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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피해 즐긴 후쿠오카 여행

여행이야기

by 솔 뫼 2026. 1.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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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 구마모토성, 30여년 계획으로 복구 중

불-연기 뿜는 아소산 정상 대초원은 소와 말 목장

도쿠가와 권유 뿌리친 한국계 가톨릭聖女에 감동

 


처음 찾아간 남국은 따뜻했다. 또한 그곳으로의 여행은 한겨울에 맛 본 정말 따뜻한 여행이었다. 서울에 혹독한 대한 추위가 몰아치기 직전 떠난 여행이었기에 더욱 따뜻하게 느꼈던 것 같다. 예년의 경우 대한 추위는 소한 추위보다 덜 추웠건만 올해는 반대였다.

 

서울의 혹한 피해 따뜻한 남국 여행

지난 1월19일 3박4일의 일정으로 일본 큐슈의 후꾸오카로 출국했다. 초등학생 손녀를 돌봐야 하는 집사람이 이 때가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여유가 생겨 때문에 가능했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시간20여 분만에 도착하는 곳이어서 다른 나라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초면의 31명이 함께 했지만 모두 조용하고 교양있는 분들이어서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알찬 휴식과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일행은 대부분 부부나 일가족, 친한 친구들과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엔 조부모와 손자까지 3대 5명의 가족도 있었고, 적금을 부어 일정액이 되면 해외 여향을 한다는 아가씨 4명도 있었다. 친구와 온 두 청년은 동반한 자녀도 없이 왔다는 우리 부부에게 놀랍고 부럽다고까지 했다. 게다가 야무지고 상냥한 여자 가이드의 해박한 설명이 즐거움을 더했다.
 

온천욕 즐기며 큐슈 북부지역 두루 여행

우리는 만 사흘동안 큐슈의 북부 후쿠오카에서부터 벳푸, 히타, 아소산, 사가, 가라쓰, 기타큐슈의 관광지나 명소를 들렸다. 첫 날엔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滿宮>, 둘째 날엔 구마모토성<熊本城>과 성곽앞 상점마을 사쿠라노바바도 둘러봤다 이어 키쿠치로 가서 코코노에 꿈의 대현수교<九重夢大吊橋>를 건너보고 아직도 연기를 내뿜는 아소산의 대관봉에선 분화구에서 분출하는 연기와 불꽃을 보았다. 셋째 날앤 유황 재배과정을 보여주는 유노하나, 펄펄 끓는 온천을 보는 가마도 지옥, 온갖 소품들을 갖춘 유휴인 상점들, 아름다운 긴린코 호수, 히타의 옛 상점 건물 거리인 마메다마치를 산책하고 300년된 군조 양조장에선 술도 시음했다. 마지막 날인 넷째 날엔 ’아시야 가마노 사토‘에 들려 찻물을 끓이는 무쇠솥(일본 지정문화재)을 보고 말차를 마시는 다도 체험과 잘 가꾼 일본식 전통정원을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후쿠오카공항으로 가서 여정을 마쳤다.
 


강행군(强行軍)에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요소요소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먹고, 마시며 느낀 것들은 결코 헛 되지 않은 여행이었다. 우리가 체험한 것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거나 잘 알려진 것이 많다. 따라서 자세한 기술은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나로서는 기술할 수도 없다. 다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사진 곁들여 두서없이 기록으로 남겨둘 뿐이다.
 

넘침과 모지람 없이 정갈한 일본 식사에 매료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간식을 제외하고 10번의 끼니를 먹었다. 그중 두 차례는 집사람과 함께 해결했고 나머지 여덟 끼니는 일행이 함께 식사했다. 호텔에서든 전문음식점에서든 모든 일본 음식들은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정갈했고 담백한 맛이 있었다. 물론 일본 음식도 종류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임을 안다. 그러나 이번에 맛 본 음식들은 나처럼 평범한 여행객들에겐 전혀 부담이나 모자람 없이 즐길 수가 있었다. 다만 기본으로 차려낸 음식 외 반찬이나 음식을 추가로 추문 할 경우 모든 품목마다 유료인 것이 우리나라와 달랐다. 생각해보니 매우 합리적인 것 같았다.
 


첫날 저녁 우리 부부가 밤거리를 구경하다 찾아 들어간 일본라면집에서 맛 본 라면과 생맥주는 훌륭한 한 끼였다. 둘째 날 저녁엔 호텔에서 노천탕까지 갖춘 탕에서 온천욕을 실컷 한 후 격식을 많이 축소한 정식 가이세키와 무한 리필로 마실 수 있었던 몇 잔의 술도 좋았다. 최근 절주 약속을 잘 지키는 나도 이날 식사 때는 물론 식사 후 한참 쉬다 다시 온천욕을 한 후 호탤 라운지에 가서 무료로 위스키 한 잔을 더 마시며 이국의 밤을 즐겼으니까. 그 외에도 우리는 육류와 생선, 각종 채소로 다양한 식사를 즐겼다.
 

