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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승봉도 기행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5. 7. 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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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바닷길 왕복4시간 갈매기와 놀고

신비감 짙은 새하얀 섬에서 하루를 즐겨

 
 


인천항 연안부두를 출항한 대형여객선은 10여 분만에 완전한 백색의 세계로 들어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하얀 안개뿐이다. 하늘도 하얗고 바다도 하얗고 사방을 둘러봐도 흰색뿐이다. 안과 밖이 새하얀 거대한 공을 반으로 잘라 엎어놓은 것 같은 안개 속이었다. 그 중심을 달리는 배와 그 배에 탄 사람들, 뱃전으로 무리지어 날아드는 갈매기들만이 보이고 움직이는 것들의 전부였다. 간밤에 시작된 서해 일원의 짙은 안개 때문이다. 그때 발령된 안개주의보는 여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란다.
 


망망대해 위를 달리는 대형여객선은 광대한 백색 공의 중심에서 방향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한한 백색 세계만 계속됐다. 그야말로 五里霧中의 중심에서 안개의 위력을 실감했다. 함께 탄 승객들 외엔 뱃전으로 날아드는 갈매기들만이 단 하나의 길벗들이었다. 2층과 3층의 널따란 선실을 꽉 채운 승객들과 함께 하얀 바다 위에 드리운 거대한 백색의 반구(半球) 안에서 2시간가량 배의 엔진소리만 들으며 달렸다.
 


지난 6월28일 우리 부부는 교회의 산우회원들 73명과 함께 인천 앞바다 승봉도를 다녀왔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로. 기록을 찾아보니 주민 약250명이 살며 넓이는 2.2평방km, 섬의 최고봉 당산 정상도 해발 70m. 해안선 한 바퀴 길이는 약 9.5km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쯤 되는 작은 섬이다. 인천에서 남서쪽 42km 거리이며 덕적도에서 남동쪽으로 14km란다. 약 370년 전 신씨와 황씨인 두 어부가 풍랑 때문에 이 섬에 올랐다가 함께 개척했기 때문에 처음엔 신황도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봉황의 머리를 닮은 섬이 하늘로 오르는 듯한 형상이어서 승봉도로 바뀌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림들이 살았고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승황도(承黃島)로 적혀있다. 대형화물차 등 자동차도 여러 대를 실을 수 있는 대형여객선은 인천항 2번 부두를 떠나 자월도, 이작도를 지나 약 2시간 만에 승봉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출발 며칠 전부터 비 예보가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당일엔 흐리기는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인솔책임자로부터 매우 걱정되는 말을 들었다. 인천 일대의 안개가 짙어 발령된 주의보가 해제되지 않으면 배가 출항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배가 못 갈 경우 육로 이동이 가능한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하늘의 일이니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아침 6시20분 서울 잠실에서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김밥과 찰떡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며 약 한 시간 만에 인천항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당초 출항 예정시간이 지나도록 출항 허가가 안 나서 애태웠다. 그러기를 50분. 마침내 승봉도 뱃길이 열렸다는 통보가 전해졌다. 우리는 발이 묶인 승객들로 도떼기시장처럼 혼잡한 인천항 여객터미널 대기실의 인파를 헤집고 선착장으로 달려가 배를 탈 수가 있었다.
 


배는 8시42분에 출항했다. 자동차들까지 실은 거대한 배의 위용에 압도당하며 나는 집사람과 함께 3층 선실로 올라갔다. 선실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발 디딜 틈을 찾기도 힘들었다. 우리도 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았다. 선실 창밖엔 안개가 짙어 보이는 건 갈매기들과 그 갈매기를 꽈배기로 유혹하는 몇몇 승객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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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싸게 꽈배기만 물고서 날아가는 갈매기들과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승객들의 즐거운 다툼들만 계속됐다. 우리도 그 광경을 즐기며 앉아있거나 선실 밖으로 나가 안개 낀 바다 위에서 해풍을 맞으며 지루함을 달래야만 했다. 다만 중간에 여객선이 잠시 기항한 자월도와 이작도에 접안 할 때 울려 퍼진 커다란 뱃고동 소리만이 우리들의 승선을 실감시켜 주었다.
 


약 두 시간만인 10시50분 배는 승봉도 선착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선착장은 한꺼번에 몰려 내려온 사람들로 붐볐다. 함께 실려온 차량들이 모두 다 부두를 빠져나가고 나서 우리들 일행은 선착장 아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왼쪽은 도로정비 공사로 갈 수 없단다. 짙은 안개는 여전히 계속돼 전신주 하나 정도 거리 밖의 물체들은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이곳에 몇 번 다녀갔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도로 오른쪽 바다에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이 정말 절경이란다. 그 섬들과 파란 파도에 반짝이는 햇살의 조화가 너무 좋아 다시 왔다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하얀 안개 외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걸었다. 선착장에서 5분쯤 걸으니 길은 왼쪽으로 굽어 마을로 이어졌는데 거기에 ‘나의 고향 승봉도’라고 새겨진 돌비석이 서있었다.
 


비석을 지나니 길은 야트막한 경사를 이룬 논밭 가운데로 계속됐다. 좌우에는 민가도 몇집 있고 넓지는 않지만 논과 밭에선 벼와 옥수수, 고구마와 깻잎 등 농작물이 안개 속에서 초록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섬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건 풍부한 해산물 외에도 상당히 넓은 논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뿐인 초등학교는 학생이 없어 폐교됐다니 승봉도 역시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길은 길지 않아 10분쯤 만에 야트막한 언덕을 넘머 이일레해변에 도착했다. 꽤 길따란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지만 수평선부터 하얀 안개에 싸여 있었다. 해변의 모래밭을 따라 5분쯤 걸어 우리들은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숲길로 들어갔다.


