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로 재미와 시간, 비용이 응축된 알찬 여행이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여행은 공유하는 추억의 확대재생산과 판단을 달리하는 사회적 담론들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開陳)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기에다 멋진 장소와 잘 짜인 일정이 가해지면 참가자들은 세월을 되돌려 놓거나 또 다른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지난 5월27일 다녀온 동기생 7명의 오색 주전골 트레킹과 강릉 선교장 견학, 주문진 어민수산시장의 가성비 높은 저녁 식사는 멋진 여행의 조건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말 신나게 떠들고 즐겁게 걷고 맛있게 먹고 마신 알찬 여행이었다.

이날 아침9시 잠실종합운동징역에서 만난 동기생 5명은 고급 SUV승합차 15인승 쏠라티에 탄 채 도착이 늦은 두 친구를 기다렸다. 약15분 후에 그들이 도착하자 보슬비 오락가락하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두 사람이 뒤늦게 도착한 까닭은 타고 오던 지하철 전동차의 고장 때문이었단다. 매끄럽게 운전하는 젊은 남자 운전사의 친절함과 상냥함은 우리들을 더 즐겁게 했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내리다말다를 반복하는 보슬비는 도착지의 날씨를 걱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날씨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약간 흐린 날씨 탓에 산 위에는 옅은 운무가 드리웠고 차창에 비치는 좌우의 경관은 녹색의 궤적을 남기며 뒤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는 잘 그린 채색동양화 같은 풍경속을 우리는 웃고 떠들며 달렸다. 정해진 주제도 없었고 발언 순서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야기들은 실타래 풀리듯 쉬임 없이 이어졌다. 정원의 절반밖에 타지 않은 차 안이었지민 2인 좌석에 혼자 앉았기에 편안하게 얘기하며 갈 수 있었다.


이번 여헹의 계획과 진행을 맡은 이상현동기의 간단한 일정 안내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은 시작됐다. 이어 오갔던 이야기들은 정말 많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시국담이 오가다 시작된 이상현동기의 화초와 식물의 생태나 재배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식물이나 화초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놀라왔다. 그 중에서도 향기가 무척 강한 치자꽃들의 형태나 색상 등에 관한 것이 기억에 남았다.

이어 이야기는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이야기부터 스탈린 시대에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황무지 중앙아시아를 개간해 옥토로 바꾼 까레이스끼들의 애환까지 불러왔다. 한번 날개가 달린 애기들은 건강관리 문제에 이르자 저마다 알거나 실행 중인 비법과 지식들이 공유되었다. 그러다 어느새 온 나라를 불태우고 있는 증권투자 열기에 대한 것으로도 날아올랐다, 어느 친구는 얼마의 재미를 보았고 또 다른 누구는 도대체 증권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도 시중의 화제가 되고 있는 용어 FOMO(Fear Of Missing Out) 얘기가 오고갔다. 주식투자에 문외한인 나 역시 그 현상에서 헤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반대용어 JOMO(Joy Of Missing Out) 심리상태를 고수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하나 많이 거론된 화제는 친구들의 국내 지리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현재 가고있는 오색이나 인제, 주문진, 강릉, 양양 등지에 관한 동서남북 위치는 물론이고 도로 옆의 장소들에 대한 지리적 상식이 너무 부족함이 드러났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토지리 시간에 배운 것들은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직업상 전국을 많이 돌아다닌 나의 기준으로는 이해 불가의 수준이었다. 핸드폰에 GPS 앱으로 지도를 불러내 설명까지 하면서 달렸다. 그밖에도 무수한 대화가 오갔고 웃음도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출발 약 1시간 반 만에 내린천 휴게소에 도착했다. 물론 이곳이 처음이며 내린천이 동으로 흐르는지 서로 흐르는지도 모른다는 벗님들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한 친구가 “국내는 몰라도 많이 돌아다닌 해외는 손바닥 보듯 잘 안다,”고 해서 좌중을 웃겼다. 우리는 웃으며 규모가 크고 최신 시설을 갖춘 휴게소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쉬었다,


휴게소를 출발한 차는 국내 최장이라는 터널을 지나 짙은 운무에 가린 높은 산들 속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우리는 고속도로와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7번국도를 달려 12시쯤 오색약수터 근처의 관광단지에 내렸다. 보슬비는 내리고 운무는 더 짙어져 주변 경치가 선계를 연상시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이럴 때 위력을 발휘하는 말이다. 최정태회장이 미리 연락해 둔 식당에서 맛본 음식들은 정말 일미였고 골고루 갖춰진 산나물들과 그것으로 비벼 먹은 밥, 구수한 된장찌개, 더덕을 넣은 고기볶음, 고소한 명란젓과 쫄깃한 가자미 식해 등이 배고픈 길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간장을 뽑지않은 강원도식 된장(먹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는 별미였다. 이처럼 좋은 가효(佳肴)가 있었으니 한 두 잔의 반주가 없을소냐? 몇 통의 막걸리와 설악산 머루로 빚었다는 달콤한 머루주가 흥취와 밥맛을 돋구었다. 이 머루주는 음식점 사장댁에서 3대째 이어오는 비법으로 빚은 술이란다.