新正쇠는 일본에선 1월내내 명절 분위기

신정(新正)을 쇠는 일본에서는 1월 한달은 온통 명절을 즐기는 분위기란다. 이는 도착한 젓 날 바로 확인했다. 공항에서 나와 늦은 점심 식사 후 걸어서 찾아간 다자이후 텐만구 길목은 휴일 인파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의 인파로 밀려가고 밀려와야 했으니까. 마치 성탄절 전야나 명절에 붐비는 서울 명동이나 강남의 관광명소들을 뺨칠 정도였다. 이곳은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은 구마모토성이나 기타 명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일본과 중국의 관계 악화로 중국 관광객들이 끊어져 이 정도로 된 게 다행이란다.
 


관광 도중 즐긴 간식들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다. 맛도 좋았지만 그 지방에사만 나는 별미들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다자이후 텐만구 골목의 인파 속에 줄을 서서 사 먹은 매화 모양의 쌀떡, 구마모토성앞 성곽 마을 상점거리 사쿠라노바바 조사이엔 관광 후 가이드가 사준 전통 떡 이끼나리 당고도 맛보았다. 이것은 구마모토현 지방의 전통 과자인데 두툼하게 썬 고구마에 팥소를 얹어 말가루 반죽 피를 싸서 찐 것이다. 갑작스런 손님이 왔을 때 손쉽게 만들어 대접할 수 있어 ‘갑자기’란 뜻의 ’이끼나리‘로 불린단다. 구마모토 성곽 마을은 말고기 명소였다지만 지금은 어느 가게에 나붙은 옥호에만 그 명성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온천수 끓는 마을에서 족욕을 즐긴 후 먹은 삶은 달걀과 사이다, 화산 연기 분출하는 아소산 대관봉앞 매점에서 먹은 아이스크림과 요거트도 일미였다. 그 중 요거트는 인기가 많아 소형은 매진돼 대용량을 산 덕에 남은 여정 이틀간 우리 부부의 입을 즐겹개 해주었다.
 

 

구마모토성 은행나무는 전쟁시 비상식량 확보용

우리가 들린 명소들 가운데 일본의 3대성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은 임지왜란의 왜장(倭將)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등 너무 잘 알려져 지세히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넓이 98만 평방m에다 성곽의 둘레가 5.3km나 된다는 엄청난 축성 규모에 놀랐다. 성곽도 외부에서 타고 올라오지 못 하게 윗부분이 거의 수직이란다. 2016년 대지진으로 크게 파손된 후 지금까지 천수각은 다 복구됐고 성곽 등 많은 부분이 보수 중인데 완전한 복구는 2052년에야 끝날 것이라고 한다.
 


가토는 이 성을 축성하면서 장기간의 전쟁에 대비한 비상식량 확보를 위해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천수각 앞마당의 거대한 고목 은행나무는 지진 피해를 입지 않았단다. 많은 인파에 섞여 걸어서 5층 높이의 성 제일 위까지 올라가며 내부와 주변을 둘러봤다. 내려올 때는 노약자용 좁은 엘리베이터에 유모차를 미는 아기 엄마와 함께 우리 부부만 운 좋게 합승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 성을 건축한 가토 기요마사의 투구와 호랑이 가죽을 두른 갑옷을 보진 못했다. 구석구석 보지 않고 너무 빨리 올라간 탓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기분나쁜 사람이기애 못 봤지만 아쉽진 않았다.
 

활화산 더운 지열로 나무들 못 자라 대초원 형성

 


이날 오후에 오른 아소큐슈국립공원의 아소산 대관봉에서는 눈이 모자랄 정도로 넓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넓은 냄비를 닮은 칼데라 지형의 장관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었다. 아소산 칼데라는 세계 최대규모로 알려져 있다. 남북 25km, 동서 18km, 둘레는 무려 128km나 되며 그 분화구 안에 논밭과 마을은 물론이고 철도까지 부설돼 있다. 우리는 해발 1000m나 되는 산 위에 펼쳐지는 광대한 분화구와 주변 능선들과 대초원에 놀랐다.
 


