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월16일 1구간 : 강화터미널-갑곶돈대-용진진 >


태초부터 강이라 하기엔 너무 넓고 바다라고 하기엔 좁은 물길이 있었다. 그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본토와 섬으로 떨어져 수천 년을 사이좋게 이어 오는 두 땅이 있다. 하나는 본토의 경기도와 황해도, 다른 하나는 본토가 수용하지 못해 뒤집어쓴 수많은 아픔까지 간직한 섬 강화도다. 하도 가까워 고요한 시간이면 건너편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거리이지만 오랜 세월 배를 타야만 오갈 수 있었던 곳. 그러나 요즘은 차량과 사람이 겸용하는 두 개의 다리와 한 개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연결돼 있다. 그래서 섬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가까운 땅이 됐다.

지난4월16일과 17일 그 섬의 곳곳을 이어주는 길을 걸었다. 4년전 동해안 해파랑길 약 800km를 함께 걸었던 친구들 세 사람이 이번에도 동행했다. 2010년 조성된 이 길의 이름은 강화나들길! 강화군에 따르면 총거리 310.5km에 20개 대구간으로 이어진다. 각 구간은 거리에 따라 몇 개의 작은 구간으로 구성된다. 강화나들길은 해안으로만 계속 이어지는 해파랑길이나 남파람길과 달리 강화도 해안과 내륙을 오가며 몇 곳에 떨어져 있고 부속섬 교동도와 석모도에도 한 두 개의 코스가 개설돼 있다.
게다가 20개 대구간의 일련번호도 산재돼 지도로 보면 찾기에 상당한 수고가 요구된다. 예를 들면 해안으로 난 제2구간은 제3구간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고 엉뚱하게 제8구간으로, 8구간은 20구간과, 20구간은 7구간과 이어진다. 또 9구간과 10구간은 교동도애, 19구간은 석모도에 있다. 그런가 하면 3구간과 4구간은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강화도의 중앙에 있어 바다에선 멀다. 어째서 이렇게 번호가 붙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4년만에 다시 뭉친 일행 넷은 각각 집에서 출발, 이날 오전10시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기념촬영 후 안내지도와 길 곳곳에 설치된 안내표지를 따라 강화읍성 동문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이마가 따가울 정도였다. 이 동문 현판엔 한자로 강도동문(江都東門)이라고 적혀있었다. 고려때부터 여러 차례 보수와 중건을 거듭했던 이 문은 조선 말기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크게 허물어졌었지만 2004년 복원된 문이다. 나들길은 성문 밖에서 문을 통해 안으로 이어진다. 기록을 보면 동문과 북문은 1226년 축성된 강화산성의 문으로 건축됐다. 문을 들어서면 나들길은 강화읍에 있는 각종 유적과 사적, 사적지 등을 두루 거치도록 이어진다. 그 속엔 개화기에 최초로 설립된 데다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 강화성당, 몽고 침략에 맞선 항몽(抗蒙)과 구국의 혼이 스린 고려궁지, 무력하기만 했던 조선25대 임금 철종이 초립목동(草笠牧童) 시절 살았던 집터에 지어진 용흥궁, 문이 닫혀 담장 너머로만 보고 지나친 강화향교 등이 촘촘히 모여 있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둘러보려다 길을 잘 못 들어 되돌아 나오기도 하면서 걸었다. 12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햇살은 뜨거웠고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그리고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은 길 안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귀 어두운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몽고의 요구로 부서졌다 복원된 후 청나라군과 프람스군이 또 불태운 궁궐터에 다시 몇 채의 건물이 지어진 고려궁지에서 기념사진 한 컷 찍으며 약소국의 서러움과 슬픈 역사를 실감했다.



시가지의 유적지들을 지나 산길 입구에 번듯하게 정비된 샘터에서 과일과 카스텔라, 과자 등으로 간식을 하며 쉬었다. 철철 넘쳐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맛에 힘을 얻고 산길로 들어섰다.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나무들이지만 숲은 울창했다. 강화산성 안쪽 경사면에 조성된 숲속으로 난 길은 강화산성 북문까지 이어진다. 10분정도 걸어 북문인 진송루(鎭松樓)에 도착했다. 북문을 지나 산성길을 15분쯤 가니 널따란 공터에 키가 작은 노란 야생화가 지면에 융단처럼 넓게 피어 있었다. 흔적만 남은 강화산성 북장대 터란다. 장대도 사라지고 지키던 병사들도 없었지만 침략자를 경계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은 공터 곳곳에 남은 흔적들에서 느껴진다.




