”하는 응원도 들었다. 그 중 어떤 이는 나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고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힘내세요!”라며 한층 다정한 응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내리막처럼 느껴지는 양재천 길을 비교적 수월하게 달려 다시 턴천 합류점에 도착했다.
 


그곳은 출발선에서 12km쯤 되는 지점이다. 1km마다 서 있는 표지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좌회전해야 결승선이건만 애석하게도 코스는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결승선과는 반대인 탄천의 상류쪽 산책로를 한없이 달렸다. 13km 표지판을 기다리며 달려도 달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가끔 불툭 솟은 시설물이 있는 구간은 아예 걸어서 넘어갔다. 숨이 차지는 않았지만 다리는 아프고 장딴지에선 가벼운 통증까지 느껴진다. 파란 하늘과 둔치의 풀속에 가끔 보이는 꽃이나 하얀 억새꽃을 보면서 달렸다. 나는 달리지만 다른 사람이 본 다면 아마도 걸음을 조금 빨리 뛰어놓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그렇게 기다려지던 14km, 15km 표지판도 지나갔다, 15km 표지판 조금 뒤에 다시 두 번째 반환점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선 바나나와 초콜릿이 간식으로 준비돼 있었다. 물을 마신 후 간식은 집어서 50m쯤 걸으면서 먹었다.
 
다시 양재천 근처까지 오니 정말 탈진 직전이 됐다. 달리는 것이나 걷는 것이나 속도에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달렸다. 어쩐지 걸으면 내가 마라톤에서 달리기에게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를 악물고 달렸다. 양재천을 건너니 오른쪽엔 유속이 느린 탄천이 나처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이날의 마지막 표지판엔 19.87km라고 적혔었다. 마라톤의 하프코스는 21.0975km이니 결승선이 1.2km쯤 남았다. 그런데 이 구간이 정말 가장 길고 힘들게 느껴졌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 기분이었다. 숨이 턱에 닿을 만큼 힘들게 느껴질 무렵 이날의 최대 복병을 만났다. 출발 직후 넘어질까 조심하며 달려 내려왔던 그 가피른 경사길을 이번엔 올라가야 했다. 아무리 기진맥진해 힘들어도 안 갈 수는 없다. 나는 달려서 오르기를 포기하고 아예 걸어서 올라갔다. 힘들게 올라가 조금 더 달려가니 오매불망 그렸던 결승선 아치가 반겨주었다.
 


결승선을 지나 대회 주최측이 제공하는 각종 선물과 완주 메달을 받았다.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부탁해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마라톤을 마쳤다. 기록은 2시간38분17초. 작년의 다른 대회의 하프 마파톤 기록보다 6분이 늦었다. 그렇지만 시계도 없이 달렸으니 내 체력대로 달린 셈이다. 그러나 그 기록보다는 <완주한 만75세의 노인>인 내 자신이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힘들 땐 ‘다시 달리나 봐라’며 달렸지만 아마도 나는 또 달릴 것 같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완주의 기쁨을 카톡 메시지로 자랑하며 집으로 갔다.
 

< 2024년10월4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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