자료에 따르면 27만년 전부터 9만년 전까지 4차례 크게 분화했다는 아소산 정상 분화구와 대초원의 넓이는 여의도의 800배 정도라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주변의 한 능선에서 치솟는 연기와 잠깐 보였다 사라졌지만 분출하던 붉은 불꽃이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활화산의 위용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광활한 곳에 수목이 전혀 없는 대초원이 펼쳐진 것은 활동 중인 화산이 뿜는 높은 지열 때문에 키 근 나무들이 자리지 못 하기 때문이란다. 그 대신 이 방대한 초원에서 이루어지는 목축으로 값비싼 일본 소고기(와규)와 양질의 우유가 다량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계곡에 다리 놓아 오랜 近親婚의 부작용 해결

 


이어 아소산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찾아간 오이타현 기쿠치의 코코노에 꿈의 大현수교(九重夢大吊橋) 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설된 보행 전용 현수교다. 길이 379m, 높이 173m, 폭 1,5m로 해발 777m에 지어졌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일본 100대 폭포의 하나인 신도노타키 폭포와 가을철의 단풍이 절경으로 유명하다. 가대한 계곡을 가로지른 이 출렁다리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이 지역 코코노에 마을의 비용으로만 건설돼 더욱 뜻이 깊다.
 


2004년5월에 착공해 2006년10월 완공된 다리 이름에 꿈 몽(夢)자가 들어간 것은 마을을 살리려는 주민들의 꿈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그 꿈들 중 재미있는 것 하나로 청년들의 결혼문제가 있었다. 다리 양쪽에 있는 작은 마을들은 깊은 계곡으로 막혀 오랜 세월 동안 왕래가 거의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친척들끼리의 잦은 혼인(近親婚)에 따른 문제점들이 많아 다리를 놓아 왕래함으로써 이를 해소하려는 뜻도 담겼다는 것이다. 잠깐 지나가는 과객인 나로서야 사실 여부까지 확인할 순 없었다. 우리 부부는 약간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가 그쪽 마을의 야트막한 전망대에 올라 주변 전망을 둘러보고 되돌아 왔다. 그 때에도 다리에 처음 들어올 때 구입한 통행권을 보여주어야 했다.
 

펄펄 끓는 온천수와 산자락에서도 솟는 수증기

 


셋째 날에 찾아간 벳푸의 가마도지옥에서 본 끓어 오르는 온천과 수증기도 나에겐 경이로왔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산이나 마을 곳곳에서 수시로 품어져 나와 하늘 높이 치솟는 엄청난 수중기들도 놀라왔다. 우리는 그 마을에서 뜨거울 정도로 느껴지는 온천수에 수욕(手浴), 족욕(足浴)도 하고 유황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노하나‘ 재배장도 들렸다. 또 온천물에 익힌 달걀을 먹고 라무네 사이다도 마셨으며 노천온천탕에서 하는 짤막한 수증기 쇼도 구경했다.
 


이어 들린 유후인에선 작지만 아담한 긴린코<金鱗湖> 호수와 그 부근에 있는 온갖 종류의 아기자기하고 자잘한 소품들을 파는 유후인 상점거리를 산책하며 쇼핑도 즐겼다. 그 상점들엔 장난감부터 공예품, 생활용품, 도자기, 의류, 음료나 음식, 건축용 소품 등 진열돼 있어 만물상을 방불케 했다. 물건도 사고 구경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장사진을 이룬 화장실에서 급해진 생리 해소하려다 일행 중 꼴찌로 버스에 올랐다.

 

