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잎이 모두 떨어진 벚나무 길을 걸었다. 하늘을 모두 덮을 만큼 높고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숲속도 지났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 양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벚나무들이 이룬 평평하고 평화로운 길. 그 길은 다른 나무들이 이루어 놓은 무성한 숲속으로 끝간 데 없이 구불구불 계속 됐다. 간밤에 계속 내린 비에 젖은 흙길은 곳곳에 진수렁을 이루어 발밑을 조심하며 걸었다. 길 입구의 안내판엔 ‘세계평화의 숲’이라고 적혀 있었다. 따라서 이 길은 ‘세계평화의 숲길’이 된다.


주말마다 내린 가을비가 이날도 예외 없이 내렸다. 그렇지만 새벽까지 내리다 늦은 아침부터 그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 그친 토요일(10월18일) 옛적 사우들 3명과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숲길을 걸었다. 인천공항이 가까운 영종도 세계평화의 숲속으로 난 산책로다. 공식명칭은 세계평화의 숲을 싸고 걷는 영종도 둘레길‘이며 우리는 그 길의 제1구간 일부 약4km를 걸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리가 조금 들리는 곳도 있지만 아주 조용하고 평탄해 노약자들이 걷기 편한 길이다.


멀리 부산에서 비행기로 올라온 사우의 편의를 위해 우리들은 인천공항철도 김포공항역 플랫폼에서 오전11시40분애 만났다. 거기에서 함께 기차를 타고 인천 앞바다를 건너 영종도 운서역에서 12시15분쯤 내려 걸었다. 약5분쯤 걸어 역 광장앞 대로를 건너면 숲길은 바로 시작된다. 옛 시절 썰물 때만 드러나던 영종도와 삼목도 용유도 주변 광활한 갯펄이 인천공항 건설로 매립되면서 생긴 곳에 조성된 숲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곳엔 제비가 많아 옛날엔 자연도(紫燕島)로 불리다가 숙종 이후부터 ’긴 마루‘란 뜻을 가진 영종도(永宗島)가 됐다고 한다.
길 주변엔 높은 산이 없고 땅은 평평한 흙이다. 우리가 걸은 길의 가로수인 벚나무들은 수령이 젊어 키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길을 몇 차례 다녀본 사람은 만개한 벚꽃길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했다. 안내판 설명에도 벚꽃 자랑이 있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해풍 등의 영향으로 서울지역보다 개화가 늦어 서울에서 놓친 아름다운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서울의 벚꽃이 다 진 뒤에 피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벚꽃이 활짝 핀 맑은 봄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걸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잎이 떨어져 앙상한 벚나무길은 단조로웠다. 땅은 빗물을 잔뜩 머금은 데다 조금 낮은 곳은 발이 빠질 정도이거나 그보다는 덜해도 물이 괴어서 길옆 풀밭으로 피해서 걸었다. 주변의 나무들은 단풍이 들지 않아 여름철처람 푸르렀다. 단지 뱀이 기어가듯 숲속을 구불구붛 휘저으며 가는 숲길만이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숲길에 들어선 지 30분쯤 걸으니 천정이 높진 않지만 꽤 긴 터널이 나왔다. 숲 입구에서 1.5km란 안내판이 있었다. 이 터널은 자동차 도로(영종대로)로 갈라진 숲 양쪽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터널을 지나니 숲의 나무들이 메타세쿼이아가 많아졌다. 도로에 물 괸 곳도 적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변화나 차이는 없었다. 10분쯤 걷다 산책로 옆 유수지공원 호수에서 전망용 쌍안경으로 새들을 살펴봤지만 별로 보이지 않았다. 관광객에게 부탁해 넷이 기념촬영을 하고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가니 쉼터가 있는 널찍한 잔디밭이 있었다. 오후1시20분쯤 된 시각이라 우리는 준비해 간 간식을 했다. 간식 후 조금 더 가니 맨발 걷기용으로 곱게 다듬어진 곧은 길도 나왔지만 길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날 맨발로 걷는 사람 4-5명을 만났지만 정작 이 구간에선 맨발로 걷는 사람이 없었다.


맨발 길을 지나 20여분동안 우리는 울창한 숲도 지났고 초입의 벚나무들보다 오래된 벚나무들이 도열하듯 늘어선 길도 걸었다. 도중에 3km지점 안내판이 있었고 근처엔 이름 모를 새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자동차들이 전속력으로 쌩쌩 달리는 도로가 보였다. 영종도 순환북로이자 공항제2터미널로 가는 길이다. 도로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도로 위를 가로질러 해안으로 나갈 수 있는 고가다리에 올라가 인천 앞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을 구경했다. 구름이 잔뜩 끼어 하늘과 바다 모두 하얀 가운데 섬들만 검푸르게 보였다. 공항쪽 삼목 항에서 바다 건너 신도로 이어지는 신시대교는 완공직전 상태란다. 신도 너머엔 시도, 모도, 장봉도가 있으며 이 섬들 너머 수평선 끝부분에 강화도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다시 숲속으로 들어온 우리는 숲길을 지나 자그마한 연못에 도착했다. 길쭉하게 생긴 못 가운데와 양 옆에 나무 데크 로드가 설치돼 있었다. 아직 채 시들지 않은 무성한 연잎들이 미풍을 맞으며 우리들을 환영하듯 한들거렸다. 기념촬영을 하고 데크를 나오니 숲길은 끝났다.



오후2시10분쯤 도착한 숲의 출구에 있는 안내판에 적힌 <세계평화의 숲이 특별한 이유>가 나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았다. 요약하면 서해의 소금 바람과 공항로의 먼지와 소음을 막아주고, 고라니와 꾀꼬리 백로 등 다양한 생물을 품어 공존시키며, 벚꽃 개화가 늦어 서울에서 놓친 아름다운 벚꽃 절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어 각종 후원기금과 인천공항 모금함 등을 통해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간다고도 했다.


숲을 나온 우리들은 멋지게 조성된 주택지에 잘 지어진 대형 주택들을 지나 운서역으로 갔다. 그리고 역에서 5-6분 거리에 있는 해물탕집에서 맛있는 해물찜으로 늦은 점심을 포식했다.
< 추신 > 경사가 전혀 없는 평지여서 걷기에 아주 좋은 길. 벚꽃 폈을 때는 물론이고 눈쌓인 겨울에도 운치가 있을 길입니다. 서울역에서 50여분이면 운서역에 도착할 수있어 접근성도 아주 좋습니다.
< 2025년10월19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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