약 한 시간에 걸친 식사를 마친 일행은 유명한 오색약수터를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선녀탕까지 걸었다. 멋진 경계와 옥구슬 구르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옥류에 취한채 걸었다. 주중인 데다 비까지 뿌린 탓에 탐방객들이 거의 없어 주전골은 우리들 차지였다. 이 계곡이 그 유명한 주전골이다. 산세가 깊은 곳이라 조선시대 도둑들이 숨어서 위조 주화를 주조한 곳이란 전설이 전해온다. 우리의 숨은 사진 예술가 황양연동기가 비장해 온 고급 사진기를 꺼내 이 절경들을 마구마구 허락도 없이 찍어 온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성능 낮은 핸드폰 카메라이지만 나도 조금 절경들을 폰에 숨겨서 왔다.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해 여러 폭포와 기암절벽을 구경하며 올라가면 용소폭포를 지나 흘림골로 이어지는 데 주전골은 용소폭포까지 2.9km를 말한다, 그 이후 3.1km는 흘림골이다. 주전골과 흘림골에 설치돼 있는 보행용 데크 로드는 지난 2015년8월2일의 엄청난 홍수에 휩쓸려 지형이 크게 바뀌고 막대한 피해가 생긴 후 개설됐다. 기록에 따르면 엿새동안 쏟아진 큰비로 10여 곳에 17t에서 60l에 이르는 낙석들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7년간 폐쇄해 대대적 개보수를 한 후 2022년부터 다시 열린 곳이다. 이날 우리는 주전골의 일부인 선녀탕 바로 위까지 2.5km정도만 걷고 내려왔다. 기암괴석들과 옥계수 흐르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어 몇 장의 사진들로 표현 할 수밖에 없다.




비에 젖은 바위는 무척 미끄럽다. 모두가 발밑을 조심하며 약수터로 되돌아 나왔다. 우리는 차를 달려 낙산 비치 호텔 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자주 찾았던 낙산사와 해변의 아름다움을 그리면서 달렸다. 그러나 최근 몇 년새 번개 불 속도로 진행된 난개발로 해변은 하늘 높이 솟은 몇 채의 고층빌딩 콘도미니움의 터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빗속의 해변을 걸었던 아름다운 낭만을 상상한 우리들의 꿈은 무참하게 부서졌다. 게다가 찬 바람에 날리는 보슬비까지 맞으니 처량한 느낌도 들었다. 금줄이 처진 데다 인적마저 끊어진 썰렁한 해변을 떠나 우리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로 위로를 받으려고 ‘보헤미안’이란 유명한 찻집의 본점으로 차를 몰았지만 운수 사납게도 휴뮤일 이란다.




대책이 없었다. 국도로 나와 차를 달리며 몇 차례의 車中會議 거치며 행선지를 여러번 수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강릉 경포호반의 선교장(船橋莊) 주차장에 4시쯤 도착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명소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락한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선교장의 안내문에 표기된 내용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빈(1703-1781)이 건립한 조선후기의 전형적 상류주택으로 열화당. 활래당. 동별당. 안채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에 걸쳐 3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후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보존하고 조선사대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67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後略.




우리는 초청한 문화해설사 한희숙씨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듣고 알았다. 양반들의 愛民과 爲民정신 및 행동, 신분이나 직급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손님을 접대한 예절 등은 문화민족의 긍지를 갖기에 충분했다. 자세한 내용들을 녹음하지 않아 더 기술하지 못 함은 아쉽다. 그렇지만 열심히 귀를 모우고 경청하는 벗님들의 모습에서 그 내용의 귀함을 추측해 볼 수 있으리라.



5시50분쯤 우리는 선교장을 나와 주문진항의 어민수산시장으로 갔다. 여기에도 우리의 유능한 최정태회장의 손길이 뻗쳐있었다. 최회장의 지인이 소개해 준 생선가게에서 서울에선 상상하기 힘든 싼가격에 도다리 등다양한 횟감 생선을 샀다. 그리고 근처의 테이블 세팅 집으로 옮겨 싱싱하게 조리된 각정 생선회를 몇 잔의 반주 곁들여 즐겼다. 중국제후들이 즐겼다는 팔진미(八珍味)인들 이보다 얼마나 더 맛이 있었을까?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은 개의치 않고 맛을 즐겼다. 그리고 8시가 다 돼서 음식점을 나온 우리들은 상냥한 운전사의 힘을 빌어 밤10시에 서울 종합운동장역에 도착, 여행을 마무리했다. 정말 알차고 값진 여행이었다.

< 추신 > 이날의 경비는 동기회가 기획한 공식 행사이긴 하나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했다.
그래서 여행경비 중 일부는 참석자들이 7만원씩 내고 나머지 금액만 동기회비에서 부담키로 했지요.
전체적 사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총지출 금액 1,083,930원이었다.
내역은 음식 및 다과료 533,930원, 차량 렌트비용 450,000원. 운전사 및 생선 손질 봉사료 100,000원.
그런데 이와 별도로 최회장이 200,000원을 별도로 여행경비 찬조용으로 동기회 계좌에 밉금시켰다.
최회장은 생선손질 봉사료 50,000원도 현찰로 지불했지만 동기회 계좌에서 그 액수를 차감하지도 않았다.
결론적으로 동기회 계좌에서 지원되는 여행비용은 최회장의 찬조금을 뺀 343,930원이다.


< 2026년5월29일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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