300년 전통 상점거리에도 젊은 만화애호가 몰려

이어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히타(日田)의 옛 건물들이 남은 상점거리인 마메다마치<豆田町>에서 산책도 하고 300년 전통을 가진 군조양조장<薰長釀造元>에서 술도 한 잔 시음했다. 이곳은 일본 천황이 다스렸든 곳 이어서 젼통 건물들이 많았다, 최근엔 ’진격의 거인‘, ’귀멸의 칼날‘ 등 일본의 인기 만화 작가들이 이곳 출신들이 많아 세계의 젊은 만화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쓰레기 한 조각도 없이 깨끗하게 관리된 거리를 걷고 특산품 양갱도 샀다. 오래 된건물들인 데도 잘 관리돼 지금도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투숙한 호텔은 바다가 가까워 가로등이 비치는 야경이 좋았다. 그리고 해안도로에 조성된 약 400m의 흑송방풍림도 400년 전에 조성된 큐슈의 명소란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두울 때 도착한 탓에 송림은 보지 못했고 야경만 객실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착한 날 밤과 떠나는 날 아침에 즐긴 두 차례의 온천욕은 이곳이 온천지대임을 실감했다. 온천은 수량이 풍부해 넘치는 대로 흘려보낸다고 했다. 이 지방은 해풍이 유별나게 강하고 많이 불기 때문에 세계 애드벌룬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9개뿐인 일본 지정문화재 무쇠 찻솥 ’아시야가마 <芦屋釜> ‘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흑송 숲길을 지나 전망좋은 해변과 고속도로를 달려 후쿠오카시를 지나 북쪽의 기타큐슈 근처 아시야조(芦屋町)로 향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아시야가마노 사토‘에서 말차를 시음하고 전통다도용 찻물을 끓이는 무쇠 찻솥 아시야가마<芦屋釜>도 보았다. 이 무쇠 찻솥은 일본 국기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현재 일본의 중요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찻솥은 9개뿐인데 그 중 8개가 이 ’아시야가마‘라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엄청나게 귀중한 명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끊어진 이 찻솥의 제작기술을 복원해 전승하기 위한 시설인 ’아시야가마<芦屋釜>노 사토<里>‘에서 찻솥 재현 모습도 보고 차 마시는 전통예절 다도(茶道)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진 일본 전통정원을 거닐며 구경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세상의 왕 섬기려고 하늘의 임금 배반할 순 없어"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상당히 뜻깊게 다가온다.

하나는 오토 줄리아라는 한국계 일본 카톨릭 성녀(聖女) 이야기다. 임진왜란 당시 13살 정도의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이 성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가 돼 세례를 받고 줄리아란 세례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니시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해 처형당한 후 빼어난 미모에다 총명함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궁녀로 들어갔다, 당시 일본은 기독교 금교령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그녀느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개종하면 후궁으로 삼겠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제안마저 거부했다. ’세상의 왕 섬기려고 하늘의 임금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니 그 기개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 때문에 오지로 여러 차례 유배됐지만 그 곳에서도 주민들을 위힌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다. 유럽까지 이런 사실이 알려져 성녀로 불리지만 교회법적으로는 성인반열 직전 단계인 ’하나님의 종‘ ’신앙의 증거자’로 공경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할복 명령받고 마감한 도요토미 茶道 스승의 강직한 삶

다른 하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茶道) 스승으로 막강한 실력자였었지만 결국 그에게 할복 자결을 명받고 생을 마감한 센노리큐(千利休)에 관한 이아기였다. 그는 일본 다도의 기틀을 마련한 실력자였고 일본의 미의식(美意識)을 바꾼 혁신가이기도 했다. 비싼 중국산 다기를 사용한 보여주기식 차 문화를 배격하고 작고 소박하고 세월의 때가 느껴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다. 다실도 넓고 화려한 것을 버리고 다다미 두 장 정도만 깔아놓은 작은 방에서 신분의 차이 없이 모여 차를 즐기게 했다. 센노리큐는 오다 노부나카를 거쳐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자 정치고문으로도 활약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결국 화려함을 추구한 히데요시와 소박단순미를 강조한 리큐의 성격 차이에다 리큐의 인기에 대한 히데요시의 오해와 시기심 등이 화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 검고 작은 방을 좋아한 리큐를 황금으로 장식한 커다란 다실로 히데요시가 부르자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히데요시는 값싼 다기를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는 무고나 문화적 권위로 무사 출신인 자신의 철학을 무시한다는 불편한 감정 등을 이유로 그에게 죽음을 내린 것 같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리큐는 “네가 아끼던 찻잔을 남의 손에 더럽힐 순 없다.”며 깨버렸다는 그가 할복 직전에 남긴 말은 "인생 칠십 년, 에이! (人生七十 力囲希咄)"였다고 한다.
 

본받고 싶은 일본인들의 안전 위한 생활태도

이밖에 짧은 여행에서 듣고 깨달은 것들도 적어본다.
‘일본은 도시나 사람들의 태도 등 모든 면에서 깨끗하다’.
‘잦은 지진 탓에 고층 빌딩이 적고 지진으로 인한 잦은 정전사태 때문에 카드 결제보다 현금을 선호한다,’
‘여관이나 호텔의 열쇠도 전자식 카드 키가 아닌 수동식 열쇠를 사용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방문은 열어둔다. 등등.
 
이유는 정전이 되면 결제가 불가해지거나 결제 내역이 사라지고, 지진이 나면 정전으로 문을 못 열고, 문이나 창틀이 뒤틀려 문이 안 열려 방에 갇히게 되는 위험에 대한 대비책이란다, 만사가 불여튼튼이라 했으니 유념할만하다.
이만큼 보고 듣고 깨달았으니 상당히 알찬 여행을 한 것 아닌가?

 

< 2026년1월27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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