약 5분쯤 평탄한 길이 계속되다 경사가 조금 있는 나무 데크 길로 이어졌다. 그러나 산길이라 하기엔 너무 짧았다. 데크 길을 지나니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며 계속됐다. 길옆에는 <삼림욕장 가는 길>이라 쓰인 내 키 높이의 말뚝 모양 녹색 안내판이 서 있었다. 5분쯤 약한 경사길을 오르니 허름한 정자까지 있는 쉼터가 있었다. 이 언덕의 정상인데 안내표지판을 보니 이일레 해변까지 700m란다.
 


울창한 숲속인 데다 짙은 안개에 싸인 탓에 조금밖에 안 떨어진 나무들조차 희미하게 보일 정도여서 말로만 듣는 신선들이 사는 세계가 이럴까 싶었다. 시인들이나 문학 작가들은 이런 분위기를 ‘몽환적이다’ ‘신비스럽다’ ‘인간 세상 아니다’ 한자성어로 ‘別有天地非人間’ 등의 언어유희를 펼칠 것이다. 그렇지만 어휘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뒤에 떨어져 오는 일행들을 기다리며 약간 휴식을 한 후 우리들은 삼삼오오 다시 산책을 계속했다. 산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지나온 길에 비해 안개는 조금 옅어졌고 녹색은 훨씬 강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짙은 안개와 대비돼 더욱 선명해진 녹색의 바다를 우리는 계속 걸었다. 햇살이 사라진 데다 시원한 해풍까지 간간이 불어 걷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온갖 이야기까지 어우러지니 모두가 신선이 된 기분이었을 것 같다.
 


11시50분쯤 산길을 벗어나 삼거리에 이르니 길 왼쪽엔 초록의 융단을 펼친 듯한 넓은 논에서 벼들이 자라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바다가 하얀 안개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2차선 도로인지라 차들도 몇 대 지나갔다. 하얗게 흐리기만 했던 하늘에서 약하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우의나 우산을 썼고 일부는 그냥 맞으며 은빛의 섬길을 걸었다. 5분쯤 더 가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나무 데크 산책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쉼터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누며 쉬었다. 비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산책로 입구에 옹진군이 세운 표지판엔 ‘해안 산책로’ 라고 굵게 쓴 글자 아래 ‘목섬’ ‘신황정’ ‘촛대바위’도 작게 병기돼 있었다. 데크는 해안의 모래밭이나 자갈밭, 바위 위를 가로지르거나 그 옆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오른쪽엔 좁은 모래밭이나 양식장 시설물들이 몇 개 있었지만 가까이 있는 것들만 보였다. 불과 50여m밖에 안 떨어진 섬조차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안개는 짙었다. 그래도 해안 절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은 마음껏 하면서 걸었다. 촬영명소라고 하는 곳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섬들 대신 하얀 안개를 배경으로 찍기도 했다. 그렇게 웃고 즐기며 20분쯤 걸어서 우리들은 산책로를 벗어나 신황정에 올랐다. 섬의 동쪽 끝에 있는 언덕이어서 맑은 날이면 조망이 천하일경으로 꼽힐 정도란다. 다행히 안개가 다소 옅어져 정자 아래로 지나가는 유람선은 볼 수가 있었다. 그 외에는 정자를 배경으로 몇 컷의 기념촬영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정자를 떠난 후 10분여 만에 우리들은 해안에 도착, 데크 길을 조금 걸어 해변 자갈밭에 촛대처럼 우뚝 서있는 촛대바위를 보고 되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한참 더 걸었다. 그리고 다시 해안의 데크 길이나 모래 길을 걸어가 오후1시20분쯤 이 섬의 중요한 볼거리 코끼리바위에 도착했다. 남대문처럼 생겼다고 남대문바위로도 불리지만 내 생각엔 코를 땅에 늘어뜨린 코끼리 얼굴처럼 보인다.


몇 컷의 사진속에 그 모습을 담은 일행은 발길을 재촉. 이일레해변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오전에 우리들이 지났던 길에 있는 음식점인데 상호가 ‘도깨비식당’이다. 오후2시가 다 된 데다 많이 걸은 탓에 모두들 허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름과는 달리 식당 안엔 도깨비 대신 큼직하고 널따란 사기그릇에 맛있는 해물 칼국수가 가득가득 담겨서 나왔다. 4인용 대접인지라 맘껏 나누어 먹고도 남을 만큼 양이 많고 맛있었다. 우리들은 약간 늦은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해결했다. 일행 중 일부는 몇 잔의 막걸리 반주까지 곁들였다. 이런 게 여행자들이 누리는 소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 아닐까?
 


식사를 마친 일행은 인천행 연락선 출발이 한 시간 30분쯤 지연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앞 이일레 해수욕장 모래밭이나 나무 그늘, 카페에 흩어져 늘어난 자유시간을 즐겼다. 나 역시 그다지 넓지 않은 해수욕장 그늘과 모래밭을 거닐며 안팎이 하얀 공을 반으로 갈라서 엎어 놓은 듯한 공간의 중심이 주는 신비감과 즐거움을 마음껏 즐겼다. 섬 곳곳에는 만개한 수국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일행은 도보로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선착장으로 나왔다. 일부는 좁다란 여객 대합실에서 에어컨으로 땀을 식혔고 나머지는 안개속에서 해풍을 즐겼다. 그러다가 지연 출항하는 배에 올라 오후7시20분 인천항 연안부두에 도착했다. 그런데 부두에 입항하기 직전 잠깐 안개 속에서 보였다 사라진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하늘로 높게 치솟은 인천대교의 거대한 주탑이었다.
 


 

< 2025년7월6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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