공터를 지나 산성길을 따라 30분정도 완급을 달리하는 산성의 경사길을 걸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연미정에 도착했다. 13세기 초반 고려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미정은 정자 앞 바다를 흐르는 물길이 제비 꼬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데다 서울을 오가는 배들이 반드시 지나야 했던 해상수로의 요충지여서 과거엔 이곳에 월곶나루가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 숙종대에 월곶돈대를 쌓았다. 연미정은 월곶돈대 구역 안에 있는 데다 경치가 좋아 강화10경의 하나로 꼽힌단다. 좁은 바다 건너에는 북한의 개풍군 일대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바로 앞에 보이는 데도 오가지 못 하는 이 아픔 또한 강화도는 감내하고 있었다. 앞을 흐르는 물길은 여전히 제비처럼 빠르게 흐르지만 사람은 이제 오가지 못하는 서러운 장소다. 정자 옆에 홀로 우뚝 선 고목 느티나무는 정묘호란 때는 청국과의 굴욕적 강화조약 체결 모습도 지켜봤을 것 같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고목은 더 외롭게 느껴졌다.




연미정에서 큰 길로 나서니 오후2시였다. 그런데 주변에선 음식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몇 곳을 찾아 연락했지만 휴업 중이거나 휴식시간이 돼서 식사가 안 된단다. 수염이 대자라도 먹어야 산다고 했는데 굶으면서 걸을 순 없는 법. 길 왼쪽에 높다랗게 쳐진 튼튼한 2중 철조망을 따라 하염 없이 남으로 걸었다. 북한과 근접한 지역이기에 설치된 이중의 강력한 구조물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철조망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가 길가의 편의점 하나를 만나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컵라면에다 한잔의 막걸리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으로 다시 힘을 얻었다.



이 길은 강화도 북쪽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개방죽 해안도로로다. 우리는 연미정에서부터 약6.5km가 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지겹도록 걸어 강화대교 근처 갑곶돈대에 올랐다. 경로우대 혜택을 받아 무료입장해 돈대 주변의 잘 정비된 멋진 경관과 함께 대한제국 마지막의 아픈 흔적들도 함께 가슴에 담았다. 말끔히 정비된 돈대 담장 너머로 몰려오는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 점령군에 무너지는 조선 병사들의 비명도 들리는 것 같았다. 돈대에서 나와 제1구간 보행 완료를 학인하는 스템프도 찍었다. 다만 오후5시 밖에 안돼 한 시간쯤 제2구간을 더 걸어 3km쯤 떨어진 용진진에서 첫닐 걷기를 마쳤다. 이날 우리는 21km쯤 걸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었지만 음식점은 없었고 편의 시설도 부족한 길이었다. 반드시 간식이나 식사가 될 먹을거리를 준비해서 걸으라고 하고 싶은 길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불러 10분쯤 북쪽으로 다시올라가 갑곶돈대 부근에 숙소를 정하고 근처 음식점에서 김치찌개, 두부 요라에다 몇 잔의 반주로 식사하며 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 4월17일 제2구간 : 용진진-광성보-초지진>



어제 걸은 제1구간과 달리 제2구간은 꽃길이었다. 거리는 어제와 같은 18km였지만 전 구간이 해안선을 따라 평탄하게 계속됐다. 게다가 어제 오후 용진진까지 3km를 이미 걸었기 때문에 남은 구간이 15km밖에 안 돼 한결 여유가 생긴 탓인지도 모르겠다. 길옆 과수원에 핀 배꽃들의 새하얀 군무를 보며 순백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복숭아밭에서 펼쳐지는 화사한 분홍 꽃들의 향연 앞에선 지나간 젊믐을 그리워 하가도 했다. 뿐만아니라 해풍에 비 오듯 우수수 떨어지며 흩날리는 벚꽃들의 낙화 모습 또한 표현하기 힘든 장관이었다.




간밤에 널따란 객실에서 넷이 가볍게 한 잔 더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눈 후 푹 자고 일어난 시각은 6시. 엊저녁에 확인해 둔 숙소 뒤쪽 해장국집으로 갔다, 널따란 주차장 입구에 핀 분홍빛 홍도화꽃들이 반겨주었고 우리들이 첫 손님이었다. 인심 좋은 음식점에서 차려낸 맛있고 푸짐한 해장국으로 배불리 먹고 택시로 어제 걷기를 중단한 용진진으로 갔다. 용진진 문루각 참경루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한 호안시설 위로 난 나들길을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린 데다 해풍이 조금 불어 약간 쌀쌀했다. 10분쯤 걸으니 오른쪽에 하얀 꽃이 만발한 배밭이 나왔다. 흐린 날씨여서 햇빛이 없는 탓에 배꽃들이 더욱 희게 느껴졌다. 5분쯤 더 가니 석축으로 쌓은 둘레만 남은 용당돈대가 있었다. 돈대안 넓은 터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기 돈대를 지키는 주인인 듯 길손들을 반긴다.



우리는 동대를 지나 계속 걸었다. 왼쪽 갯벌을 가득 매운 갈대들의 바짝 마른 잎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바다의 멜로디처럼 들린다. 군데 군데 무더기로 피어 있는 하얀 조팝꽃들도 만났고 곱게 단장한 성숙한 여인의 입술보다 더 붉은 복숭아꽃들의 분홍색 합창도 즐겼다. 길은 그 사이로 똑 곧거나 굽이를 반복하며 계속됐다. 왼쪽에 펼쳐지는 강처럼 좁은 바다길 너머가 경기도 김포시 해안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꽃길의 즐거움을 누리며 30분쯤 걸어 우리는 또 다른 돈대 화도돈대에 도착했다. 이 돈대도 다른 대부분의 돈대와 마찬가지로 숙종5년(1879년)에 쌓은 것들 중 하나란다. 2002년에 복원했다는 석축에 올라 바다 너머 김포의 산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다시 걸었다. 돈대 조금 남쪽에는 강화외성을 통과하는 물길을 건너는 수문 시설도 복원돼 있었다.




수문을 지나고 다시 만난 복숭아 과수원의 아름다운 분홍색 잔치를 벗하며 똑 바른 길을 걸었다. 왼쪽엔 갯벌을 덮은 마른 갈대의 빛바랜 갈색이 이어진다. 그렇게 20분쯤 더 가니 바다 쪽으로 조금 튀어나간 언덕에 오두돈대(鼇頭墩臺)가 있었다. 이곳의 땅 모양이 자라목처럼 길쭉하게 튀어나와 오두(鼇頭)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조금 멀리서 보니 정말 자라목을 닮았다. 약간 높아 주변이 탁 트인 돈대의 석축 위에 벽돌로 쌓은 성벽에서 바라보니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돈대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갯가의 메마른 갈대 밭을 왼쪽에 끼고 걸었다. 얼핏 보면 메마른 갈대숲과 초록색의 풀밭 사이로 나들길이 난 것 같았다. 풀밭엔 노란 민들에와 짙은 보랏빛 제비꽃이 활짝 피어 우리들을 반겼다. 그런데 요즘 보기 드문 하얀 민들레도 상당히 많아 이채로왔다. 원래 하얀 민들레가 우리나라 자생종이었지만 생장력이 더 강한 외래종 노란 민들레에게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하얀 민들레의 실지 회복과 번성을 기원해 본다.




오두돈대를 지나 약 50분 만에 광성보(廣城堡)에 도착했다. 서구열강의 침략세력들이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나라의 문을 열라며 몰려들던 구한말(舊韓末)의 아프고 쓰라린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효종9년(1658년)에 설치된 방어용 진지이며 가까운 오두돈대, 광성돈대, 화도돈대를 아우른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미국 아시아함대 군과 벌인 전투에서 조선군 사령관 어재연장군을 비롯한 조선군 350명이 전멸한 뼈아픈 참사의 현장이다. 기록에 따르면 미군은 중위 1명과 수병 2명만 전사했다. 보의 성벽 밖에 있는 표지판에 부착된 처참한 현장 사진 앞에서 숨이 막힐 듯 밀려오는 말 못 할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막강한 외세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짓밟혀야 했던 역사의 비정함에 울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를 결코 잊을 순 없을 것같다. 보 안에 비치된 당시의 구식 무기들을 둘러보고 보 밖으로 나와 쉼터에서 간식하며 아픈 마음을 달랬다.



보 아래쪽 해안가에 남은 당시의 포대(砲臺)를 복원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아픔을 느꼈다. 이들 복원된 포대유적들은 고종11년(1874년) 화력을 증강해 설치했건만 불과 1년 후 운양호사건에 따라 나라의 문을 열면서 파괴됐다가 129년만에 복원 정비된 것이다. 텅 빈 포좌와 견본으로 설치돼 있는 구식 대포를 보면서 걷노라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물이 빠져나가 넓어진 갯벌을 끼고 걸으며 꽃이 만발한 가지를 길 위로 늘어뜨린 벚나무들 아래를 걸었다, 꽃은 바람이 불 때 마다 소나기처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갯벌 너머로는 바닷물이 촬랑거리는 멋진 풍경을 화폭이 아닌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낙화가 융단처럼 덮인 길 위에서 넷이 기념촬영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서 오후1시쯤 2구간의 마지막 관문 초지진에 도착했다. 초지진 앞 주차장에서 제2구간 종점에서 완보 확인 스탬프를 찍었다. 이어 초지대교 근처로 가서 반주 곁들인 점심식사하고 버스로 초지대교를 건너 서울지하철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 도착, 1차 강화나들길 걷기를 마쳤다.




* 다음 이야기는 5월에 예정된 2차걷기 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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